예언과 이스라엘 - 세대주의 예언해석학 비판 - 제 11장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최후통첩:다니엘의 70이레
 간격 이론에 대한 맥클레인의 네 번째 이유는 비 연대기적 메시아 예언들과의 유비에서 온 주장이다. 이 주장은 이미 위에서 다루었다. (192.2)
 그의 다섯 번째 주장은 “우리 주님 자신이 일흔 번째 이레는 아직 미래에 있다고 증언했다”25는 것이다. 맥클레인은 이 진술을 27절의 후반에 언급된 미래의 황폐케 하는 자가 앞 절에서 일흔 번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하는 것으로 언급된 세력과 동일하다는 가정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니엘이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정확히 마지막 이레의 절반에 두었지만, 마태복음 24:15, 21, 29, 30절에서 “우리 주님은 그것을 그가 영광중에 재림하시기 직전 ‘끝에’ 두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러므로 일흔 번째 이레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오시기 직전 현 시대의 끝에 와야만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 자신의 해석이고, 문제를 해결한다”26고 결론을 내렸다. (192.3)
 맥클레인은 몇몇 근거 없는 가정에 기초하여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첫째는 26절과 27절에 나타난 히브리 대구법 스타일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였다. 대구법에 의해 27절은 26절이 그렇게 한 것처럼 두 세력 즉 메시아와 그의 대적에 관하여 좀 더 면밀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메시아 자신이 일흔 번째 이레의 절반, 즉 그가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침례 받은 이후 정확히 삼년 반 이후에 희생 제도를 끝내는 것으로 예언되었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이 예언이 역사적으로 명확하게 성취되었음을 확인해 준다. 그의 침례와 십자가 사이의 시간은 정확히 삼년 반이었다.27 (193.1)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희생을 끝냈는가?
 맥클레인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유대 희생제사를 끝내도록 하지 않았다. ∙∙∙ 사실, 그것들은 거의 140년 이후 예루살렘 멸망 때까지 계속되었다. ∙∙∙ 그 제사들은 즉각적으로 멈추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28 그러나 이 이론은 다만 인간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다니엘의 계시는 메시아의 사명 중 가장 심원하고 결정적인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이 70이레 예언의 바로 그 목표인 다니엘 9:24의 육중 목표를 이루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전체 레위기 제사 제도와 희생 봉사를 폐할 것은 이미 좀 더 이른 메시아 예언인 시편 110:1, 4에 선포되어 있다. 여기서 다윗은 미래의 메시아적 통치자는 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선포하였다. 신약은 다음과 같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193.2)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 7:11, 12).
(194.1)
 오직 메시아 그 자신만이 홈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대속적 자기 희생을 가리키는 상징체계를 영원히 단번에 폐하실 수 있다.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7:27).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히 9:26-28). “그 첫 것[제사와 예물]을 폐하심은 둘째 것[하나님의 뜻]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 10:9). (194.2)
 이제 옛 언약과 그 지상 성전 봉사로 돌아가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그리스도는 “그림자”를 끝내시고 그의 의를 영원한 의로 제시하는 “더 좋은 언약”을 시작하셨다(히 7:22; 10:12; 롬 3:22, 25). 이 언약을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히 8:13). (194.3)
 그리스도는 죽으시기 전날 밤 주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확증하셨다. 그는 잔을 드시고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한 이레(칠년) 동안 이스라엘 안에서 많은 이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확증하셨다. 죽으시기 전 삼 년 반 동안은 자신의 봉사를 통해서이고 나머지 삼년 반은 예루살렘에서 그의 제자들의 봉사를 통해서이다.29 (194.4)
 “그[단 9:25, 26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단 9:27)이라는 다니엘의 예언은 하나님 자신의 행동으로 놀랍게 확증되었다. 예수께서 죽으시는 그 순간,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마 27:51; 막 15:38 비교)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늘로부터 온 오해의 여지가 없는 행동으로 이스라엘의 성전 희생 의식이 끝났음을 나타내었다. 이제 성전 희생의 합법성은 끝났다. (195.1)
 유대 민족 전체는 이 거룩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즉시로 피 흘리는 희생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나 셰키나의 영광은 이제 그들의 성전을 떠났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었고, 예루살렘은 더 이상 거룩한 도성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축복 대신에 이제 그분의 저주가 그들의(“너희 집”, 마 23:38; 살전 2:16 비교) 집에 내렸다. 로마 군대에 의한 완전한 파괴가 뒤따랐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4: 21:20-24 비교).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거절한 이 치명적인 결과 즉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이 다니엘 예언의 한 부분이 었다. 그리스도는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눅 21:22)고 설명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유대 희생 제사가 멈추지는 않았지만, 그가 죽으신 이후의 제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 이상 정당하고 유효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었다(히 7:11; 8:13; 9:25, 26; 10:8, 9)”30는 하젤(G. F. Hasel)의 견해에 동의하게 된다. (195.2)
 그리스도는 언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었나?
