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초기교회와 중세교회
 그리스도교 초기의 저술가들은 계시—영감을 두드러진 이슈로 다루진 않았지만 교부들은 이 주제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고 온전한 계시가 주어졌다는 데 전반적으로 일치된 견해가 있었다. 이들은 신약의 용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 아버지의 형상 주님, 선생, 길, 세상의 빛으로 일컬었다. 이레나이우스(130-200년경)는 그리스도를 “참되고 변함없는 유일한 선생, 하나님의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일컬으면서(Against Heresies, pref. 5) 이렇게 주장했다.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우리 주님이 인간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분 자신의 고유한 말씀되신 분말고는 다른 어떤 존재도 우리에게 아버지께 속한 것들을 계시할 능력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Against Heresies 5. 1. 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5년경)는 “우리의 교사는 거룩한 하나님이신 예수, 말씀 곧 모든 인류의 안내자이신 분이다. 사랑의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교사이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The Instructor 1.7). (73.1)
 그렇지만 이렇게 그리스도를 최고의 거룩한 교사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조한 것이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에 주어진 계시들을 부정하거나 폄하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 따르면, 말씀은 “우리의 교사처럼 나타났다.” 그분은 “태초부터 예언을 통해 계시를 주셨고 지금은 우리를 분명하게 구원으로 초청하는 주님”이시다(Exhortation to the heaen 1). 이레나이우스는 영지주의 이단을 반박하면서,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계시의 절정을 이룬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그 후 말씀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에 이르기까지 나타난 계시의 통일성과 진전을 강조하였다. (73.2)
 르네 라투렐은 이렇게 요약한다. “이레나이우스는 계시의 역동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운동과 진전과 심오한 통일성을 강조한다. 그는 태초부터 활동하신 말씀∙∙∙사도들, 교회를 본다. 이것들은 모두 말씀의 활동 말씀을 통한 아버지의 점진적 발현의 섭리 가운데 나타나는뚜렷한순간들이다. ∙∙∙이렇게 하여 구약과 신약의 불가분적 통일성을 이룬다.”(105). 이런 관점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전반적인 이해를 대변한다. (74.1)
 이미 신약에서 그리고 2세기에 다수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이 신약을 성경으로 받아들인 것이 분명하다. 이레나이우스는 성경을 “계시의 선한 말씀”으로 일컬었다(Against Heresies 1.3.6). 이와 유사한 의견이 기타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에 의해서도 표현되었다. (74.2)
 교부들은 몬타누스주의, 영지주의, 마르시온주의 같은 이단에 맞서, 성경 전체에 근거하여 참된 사도적 전통에 호소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초기 그리스도교의 교부들에게 전통(헬라어 파라도시스, 라틴어 트라디티오)이란 하나님이 주시고 당신의 선지자와 사도들의 입을 통해 당신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전달된 계시를 의미했다.”(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1983, 1388쪽).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된 어떤 요인들이 성경의 최고 권위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74.3)
 사도들에게서 기원된 교회들에서 주장된 전통에 호소하는 것(특히 로마교회의 전통)은 점차로 교회의 권위에 기초하여 성경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떤 책이 정경에 속하는지를 교회가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교부 바실(330-378년경)로 말미암아 성경에 나오진 않지만 교회에 보존된 사도적 기원의 전통도 하나님의 권위를 지닌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교부들의 저술에도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은 갑자기 발전되지 않고 점차 자리를 잡았으며, 서방에서는 수 세기에 걸쳐 교황의 권위가 신장하면서 강화되었다. (74.4)
 중세기에는 스콜라주의가 이성과 계시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켰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년)가 그의 책〈신학대전(Summa Theologica)서 제기한 첫 번째 질문은 우리에게 철학적 학문 외에 다른 지식이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다. 그는 그렇다고 답하면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어떤 진리들이 신적인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이성이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도 신적인 계시에 의해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에 관한 이성적 진리는 단지 소수에게만 나타날 수 있고 그렇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거기에 많은 실수가 섞일 수 있기 때문이다.”(Summa theological 1a. 1. 1). 아퀴나스는 이성의 진리와 계시의 진리를 분명하게 구분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다른 교사들에게 주어진 계시가 아니라 정경의 책들을 쓴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주어진 계시에 의존한다.”(위의 책, 1a. 1. 8). 하지만 신자들은 무류의 거룩한 규준인 성경에 계시된 진리에서 나온 교회의 가르침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위의 책, 2a: 2ac. 3). 아퀴나스가 성경을 계시된 진리의 원천으로 분명하게 받아들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가르침은 한편으로 신학에 대한 그의 이성주의적인 접근 방식으로 인해, 다른 한편으론 교회의 가르침의 무류성을 강조함으로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킨다. (74.5)
 중세 후기에 계시의 원천으로서의 성경과 전통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더욱 첨예해졌다 한편에서 어떤 학자들은 성경과 전통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따라서 전통은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 주어진 계시에 대한 충실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둘 모두 같은 신적인 원천에서 나왔으므로 교회 내의 신앙의 통일성을 통해 보존되었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계시의 두가지 뚜렷한 원천 곧 성경의 기록된 전통 및 사도들이 그들의 계승자들에게 전달한 기록되지 않은 전통이 있다고 주장했다. 둘 모두 신적 권위로 받아들여야했다. (74.6)
