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4 장 조사심판과 재림소망
 심판이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도록 함. 만일 사랑이 확실한 신뢰에 기초되기만 한다면 그 사랑은 이 세상을 영원히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신뢰와 충성의 자제는 요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무상으로 주어져야 된다. (285.3)
 우리가 한사람의 결백함과 공정함 그리고 신뢰할만한 가치를 보는 근거를 가질때라야 비로소 그 사람을 향한 신뢰의 자세를 개발하게 된다. 재림전 심판과 재림후 심판의 중요한 역할은 그분의 심판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확인하고 또 옹호하므로 세상에 있는 도덕적 존재들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신뢰를 깊게 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285.4)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질문들. 악과 부당함이 존재하는 이 지구는 하나님의 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들을 일으킨다. 왜 결백한 백성들이 고난을 받는가? 왜 “진리”가 너무나도 자주 짓밟히는가? 얼마나 오랫동안 부당함, 사악함, 그리고 부도덕이 성행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구원하고 다른 사람은 멸망시키는 것이 공정하신가? 이러한 질문들이 성경에서 일어난다. 시편 기자는 왜 악인들이 “고통이 없고”“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는” 지를 이해하는 것이 그에게 “피곤한 과제” 였음을 인정하고 있다(시 73:16, 4, 5). (285.5)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7) 고 말할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285.6)
 성소에서 시편 기자는 거기에서 행해진 표상적인 성서 봉사를 통해서 악한 자의 결말을 알게 되었다. 그는 회개한 죄인들에게 속죄와 구원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 정죄와 멸망을 주시는 것을 보았다. 대속죄일날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깨끗이 하시고 언약을 회복하심으로 회개한 죄인을 심판하였고 또 영원한 파멸로 멸하심으로 회개하지 아니한 죄인들을 심판하셨다(레 23:29). (285.7)
 비슷한 모습이 다니엘 8장에서도 발견되며 거기서 거룩한 자는 “이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단 8:13)라고 질문하고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답은 하나님의 구속 곧 심판 행위의 중심이 되는 성소가 2300일의 예언적 기간이 지난 후에 “회복” 또는, “옹호되거나” 또는 “바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단 8:14). (286.1)
 계시록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큰 소리, 곧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신원하여 주시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라며 부르짖는 모습으로 보여진다(계 6:9, 10). 이 순교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잠시 동안”(계 6:11) 기다리라는 것이다. (286.2)
 하나님의 공의가 옹호됨. 부담을 주는 위의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대답은 그분의 마지막 심판의 평가와 집행하는 국면을 통해서 자세하게 주어진다. 우리는 성경이 개개인의 구원 또는 멸망에 대한 그분의 결정이 정당하고 공정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하늘과 지상거민들이 평가하는 심판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 무수한 성경 구절들을 보아왔다. (286.3)
 이 확신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그분의 의로우심을 옹호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신뢰는 구원받은 자들-계시록에는 유리 바닷가에 서 있는 것으로 나타냄—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영문:judgments)일이 나타났으매”(계 15:3, 4)라는 찬양에 의해 표현된다. (286.4)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의로우심과 진실하심에 대해서 우주적인 찬양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그분의 “의로우신 일(심판)이 나타”(계 15:4)난 사실에 의해 주어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엘렌 G. 화잇은 이것을 적절히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오랜 시대를 통하여 투쟁하여 온 진리와 오류에 대한 모든 문제가 그 때에는 다 밝혀지게 될 것이다. 우주의 심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죄악의 존재와 지속에 대하여 일체 책임이 없이 서실 것이다”25 (286.5)
 하나님의 백성이 옹호됨.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구원받은 자를 옹호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니엘 7장의 계시에서 옛적부터 계신 이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해 신원하셨고(영문:judgment—NIV)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단 7:22)고 선언하시는 모습으로 보았다. 비슷하게, 계시자 요한은 하늘에 있는 큰 무리들이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계 19:1, 2)라고 외치는 것을 본다. (286.6)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 대한 옹호가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는 선언 앞에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계 19:7). 혼인 잔치에 대한 은유는 예수님 자신이 당신의 재림 때에 그분과 그분의 추종자들 사이에 이룩되어야 할 완전한 연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마 22:1~14, 25:1~13 ; 막 2:19; 사 54:5, 6; 렘 31:32 참조). (286.7)
 마지막 축제. 바울도 역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사이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엡 5:25)에 비유하고 있으나 실제적인 혼인은 미래의 사건으로서 “거룩하고 흠이 없이”(엡 5:27) 나타날 때로 보고 있다. (287.1)
 요한은 그리스도와 자신의 교회 사이에 있는 완전한 연합의 이 마지막 잔치가 하나님과 자신의 백성을 위한 재판에 의한 옹호 후에 놓여지는 것을 보고 있다. 대속죄일에 있는 자신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옹호가 축제들과 매 49년마다 있는 희년(禧年)축제—최종적인 회복을 상징함-로 끝을 맺은 것처럼, 하나님과 자신의 백성에 대한 원형적인 옹호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있는 “혼인”예식과 이 지구의 마지막 회복으로 끝을 맺는다(계 21:1~8). (287.2)
 4. 소망과 신뢰의 근거
 엄숙함과 기쁨. 마지막 심판에 대한 성경의 견해는 하나님의 공의의 결정적이고도 최종적인 승리로서 신자들이 옹호와 구원 그리고 불신자들의 정죄와 멸망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며 또 그것은 엄숙함과 기쁨속에서 고대되어야 할 사건으로 본다. 그 사건이 엄숙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도덕적 존재들의 영원한 운명을 취급하며 불의한 자들은 영원히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기쁨으로 그 일을 내다 보는바 그 이유는 그들의 운명의 끝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을 위한 마지막 옹호와 구원을 나타내고 또 하나님의 새 나라가 내려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287.3)
 재림 전 심판은 구원에 대한 우리의 기쁨과 확신을 깨뜨리지 않는바, 그 이유는 그것이 보복의 음모가 아니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야 하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바울은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3, 34)라고 질문한다. 우리의 기록들이 재림 전 심판에서 펼쳐질 때 우리의 중보자께서 우리를 위해 서 계시므로 우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본래 이 심판은 하나님은 단지 현세에 살고 있는 회개한 죄인들만 의롭다고 하실 뿐만 아니라, 심 판날에 그들에게 영생의 보상을 주시므로 그들을 옹호하신다는 복된 소식을 담고 있는 복음의 탁월한 기별이다. (287.4)
 신뢰와 소망. 복음과 마지막 심판 사이에 있는 밀접한 관계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롬 2:16)에 대해서 말하는 바울에 의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복음에 의하면 심판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현재의 생애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또 마지막 심판에서 죄가 용서 받았다는 것을 옹호해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로운 준비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심판을 두려움과 실망으로 바라보지 않고 신뢰와 소망으로 바라볼 수 있다. (287.5)
 요한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함이니”(요일 4:17)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증거를 보고 있다. 이 신뢰(담대함)는 그리스도께서 금세에서 “타락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실 수” 있고 또 자신의 심판의 날에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유 24) 수 있는 분이라는 보증 위에 놓여 있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보증 위에 기초한다”(히 6:10). (287.6)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행한 선한 행위들을 쉽게 잊어버리지만 하나님께서는 나그네에게 물 한모금 준 것까지 포함하고 있는 모든 선한 행위에 대한 놀랍고도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록을 보관하고 계신다(마 25:35).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은 특히 재림 전 평가의 국면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그들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천사들 앞에서는 그들의 옹호에 대한 계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대한 진리를 궁극적으로 드러내실 더 나은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2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