 맥클레인은 더 나아가 “그것들은 역사 속에서 그것(이스라엘과 맺은 메시아의 언약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 지를 지시해 주지 못한다”31고 하면서 다니엘 9:26에 대한 메시아적 해석에 도전하였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니엘이 반복하여 이스라엘의 구속주를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195.3)
 첫 육십구 이레의 해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오기까지”(단 9:25) 이른다. 이것은 히브리 성경에서 가장 명확한 메시아 예언의 하나이다.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라는 이중특성을 지닌 이로 소개되었다. 이것은 그를 왕 메시아 즉 제사장—왕(비교, 사 61:1-3; 슥 6:13; 시 110:4)로 신원확인을 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오시는 이를 기름부음을 받은 자(단 9:25, 26)로 묘사하는 다니엘의 강조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왕’(25절)이란 용어만을 이 시간 예언의 유일한 관심대상으로 취한다. 맥클레인은 AD 32년 4월 6일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며칠 전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시면서 “그 자신을 이스라엘의 방백 과 왕으로 드리신 때”라고 정확히 지적하였다.32 그러나 예수께서 그 때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아니신 것이 사실이다. (196.1)
 진정한 문제는 이것이다. 언제 예수께서 자신을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드리셨는가? 신약은 분명하게 대답한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던 날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행 10:38)셨고 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그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다. 역사가 누가는 그리스도가 침례를 받던 때를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지 열다 섯 해”(눅 3:1; 2, 3, 21 참조)라고 밝힌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 중 신약에서 역사적으로 연대가 매겨진 유일한 경우이다. 침례를 받은 직후에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친히 이러한 결론을 확증 하셨다. 그는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는 이사야 61:1의 예언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삼년 반 전 침례를 받으신 직후에 자신을 이스라엘에게 “기름부 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아로 제시하신 것이다. 반면에, 예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은 분명히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시는 임박한 십자가의 구속적 의미에 대하여 이스라엘과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 (196.2)
 그러나 침례를 받은 직후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 “때가 찼다”(막 1:15, 역자주, 문자적으로는 “그 때가 성취되었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그리스도의 침례]에서 역사적으로 성취되고 기다니엘 9:25의 연대에 일치하는 메시아적 성취가 이루어진다”33는 페인(J. B. Payne)의 결론에 동의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다니엘 9:24에 묘사된 6중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으시어 예언된 메시아가 되셨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목표는 정확히 삼년 반 후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의 대속적 죽음에서 근본적으로 성취되었다. 물론 이것이 다니 엘 9:27의 일흔 번째 이레의 “절반” 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숨지기 직전 그리스도는 승리의 음성으로 아버지를 향해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외쳤다. 다니엘 9:24에 묘사된 대로 그의 사명은 완성되었다. 70이레의 예언의 목표는 참으로 메시아적이기 때문에 “주된 강조는 이 현저한 기간의 시작과 끝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에 발생하는 큰 사건 들 즉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져오는 그 사건들에 놓여야 한다.”34 (197.1)
 일흔 번째 이레에 대한 문자적 주석: 간격 가설에 대한 비판
 책임 있는 문학적 주석을 위해서는 70이레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이 동의대구법35의 시적 스타일로 기록되었다는 확립된 사실을 해석학적 원리로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교리적 전제가 문학적 주석의 진리를 지배하거나 부인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의 대구법적 스타일을 적용하면 이스라엘의 언약을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신약의 증언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메시아적 해석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예언적 기간을 전례 없이 나누고 거기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적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들어 낼 필요가 없다. (197.2)
 로마의 통치자에 의한 예루살렘과 성소의 황폐는 두 번 기록되어 있다. (198.1)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b).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