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4 장 조사심판과 재림소망
 희년의 해방과 회복이 대속죄일 날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깨끗하고 새로운 도덕적 출발을 승인하시므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희년에 나팔을 분다는 표현이 흩어진 자들을 위한 메시야적 모음(사 27:13, 슥 9:9~14)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마 24:31; 살전 4:16; 고전 15:52)을 묘사하기 위해 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267.7)
 이 모든 것들은 대속죄일이 죄에 대한 심판 과정의 마지막임을 나타내고 새 질서의 시작으로 끝났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것은 새 언약 관계의 전적인 회복으로서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이고도 결정적이 처리를 상징했다. (267.8)
 7. 대속죄일의 하늘 원형
 하늘 성소의 실재. 하나님의 백성의 최종적인 정결과 옹호로 끝나는 재판 과정에서 대속죄일의 중요한 표상학적 의미는 그리스도에 의해 행해진 구속적 행위와 일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성경은 어떻게 지상성소에 그 봉사가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해 활동하시는 유사한 하늘 성소의 더 큰 실재를 표상했는지를 설명하므로 상호 관계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지상성소와 하늘 성소 사이에 있는 상호 관계는 특별히 히브리서에서 수직적이고도 수평적인 표상에 의해 확실해진다. (268.1)
 수직적으로, 하늘 성소는 “참 장막”(히 8:2), “온전한 장막”(히 9:11, 9:24 참조)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지상 성소는 그것의 “상징적” 형태(히 9:9, 8:5; 행 7:44; 출 25:40 참조) 였다. 유사하게도, 지상 장막의 제사장 봉사와 희생 제물은 하늘 성소(히 7:24, 25; 8:4, 11~13, 10:11~21)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행해진 “더 아름다운”(히 8:6) 대제사장 봉사의 “모형과 그림자”(히 8:5)로 보여진다. (268.2)
 수평적으로, 지상 성소의 과거(십자가 전)의 표상적 봉사는(히 9:6~9) 현재의 그리스도의 하늘 중재와 중보에 의해 성취되고 대치된 것으로 보여진다(히 9:9, 11~14).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과 중보자로 봉사하는 참 하늘 성소의 존재는 하늘 성소와 또는 그 부분들에 대한 많은 성경 말씀들에 의해서도 증명된다(사 6:1; 겔 10:3; 계 1:13, 7:15, 11:19; 14:17, 18). (268.3)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봉사. 지상과 하늘 성소 사이에 있는 표상학적 일치는 수행된 제사장 봉사 가운데 있는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한 일치를 전제로 한다. 지상 성소에서 제사장 봉사는 두 국면, 즉

   (1) 성소에서 매일 드리는 중보 의식과

   (2) 대속죄일 지성소에서 해마다 드리는 심판과 정결 의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보심판의 두 국면은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에서 의 봉사 가운데서 그들의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268.4)
 중보. 그리스도의 중보 봉사의 첫째 국면은 자신의 하늘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시는 때에 시작되었다(행 2:33, 34, 7:56; 히 8:1, 2). 오순절날 성령의 부어 주심은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께서 공식적으로 즉위하였다는 증거로 보여졌다(행 2:33). 자신의 하늘 성소에 그리스도께서 취임하신 것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는 것으로 말하는 그러한 구절들 속에 반영된다.(행 2:34; 엡 1:20; 골 3:1; 히 1:3, 13). (268.5)
 “좌정”(sitting)이란 중보 사역의 뜻으로 특별히 히브리서 8장 1절에서 2절에 설명되어 있는 바, 그 곳에서 그리스도는 “성소와 참 장막의 부리는 자”로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대제사장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중보 사역(intercessory ministry)을 통해서 교회를 유지하고(계 1:13, 20) 회개와 용서를 신자들 위해 중보하고(행 5:31; 요일 2:1, 2, 1:9),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되게 하며(요 16:23~24; 계 8:3) 그리고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실제적인 천사들의 조력으로 우리를 준비시키신다(히 1:14; 계 5:6, 1:16, 20). (268.6)
 심판.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에 있어서 두번째인 마지막 국면은 지상 성소에서처럼, 죄의 최종적인 처리로 끝나며 심판 과정과 자신의 재림 때에 있을 희년 축제를 포함한다.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에 있어서 마지막 국면은 중보 사업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첨가하는 것이다. 대 속죄일의 특별한 희생 제물이 “상번제”(민 29:11)에 첨가되어 드려졌다. (268.7)
 중보는 본질적으로 심판과 관련되어 있는바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드려진 구원의 선물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또는 부정적인 반응은 각자가 반응한 것을 나타내는 최종적인 심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보와 심판 모두는 똑같은 대제사장의 일이다. 중보는 십자기 상에서 나타내신 자신의 구속적 사랑을 실천하시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다. 심판은 역사의 마 지막에 최종적이고도 결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구속을 실천하시는 그리스도의 행위다. 그러므로 둘 사이에 있는 차이점은 시각의 차이로서, 중보는 자신의 초림의 배경에서 본 그리스도의 사역이며 심판은 자신의 재림의 배경에서 본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다. (269.1)