 B.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마르틴 루터(1483-1546년)는 인간 존재는 죄 되고 부패한상태에서 하나님을 알지도 알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모호한 존재가 아니라, “계시되어 인봉된 하나님이다. 즉 그분은 특정 장소 곧 말씀과 표징들로써 자신을 제한시킴으로 사람들이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하셨다.”(Commentary on Psalm 51:6).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육신이 되신 말씀 안에서 자신을 최상으로 계시하셨고, 따라서 그리스도는 성경 곧 기록된 말씀과 복음 선포를 통해 드러난다 루터가 일컬은 대로 하나님에 대한 고유의 지식은 성경을 통해 독특하게 제시된다. (75.1)
 1517년에 쓴 〈스콜라주의 신학에 대한 반박(Disputation Against ScrOlastic Theology)이라는 책에 드러난 것처럼 루터는 그의 봉사 초기에 스콜라주의 철학과 신학의 이성주의적인 접근을 비평하였다. 그는 신앙과 교리의 궁극적인 표준은 오직 성경(솔라스크립투라)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오직 성경만이 지상의 모든 저술과 교리의 참된 주인이요 교사이다.”(Luther’s Work 32:11, 12).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필수적인 모든 진리와 교리는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된다. (75.2)
 스콜라주의 신학자들과 대조적으로 루터는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확인하고 성경의 올바른 해석을 제공하기 위해 교회의 권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의 외적인 말씀을 마음속에 불어넣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영혼 속에 심어주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보았다. (75.3)
 계시와 성경의 권위에 관한 장 칼뱅(1509-1564년)의 견해는 루터의 견해와 유사했다. 그는 그의 영향력 있는 저작인〈기독교 강요(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에서 죄로 눈이 멀게 된 인간은 “그분의 작품들에 분명하게 반영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관한 계시에서 유익을 얻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위의 책, 1. 5. 11). 그래서 하나님은 선하심과 자비로써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려 주는 그분의 말씀의 빛을 더해 주셨다.”(위의 책, 1. 6. 1). 칼뱅도 자신보다 먼저 루터가 취했던 입장과 마찬가지로 성경의 신뢰성을 교회가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로운 거짓말로 거부했다. 오히려 교회는 성경에 뿌리박고 성경을 의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개혁자는 이렇게 역설했다 “그러므로 이 점을 분명히 해 두자. 즉 성령께 내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진정으로 성경을 신뢰한다는 것과 성경은 자증적(自證的)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하자(위의 책, 1.7. 5). (75.4)
 칼뱅에 따르면, 계시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비밀의 분명한 나타남”인 복음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주신 구약의 약속들과 증언들도 포함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복음이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은혜의 선포”를 일컫는다(위의 책, 2. 9. 2). 칼뱅은 “온 율법이 관련되는 곳에서 복음은 그 표현의 명확성에 있어서만 율법과 다르다.”라고 지적했다(위의 책, 2. 9. 4). 그러므로 사실상 구약과 신약은 통일체를 구성하므로 둘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계시이다. 하지만 신약은 그리스도를 구약보다 더 분명하게 선포한다. (75.5)
 로마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트렌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 자신의 입장을수정하여 성경 및교회가물려받은 전통이 모두 사도적 전통에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 공의회는1546년에 “정경에 관한 교령”을 공표하고 성경의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된 구약의 복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사도들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구원하는 진리와 도덕적 교훈의 원천”으로 전파한 그분의 명령으로 말미암아 선포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진리와 교훈은 기록된 책들과 기록되지 않은 전통에 포함돼 있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뿐 아니라 신앙 및 도덕과 관련된 전통들도 받아들여, “그리스도 자신의 말 및 성령이 명령한 것”과 동일한 경건과 경외심으로 존중하고 “계속 이어받아 가톨릭교회 안에 보존해야 한다.”(Dezinger 244). 공의회는 이 교령 안에 소위 외경이라는 책들도 포함하는 거룩한 정경의 목록을 삽입하고 이 목록 전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자에게 파문을 선언했다. (75.6)
 트렌트 공의회는 사도적 전통이 부분적으론 성경에 포함돼 있고 부분적으론 기록되지 않는 전통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제안을 거부했지만 그 후로도 긴 논쟁이 이어졌다 계시에 두 원천(성경과 전통)이 있는가 아니면 이 두 가지가 하나의 전통에서 나온 두 흐름(하나는 기록되고 또 하나는 기록되지 않은 것)인가가 논란의 이슈가 되었다. (76.1)
 C. 이성과 계몽주의 시대
 계시와 영감에 대한 현대의 논쟁은 합리주의, 현대 과학, 성경 비평 등과 더불어 이성의 시대에 비롯되었다. 또한 이와 함께 이신론 및 계몽주의 등과 같은 지성적 운동으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한지, 심지어는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런 의문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인 가르침에 도전했고, 특히 성경에 대한 신랄한 비평 그리고 성경을 영감 받은 자료와 계시의 기록으로 보지 않고 총체적으로 부인하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이렇게 하여 근본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지하는 자들에겐 계시의 실재와 본질에 관한 더 깊은 성찰이 요구되었다. (76.2)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542년), 요한네스케플러(1571-1630년)는 지구 중심적 관점에서 태양 중심적 관점으로 결정적인 변화를 유도했다. 결국 태양 중심적 관점을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를 논박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지만, 지구 중심적 관점을 가르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던 하나님의 계시와 성경의 무류성은 의문시되었다. 그 밖에도 17세기와 18세기에 이루어진 과학적 발견, 특히 아이적 뉴턴(1642-1727년)의 중력의 법칙은 우주에 대한 기계론적인 개념을 개진했다. 이런 관점에 비추어 초자연적인 계시는 신화 또는 종교주의자들의 기만적인 조작물로서 불필요한 것이며 심지어는 오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