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영원한 복음 제4부 죄와 심판 제12장 창세기속의 심판사건들과 심판절차
 2) 범죄
 시날 평지에 도시와 탑을 건축한 사건은 창세기 10장의 족보들 속에 나타난 ‘인류의 흩어짐’ 기사 속에 속한다. 이들의 의도는 죄악적이었다.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흩어짐을 면하려고 시도했고(창 9:1; 11:4) 노아시대의 사람들처럼 그들의 이름을 높이고자 했다(창 6:4; 11:4). 이들의 의도는 매우 종교적이었다. 아카드어로 바벨은 ‘밥-일리’(Bäb-ili) ‘신의 문’, 혹은 ‘밥-일라니’(Bäb-iläni) ‘신들의 문’을 뜻한다. ‘지구랏’(ziqquratu) 신전은 하늘에 이르는 관문이었다. 그들은 신전과 함께 높이 솟은 탑을 ‘천지의 기초의 집’(House of the foundation of heaven and earth)을 의미하는 ‘에-테멘-안-키’(e-temen-an-ki) 라고 불렀다. 바벨 건축자들은 저들의 왕국을 온 세상의 중심으로 삼고자 했다. (216.5)
 바벨 건축자들은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지 않겠다고 하신 약속을 불신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홍수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고자 하였다. 바벨의 정신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다. 대 공사를 위해서는 압제적인 군주의 등장이 불가피했다. 한글 성경에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바’(הָבָה,  häºbâ, 창 11:3, 4)는 이웃에게 특정한 의도를 갖고 행동을 요청하는 것으로 의지의 강요를 암시한다. (217.1)
 반역의 핵심에 자리 잡은 인물은 불경건한 함의 손자요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이다(창 10:6-12). 니므롯은 ‘야훼’ 앞에 용감한 사냥꾼(창 10:9)이며 제국의 건설자이다. 니므롯이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갈라(Calah)의 유적지는 ‘빌스 니므룻’(Birs Nimrud)으로 알려져 있다. 니므롯의 정체에 대해서는 ‘니눌타’(Ninurta)33 혹은 ‘말둑’(Marduk)34과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신적 존재, ‘길가메쉬’(Gilgamesh) 또는 ‘루갈반다’(Lug albanda)와 같은 메소포타미아의 전설적 영웅으로 생각하기도 하나 역사적인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해당 인물로는 아가데의 사르곤(Sargon of Agade, ca. 2340-2284 BC.) 앗시리아의 투쿨티-니눌타 1세(Tukulti-Ninurta I, ca. 1234-1197 BC) 악카드의 사르곤 1세의 손자인 나람-신(Naram-Sin, ca. 2334- 2154 BC) 등이 있다. 후자는 기원전 삼천년 대 말기에 근동 지방을 거의 오십년간 다스리며 많은 기록과 전설적 이야기를 남긴 인물인데 그가 가진 ‘세계 사방의 왕’‘강한 남성’이란 칭호는 창세기 10:8‘용사’(גִּבּוֹר, GiBBör )를 상기시킨다. 그는 신들을 무시했기 때문에 고통스런 최후를 맞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히브리어 이름인 ‘니므롯’(נִמְרֹד, nimröd)은 ‘반역하다’를 뜻하는 ‘마라드’(מרד, m-r-d )속에 ‘나람-신’을 반영시킨 언어유희인 것처럼 보인다.35 (217.2)
 3) 조사
 하나님이 직접 현장에 오셨다(창 11:5). 하나님의 현장 조사를 ‘보다’(רָאָה, r¹°â) ‘내려오다’(ירַַַָד, y¹rad)로 표현한 것은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인간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도록 아무리 높이 탑을 쌓아올려도 하나님께는 절대로 미치지 못한다. 하나님이 내려오셔야 할 정도로 미미한 것이다. (218.1)
 하나님은 실사(實査)를 통해 인간의 경영을 현 상태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셨다(창 11:6).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정신을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가 없으셨다. 동일 언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주도하는 반역자들의 의도는 아주 철저하게 인류를 통제하였으며, 이 일을 방치할 경우에 인류는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이었다. (218.2)
 4) 선고
