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14 장 조사심판과 재림소망
 더욱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바울의 명령은 기도문 형식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조를 나타낸 것이다. 기도문 형식은 그리스도인 믿음의 기본 진리를 나타낸다. 그런 경우에 바울의 점진적인 연속 곧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 그의 나타남과 그의 왕국은 아마도 구원사의 절정으로 인도하는 연속된 사건들에 대한 편만한 이해를 나타낸다. (260.1)
 재림은 조사심판을 배제함. 모든 신약 기자들 중에서 바울은 재림에 대한 가장 생생하면서도 풍부한 묘사를 제공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방법과 그에 연관된 사건들의 이해는 만약 이 사건에 대한 바울의 묘사(살전 4:13~18; 살후 1:7~10; 고전 15:51~58)가 없었더라면 매우 빈약했을 것이다. (260.2)
 그렇지만 바울의 묘사는 재림시 그리스도가 행하는 우주적인 조사심판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이것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바울이 제시한 연속적인 사건들을 봄으로써 알 수 있다. (260.3)
 1. 하늘로부터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강림(16절).

 2.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16절).

 3. 산 신자들의 변화(17절).

 4. 신자들의 주님과의 만남(17절).

 5. 주님과의 영원한 교제(17절). (260.4)
 데살로니가후서 1장 7절로 10절에 있는 짧은 설명은 단지 그리스도의 강림에 따른 즉각적인 결과, 곧 악인에게는 “영원한 멸망”“성도들”을 위한 영광화가 언급되어 있다. 재림에 대한 두 설명은 재림과 연결되어 행해지는 우주적인 사법적 소송을 결코 인정하거나 허용하고 있지 않다. 심판 소송이 아닌, 믿는 자들이 부활하고 변화하고 믿지 않는 자들이 멸망하는 그리스도의 집행하시는 행위가 그리스도의 오심에 즉각적으로 뒤따른다. 각 인간의 운명에 대한 평가와 결정의 소송은 파루시아 전에 이미 있었다. (260.5)
 편만한 잘못된 개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마지막 심판의 예비적인 단계로 잘못 생각한다. 그러므로 심판은 부활과 구별되어 그 일 뒤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생명 혹은 사망의 부활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계시와 집행(유 15)으로 생각하는 예수, 바울, 또는 다른 성서 기자들의 가르침이 아니다. (260.6)
 J. A. 세이스(J. A. Seiss)는 이것을 예민하게 주목한다. “부활과 산 자들의 순간적인 변화들이 선행된 심판의 열매요 구현(具現)이라는 것이 진리이다. 그것들은 이미 이 주어진 심판의 결과이다.”5 (260.7)
 4. 계시록에서의 재림 전 심판
 심판의 중심성. 심판은 계시록의 중심 주제이다. 계시록은 악인에게 마지막 심판을 집행하는 그리스도의 이상으로 시작된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계 1:7). 그들이 슬퍼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회개치 않는 악한 심령들에 대해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그 책은 흰 보좌 앞에서의 심판의 이상(20:11~15)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는 약속으로 끝마친다. (260.8)
 나머지 이상들은 어떤 의미에서 심판의 연속들이다. 첫째로 만약 교회가 회개치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계 2:5, 16, 26, 3:3, 16, 21). 그런 다음 연속된 심판들이 이방 세계에 예언된다. 그것들은 일곱인(6, 7장)으로 시작되어 일곱 나팔(8~14장)과 일곱 재앙(15, 16장)으로 이어진다. 그것들은 바벨론(17, 18장)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19:20), 사단(20:10), 그리고 살아온 모든 악인들(20:12~15)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묘사로 끝마친다. 부분적인 예비적 심판(삼분지 일 8:7, 8, 11, 9:15)으로부터 전체적인 마지막 심판(“모든 살아 있는 생물” 16:3; “모두가 심판”받음—20:13)까지 점진적인 강세가 두드러진다. (261.1)
 심판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종국적으로는 악의 저항을 극복하시는 그분의 방법을 나타내기 때문에 계시록의 중심 주제는 심판이다. 심판을 요구하는 울부짖는 순교자들(6:10)은 하나님께서 곧 그들을 옹호하실 것이라고 재확신하게 된다. 마침내 구속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섰을 때 그들은 노래한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이시여 주는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15:3, 4). (261.2)
