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이스라엘 - 세대주의 예언해석학 비판 - 제 9장 신약의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지역적 약속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에 따르면(믿지 않는) 육적 이스라엘은 천국의 약속에 참여할 자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믿는 이방인들이 아브라함 자손의 종말론적 축제에 그들의 빈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157.4)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 곧 구속된 하늘과 땅(사 65:17)이 하나 외에는 다른 어떤 희망도, 운명도, 기업도 주신 일이 없다. 사도 베드로의 다음의 말이 이 사실을 가장 결정적으로 확인해 준다. (157.5)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 13, 강조 첨가).
(158.1)
 사도적 권위로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교회의 소망으로 바꾸었다. 이사야 65:17에서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제 교회에게 약속된 기업이 되었다. (158.2)
 이제 의문이 일어난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게 될 승리한 교회(살전 4:16, 17; 요 14:1-3 참 조)는 어떻게 지구를 그의 영원한 집으로 받게 되는가? 그 대답은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서 거룩한 영감은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고 것을 밝혀준다. (158.3)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 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 21:1-5).
(158.4)
 새 땅이 모든 구속사의 최후의 목표이다. 사람의 궁극적 운명은 새로 태어난 지구에 맞추어져 있다(마 5:5; 19:28). 바울에 따르면,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롬 8:21)이다. 오직 그 때에 아브라함의 희망은 성취되고, 이스라엘과 교회 안의 모든 그의 자녀들이 영원토록 한 도성에서 한 가족으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기업이 묵시적으로 실현되고 그의 백성 가운데에 그가 영광스럽게 거하시는 일(계 21:3)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17:7), 모세와 맺은 언약(출 6:7; 신 29:13), 다윗과 맺은 언약(삼하 7:24), 그리고 이스라엘과 맺은 새 언약(렘 31:1, 31; 겔 36:28; 37:23)의 영원한 성취가 될 것이다. (158.5)
 요한계시록 21-22장에서 하나님의 계속적인 언약의 약속들이 마침내 다가올 시대의 새 땅에서 온전한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15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교회는 하나가 되고 한 새 도성 곧 새 예루살렘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 도성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따라 명명한 문과 그리스도 교회의 열두 사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기초석이 있다(계 21:12-14). 브라이트(John Bright)가 결론을 내린 것처럼 그리스도 인들을 위한 공과는 무한하다. (159.1)
 옛적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은 은혜와 책임 사이의 긴장이다. 전자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은혜와 우리가 그것을 믿도록 초청받는 그의 무조건적인 약속들이며, 후자는 교회의 군주로서 그에게 순종해야 할 우리의 책임이다.16 (159.2)
 참고 문헌
 1 Ryrie, Dispensationalism Today, 154, 155.

 2 NSRB, 251(on Deuteronomy 30).

 3 Documentation in Fuller, Gospel and Law: Contrast or Cotinuum?, 15, 16.

 4 W. D, Davies, The Gospel and the Land: Early Christianity and Jewish Territorial Doctrine(Berkeley, Cali: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4), 29.

 5 P. Diepold, Israel’s Land, BWANT NR 15(Stuttgart: W. Kohlhammer, 1972), 109.

 6 Davies(The Gospel and the Land, 43)는 예레미야의 마음의 소망은 “유다뿐만이 아니라 북방 이스라엘도 궁극적으로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렘 3:12; 31:45; 31:9, 15-20)”이 었다고 설명하였다.

 7 Diepold, Israe’ls Land, 183.

 8 새 스코필드 주석 성경(NSRB)은(a) “천국”과(6) “하나님의 나라”란 용어는 의미에 있어서 많이 겹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고 보았다. (a) 지상 백성만을 다스리기 위해 하늘로부터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권,(b) 하나님의 우주적 왕국(994, 1002 쪽). 라이리는 “이러한 구분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교회가 왕국이냐 아니냐이다”(Dispensationalism Today, 173)고 하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하나님의 보좌 위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재적 통치가 다윗 언약의 현재적 성취냐 아니냐이다.

 9 Kaiser, Toword an Old Testament Theology, 90, 91.

 10 Fuller, Gospel and Law: Contrast or Continuum?, 133.

 11 Pentecost, Things to come, 98.

 12 Kaiser, Toward an Old Testament Theology, 94, 110.

 13 P. Fairbaim, Prophecy and Proper Interpretation(Grand Rapids, MI: Guardian Press, 1976; 1865의 재판), 229.

 14 L. F. Were, The Certainty of the Third Angel’s Message(Berrien Springs, MI: First impressions, 1979), 86.

 15 참조하라. Ladd,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632.

 16 J. Bright, Covenant and Promise: The Prophetic Understanding of the future in Pre-Exilic Israel(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6),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