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사람들로 채우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하실 수도 있는 일을 결혼한 부부에게 맡겨 주셨다. 그분의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었다(창 1:28). 그래서 부모에게는 하나님과 협력하여 종족 보존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된 것은 생물학적인 영속성만이 아니다. 이 책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도 포함된다. 첫째, 한 남자가 그의 배우자와 연합하여 자녀를 낳는 기쁨을 얻게 되며, 둘째, 생명을 만드시는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새롭게 갖게 된다. (828.2)
 3. 성적 욕구의 충족
 성적 만족감은 결혼이라는 영역 안에 있을 때에만 타당한 표현이 될 수 있다 구약과 신약 모두 간통과 간음에 대한 구체적인 금령으로 이러한 합의를 표현하고 있다(출 20:14; 잠 6:24-32; 마 5:27-30; 계 22:14, 15). 인간의 심리학적 및 생리학적 구조를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금령의 정확성을 지지하신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의 성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뿐 아니라 당사자들과 사회 모두에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창조주께서는 혼외정사 혹은 용납되지 않는관계가 거짓말, 분노, 무례, 질투, 죄책감, 자기비하 같은 정서적 장애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다. 또한 그분께서는 그러한 관계가 매독, 임질, 에이즈 같은 신체적 질병을 일으켜 제대로 기능을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그분의 피조물에게 “간음하지 말라”는 사랑어린 경고를 하셨다(출 20:14). (828.3)
 혼외정사는 전혀 성경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대단히 심각하고 파괴적인 죄의 결과이다. 살을 나눈다는 것은 각자의 불완전한 삶이 다른 사람과의 연합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자아 완성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성관계의 내적인 비밀에서 발견하기 때문에, 혼외정사는 죄가 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일이다. 혼외정사를 금하는 하나님의 명령 및 결혼의 영역 안에서의 성적 성취감에 대한 그분의 규정 모두 행복과 보호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우리의 첫 부모가 에덴동산에서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간의 성행위가때 묻지 않았음을 확인해 줄 뿐 아니라, 부부의 친밀감을 드러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히브리서 13:4의 간결하고도 확실한 명령은 같은 내용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다. (828.4)
 사도 바울은 가족의 의무에 매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기록하고 있지만(고전 7:5, 32-34), 이런 급진적인 청지기 직무는 그리스도인 삶에 요구되는 일반적인 길이 아니다(6절). 그분께서는 지혜롭고 적절한 권면을 주셨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2절). (828.5)
 4. 자녀의 사회화
 자녀들은 “야훼의 기업”(시 127:3)이다. 따라서 그들을 위해 엄격한 책임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부모에게 묻는 말은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네게 맡겼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냐”(렘 13:20). 사회에서도 사회화 과정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제도를 제공하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가정에 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교사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나누고 소유권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관찰하고 그에 반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참을성 있게 표현되고 적절한 모본을 보여 주는 이런 교훈들이 결국 “공동선에 대한 존중 자제력, 이웃을 돕는 정신 등과 같은 미덕, 요컨대 사회의 존속에 꼭 필요한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콜슨 19). (829.1)
 이런 점에 대한 성경의 관심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유대인의 자녀들이 겪은 문화적 오염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느헤미야는 이방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젊은 세대의 상당수가 “아스돗 방언은할수 있으나유다방언은못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부모들을 심하게 책망하고 개혁을 요구했다(느 13:24-27). (829.2)
 5. 가족의 안식처
 가족은 혈육, 혼인, 입양을 통해 연합한 개인들의 모임으로, 공통된 문화를 지니며 일반적으로 한 집에서 생활한다.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안전을 제공하고 외부 사회의 위협적인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안도할 수 있는 피난처이다. 방주 안에서 노아와 그의 아내 및 세 아들과 세 자부가 보호받은 이야기는 가정의 이런 기능을 보여 주는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실레이다(창 6:18- 7:1). 가족 구성원들은 하나의 혈육이므로 위협적인 요소로부터 신체적 보호뿐 아니라 정서적 및 심리적 안전을 함께 경험한다. 가족 안에서는 자기를 방어하거나 가장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 가족들은 배신당할 두려움 없이 자신이 완전히 받아들여진다는 확실한 믿음을 안고 희망과 의심, 포부와 실망에 대해 자유롭게 소통할수 있다. (829.3)
 C. 결혼의 원칙
 1. 연합의 원칙
 동물들은 짝을 지어 있지만 자신은 혼자임을 발견한 아담은 하와를 만나자 이렇게 외쳤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이렇게 하나가 되는 것은 육체적, 심리적, 영적인 결합을 포함한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 〈재림교회 목사 요람〉의 저자들은 이러한 결합에 요구되는 노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829.4)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지구상의 어떤 것도 인간의 마음만큼 섬세하고 쉽게 감동하는 것도 없다. 두 개의 현악기가 듣기 좋은 선율을 만들어 내야 한다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다. 끊임없는 조정과 규제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수천 개의 현(紋)을 지닌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은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인가!”(1954, 110). (829.5)
 2. 상호 의존의 원칙
 다시 한번, 성경은 확고하게 말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거듭 말씀하셨던(마 19:5) 이 원칙은 배우자와의 관계를 기타 모든 관계보다 우선하는 것을 확실히 한다. 그리스도인 배우자들은 가정 밖의 친척과 친구들이 제공하는 육체적 및 정신적 후원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성경은 부부가 서로 나누는 격려와 용기 주는 말에 가장 깊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의지하라고 명령한다. (829.6)
 3. 신자와 결혼하라는 원칙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14에서 신자와 결혼하라고 명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즉〈현대어 성경(Modern Language Bible)이 말하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게 불신자와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의와 불법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으며 빛과 어두움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 안에서 결혼하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그리스도교적인 원칙의 토대이다. 고린도후서 6:14의 명령은 특별히 그리스도인과 비(非)그리스도인의 연합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나이, 교육, 계층, 문화 역시 결혼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다. 현실과 생활방식의 관점이 서로 달라서 생기는 온갖 차이로 인해 “하나됨”에 대한 도전은 증폭된다. 더욱이, 근본적으로 다른 종교적 이해가 결혼에 미치는 영향은 특별히 역기능을 유발한다. 종교적 신념과 전통(즉 구혼 스타일에서 이것들이 지닌 역할, 약혼 패턴, 가정 재정, 식생활, 의복, 휴양, 심지어는 죽음과 매장과 사후세계에 관한 신앙 등)이 가족에게 미치는 강한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830.1)
 4. 일부일처제의 원칙
 성경은 라멕으로부터 시작된 일부다처제를 그분의 피조물의 고집스런 행동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행위를 용인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안녕을 위한 그분의 본뜻은 아니었다. 하갈로 인한 아브라함의 삶의 고통(창 16:1-6), 솔로몬의 아내들이 그에게 끼친 영적 재앙(왕상 11:1-4), 다윗의 후궁들을 앉히는 과정에서 비롯된 쓰라린 결과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결과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상기시켜 주는 것들이다. (8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