 마지막 심판의 국면.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중심성(centrality)과 종국성(finality)에 대한 강조는 재림 전, 재림시, 재림 후 심판 사이의 차이에 대한 관심을 흐리게 한다. 그러나 이 구분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심판은 행해졌다(20:4, 6 참조)고 분명히 말한다. (261.3)
 심판의 참여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첫째 부활에 참여했기 때문에 심판의 이 국면은 분명하게 재림 후에 행해진다. 유사하게 흰 보좌 앞에서의 심판은 아마 재림 후에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앞에서 “땅과 하늘이 피하여 간데 없”(20:11)다는 것은 분명히 재림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6:13, 14). 그러므로 계시록은 마지막 심판의 다른 국면을 확실히 인정한다. (261.4)
 어린양의 이상. 재림 전 심판이 여러 곳에서 예시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된, 연속적인 예비적 심판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기대를 예시한다. 재림 전 심판에 대한 더 확실한 암시는 일곱인으로 인봉된 인간의 운명의 두루마리를 어린양의 이상에서 볼 수 있다. “안 밖으로 쓰여진”(5:1) 인간의 완전한 운명이 포함된 이 두루마리는 일곱 별이 그리스도의 손에 확고하게 있는 것처럼(1:16) 하나님의 오른손에 견고히 놓여 있다(5:1). (261.5)
 인봉된 두루마리가 왜 모든 인류 개개인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하시는 심판을 나타내는가는 최소한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오직 죽음을 당한 어린양만이 그것을 얻기에 합당하다는 사실은 그것의 내용이 인간 존재들의 구원이나 파멸에 대한 결정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둘째, 계시록은 구속받은 자들의 “이름들”이 담겨져 있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13:8; 17:8; 21:27)을 여러 번 언급한다. 세째,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이 있는 동안 계시록에서 열려진 유일한 책은 생명책이다(20:11, 12).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20:15)고 한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예비 심판을 드러내게 되는 어린양의 인떼심은 누가 둘째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할지를 공개하는 책의 개봉으로 말미암아 그 긴장감이 깨어질 절정의 순간을 고양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같이 보인다. (261.6)
 이상의 사법적 요소들. 인봉된 두루마리 든 어린양에 대한 이상은 용어적으로 말해서 심판의 회기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더 밀접하고도 섬세한 조사 아래 그 이상은 몇 가지의 분명한 사법적 요소들은 포함한다. 예를 들면, 잔 A. 볼리어(John. A. Bollier)의 “계시록에서의 심판”에 대한 지각있는 연구에서 주목된 것처럼, 계시록에서 29번 사용된 어린양의 모습은 “심판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두드러진 상징”이다. (262.1)
 “어린 양”이란 말은 “유다 지파의 사자”라는 말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어린양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부드러운 면보다는 오히려 그에게 심판할 권세를 준 자신의 승리를 나타낸다. 악인들은 “어린양의 진노”(6:16)를 두려워한다.6 (262.2)
 어린양은 산 생명들, 장로들, 그리고 “그 수가 천천이요 만만인 천사들”(5:11)에 둘러싸여 있다. 이 이상은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라는 다니엘 7장에 있는 심판의 모습을 회상케 한다. (262.3)
 심판의 인정. 계시록에서 하늘의 존재들은 심판하기 위해 열려진 책 앞에 앉아 있지 않았고 오히려, “책을 취해 인을 떼는”(5:9) 권리를 어린 양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가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신”(5:9)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인간 운명에 대한 마지막 판결을 밝히고 선포하도록 하는데 그들은 만족한다. (262.4)
 그리스도께서 두루마리를 열고 인간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을 밝힐 권세가 있음을 인정함으로 이 하늘의 존재들은 함축적으로 이미 일어날 심판 소송을 인정한다. 그들의 인정은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온 족속과 방언과 나라”(5:9) 가운데서 백성들을 속죄하신 어린양을 통해 드러났는지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의해 결정된다. (2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