 하늘 성소의 정결. 성경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의 마지막 국면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는 지상 성소의 정결과 하늘 성소의 정결 사이에 있는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히 9:23). 이 본분은 “하늘에 있는 것들”“정결”의 필요성과 상징적인 대속죄일에 행한 것과 같이 해마다 반복 되어져야 할 필요가 없는 그리스도의 “더 좋은 제물”을 통한 완성을 강조하고 있다(히 9:25).14 어떻게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가? 히브리서는 대속죄일에 의해 제시된 그리스도께서 죄를 제거하시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적 국면을 이해하고 있다. 과거에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히 9:26)다. 현재에(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미래에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이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19:28).15 (269.2)
 그리스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봉사는 히브리서에서 관념상으로 연결되어 있는바, 그 이유는 그것들이 모두 똑같은 십자가상의 “단번의” 희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늘 성소에서의 자신의 두 봉사의 국면인 중보와 심판을 성취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똑같은 속죄의 희생 제사이다. (269.3)
 “이미”“아직 성취되지 않음”(“already”, “not-yet”). 어떤 의미에 있어서 십자가는 레위기의 대속죄일을 “이미” 성취한 것으로 제시하는바, 그 이유는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히 9:26)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봉사의 미래에 있을 최종적인 국면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269.4)
 이중적 성취의 원칙—“이미”“아직 아님”—은 신약에서 일반적인 것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끝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바,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죄를 없이 하기 위해” 과거에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면전에 지금 나타나 계시고 또한 구원을 위해 미래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269.5)
 그리스도의 봉사는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히 9:24)에서 행사하시는 중보와 심판의 사업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중보에 관해서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고 말한다. 심판에 관해서 히브리서는 조사심판의 일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완성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암시는 다음의 비교 구문에 의해 제시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이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 28). (269.6)
 재림 전 심판. 이 본분에서 저자는 인간의 죽음 뒤에 마지막 심판이 따를 것과 그분의 재림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 뒤에 올 것을 관련시키고 있다(히 10:26, 27 참조). 이 상호 관계에서 심판이 재림과 관련되어 놓여진다. 그러나 심판이 재림 전에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바 그 이유는 저자가 재림이 “죄를 다루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히 9:28) 실 것이다. (270.1)
 그 암시는 누가 영생을 선물로 받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심판 과정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끝난다는 것이다. 대속죄일의 끝에 대제사장이 성소로부터 나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죄의 최종적인 제거와 하나님과 새 언약 관계가 시작되도록 함으로 심판 과정이 끝났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처럼, 대속죄일의 원형의 끝에 그리스도께서 두번째 나타나시는 것은 “자기를 바라는 자들”(9:28)에게 영생을 주시므로 끝나는 심판 과정의 완성을 나타낸다. (270.2)
 위에서 다룬 것은 재림 전 평가 심판(Pre- Advent evaluative judgement)의 개념은 성경에서 각기 다른 형태 속에 분명히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개념은 예수님과 바울의 상당히 많은 교훈들 속에 중요한 가정(assumption)이 되고 있다. 재림 전 심판에 관한 더 자세한 말씀들이 다니엘서(7장, 8장)와 계시록(5장, 14장)에 있는 묵시적 심판의 이상 속에서 발견된다. (270.3)
 그리스도의 재림 전 심판의 사역을 들여다보는 귀중한 통찰력은 히브리서가 지상 성소에서 대제사장에 의해서 행해진 대속죄일의 사역과 하늘 성소에서 행해진 그리스도에 의한 사역 사이에 세워 놓은 표상적인 관계에 의해서도 마련된다. 이러한 중복된 말씀들은 마지막 심판의 재림 전 국면을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있다. (2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