 삼위 하나님의 비상 대처는 ‘하바’(הָבָה, häbà, 창 11:7) ‘자’라는 말 가운데 잘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창세기 11:3, 4에 연거푸 등장하는 반란자들의 ‘자’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이 말은 인간의 의도가 하나님께 대한 직접적인 반역임을 드러낸다. 인간이 하나님과 맞대결을 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성취된다. (219.1)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케 하여 반역자들 속의 의사소통을 불통시키기로 합의하셨다. 입술을 만드시고 그 입에 언어를 담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이 언어체계를 혼란시키실 것이었다. (219.2)
 5) 집행
 언어의 혼잡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도시의 건설을 중단시켰다(창 11:8-9). 이로써 3-4절의 의도는 완전히 좌절되었다. 창세기 기자는 이 기사를 기록할 때 특별히 언어유희를 사용했다. 이 도시는 ‘신의 문’(Bäb-ili )이나 ‘신들의 문’(Bäb-iläni )가 아닌 ‘혼잡’을 의미하는 바벨(Babel)이 되었다. 인간의 교만은 땅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219.3)
 ‘혼잡하게 하다’는 히브리어 ‘바랄’(בָּלַל, Bälal, 어근은 b-l-l, 창 11:7, 9) 동사는 창세기 11:7‘나블라’(נָבְלָה, näblâ, ‘우리가 혼잡하게 하자’)인데, 이것은 창세기 11:3‘르베님’(לְבֵנִים, lübënîm, 벽돌들)의 앞 세 글자를 역순으로 쓴 것이다(לבנ(l-b-n)이) (נבל(n-b-l)로 역배열됨). 바벨 도시 건축자들의 주요 건축 자재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뜻을 반대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신 뜻을 꼭 성취하시고야 만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구속사의 진행을 막을 세력은 온 우주에 전혀 존재할 수 없다. (219.4)
 6) 완화조치
 하나님은 집단적 반항 정신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을 건드리지 않으셨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며 창조 시에 주어진 생육과 번성의 축복을 성취하기 위하여 온 지면에 흩어졌다(창 1:28; 11:9). 전 세계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의 정신을 갖고 사람들이 흩어짐으로 인류에게 희망이 사라졌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인류를 찾아 나가셨다. 바벨 사건 직후 축복의 메신저 역할을 할 아브라함의 조상이 될 셈과 데라의 족보가 창세기 10:10-32에 펼쳐진다. 하나님은 인류를 흩으시되 전혀 소망 없이 흩지 않으셨다. (220.1)
 6. 소돔과 고모라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이 직접 불 심판을 내리신 가나안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이 도시들은 아드마와 스보임과 함께 행동을 같이 했으며, 불 심판도 함께 받았다. 이들 도시의 대표격으로 소돔이 있었다(창 10:19; 14:2, 8; 신 29:23; 렘 49:18; 50:40). 소돔은 요단평야에 위치하여 물이 넉넉하고 비옥하고 아름다워서 ‘야훼의 동산’인 에덴동산을 방불케 했다(창 13:10. 비교 창 2:8, 9). 이 도시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이야기는 재림에 대한 표상이기도 하다(눅 17:28-29). (220.2)
 1) 은혜의 기간
 소돔인들은 아브라함과 롯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체험할 기회를 가졌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롯이 저들 속에 거주자로 살았다(창 13:10-13). 롯이 소돔인들과 함께 전쟁 포로가 되었을 때, 조카 롯을 구원하기 위해 출전한 아브라함은 엘람왕 그돌라오멜의 사개국 연합군에게 소돔과 고모라인들이 강탈 당한 재물을 찾아주고 소돔인 포로들을 해방시켰다. ‘야훼’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음도 불구하고(창 13:13)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들은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을 경험했다(창 14:19, 22). 죄악의 잔이 차서 멸망이 작정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그들을 위해 중보하였다(창 18:22-33). (220.3)
 2) 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