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2부 재림교회 선구자들의 그리스도론 제6장 윌리암 W. 프레스 (1855~1944) 1
 엘렌 G. 화잇의 이런 증언들은 재림교회의 그리스도론 역사에서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프레스캇의 해석을 확고히 했다. 또한 그것들은 W. L. H.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편지13의 문맥 가운데 나타나 있다. 이는 그 동일한 기간에 쓰여진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어떤 재림교회 신학자들은 이 편지를 그들의 ‘새로운’ 해석을 합리화하는 데 인용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는 후에 다루기로 한다.14 그러나 우리는 이 시기 동안에 그 주제에 관하여 엘렌 G. 화잇이 무엇을 기록했는지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그녀가 다른 반대되는 해석에 호의를 가졌다면 이런 열의로 프레스캇의 해석을 지지하였을까 하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127.3)
 프레스캇은 자신의 그리스도론을 확증함
 1896년 한해를 통하여 프레스캇은 예수님의 인성에 관하여<리뷰 앤드 헤랄드>지에 출판한 연재들 가운데서 그의 신념을 확증하였다.15 그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교회의 신조들에 대한 대변인으로서 성서적 가르침의 근거로서 제시하였다.

 (128.1)
 그는 말하기를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을 때 ∙∙∙ 이것은 어떤 종류의 혈과 육이셨는지에 관하여 우리에게 추호의 불확실성도 남기지 않는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취하신 육신은 어떤 사람이든 한 여인에게서 출생될 때 취할 수 있는 바로 그 육신이었다. 그것은 죄 있는 육신이었다.”16

 (128.2)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이란 바울의 표현의 의미에 관해 어떤 의심이라도 피하기 위해 프레스캇은 다음과 같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진술로 구체화한다. “그(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꼭 같은 사람의 모양을 취한 것이 아니라 아담이 타락한 바로 그 수준까지 내려오셨으며 ∙∙∙ 그는 자신위에 죄 있는 육신을 취하셨다.”17

 (128.3)
 프레스캇은 자기 앞서 그리스도의 인성 문제를 취급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경이 다윗의 씨에서 출생한 ∙∙∙ 그분의 출생방식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로마서 1장 3절을 사용하였다.”18

 (128.4)
 1901년에 대총회 부회장직과 <리뷰 앤드 헤랄드>지(1901~1909)에 편집국장으로 임명됨에 따라 프레스캇은 예수의 인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반복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세 논설들을 특별히 이 화제에 집중했다. 그 제목만 보아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그의 형제들과 같이”, “그리스도와 그의 형제들”, 그리고 “죄 있는 육신으로.”19 (128.5)
 그 세 번째 논설은 실제적으로 그의 독자들로부터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에 치중했다. (128.6)
 당연하게도 로마서 8장 3절의 주제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 성경구절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으로 보내셨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에게는 이것이 아주 다른 말로 보인다.20 그 의 답변으로 프레스캇은 다음의 네 기본적인 진리들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129.1)
 1. 예수님이 인간의 혈육에 참여하심
 첫 번째로 프레스캇은 히브리서 2장 14~17절을 인용하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인간 자녀의 혈육에 참여하셨다”고 말한다. “이 지상으로부터의 자연스럽고 정당한 결론은 예수님의 혈육은 자녀들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것은 동일한 영광아래서 더 강조된다. ‘진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심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129.2)
 그 다음에 그의 첫 번째 결론은 이렇다. “예수님의 사명은 타락한 천사들을 구출하는 데 있지 않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시고 천사들과 동일시하신 것이 아니다. 그는 범사에 그분이 돕기를 제안하신 그 인간들과 같이 되셨다. 인간의 육신은 죗되다. 범사에 인간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죄 있는 육신을 취하심이 필요했다.” (129.3)
 2. 인간의 육신과 같은 육신
 다음에 프레스캇은 로마서 8장 3절“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를 인용하고, 질문을 제기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죄 없는 육신’을 의미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왜 미국판 개역성경(ARV)의 여백에서 보는 ‘죄의 육신’(filesh of sin)이라는 단어들이 마치 예수님의 육신이 우리들이 갖고 있는 것과 동일한 육신이었다는 의미를 전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 말에 다른 어떤 말을 첨가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부자연스런 억지해석이 요구되는 것 같다.”

 (129.4)
 프레스캇은 부가하여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만일 그것을 유사한 표현 방식이 사용된 다른 말과 비교해 본다면 이 구절의 의미를 더 명백하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가 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그분이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읽을 때 예수님은 진정으로 한 사람이었다고 우리는 당연히 결론 내리지 않겠는가? 참으로 그렇다. 그분이 ‘사람들과 같은 모양으로’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아들이 죄 있는 육신을 갖도록 함이 꼭 같이 분명 하지 않을까? 어떻게 그분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됨과 동시에 그의 육신은 죄 없게 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러한 해석은 개념상의 모순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130.1)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프레스캇은 재빨리 부언한다. “비록 예수님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심을 받았지만 그분은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130.2)
 3.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기 위하여 보내심
 아직도 ‘죄 있는 육신’에 대한 필요를 더 명백하게 하기를 원하는 프레 스캇은 계속한다. “하나님의 품성이 그를 믿는 죄 있는 사람들 안에서 증거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그분 자신 안에 신성과 인성을 연합할 것과 그분이 지녔던 육신은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서 이와 같이 증거되기를 원했던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육신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아들이 유대 땅에 나타나셨을 때에 육신으로 장막을 치심으로 그분이 모든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실 수 있도록 한 길이 준비되어야 했으며 그러므로 그분이 그분의 교회의 교인들 안에 거처를 정할 때에 그분이 그 안에서 후에 거하셔야 할 육신과 똑같은 육신을 취하셔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130.3)
 이것은 단순한 이론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출생하셨을 때 죄 있는 육신에 거하지 않으셨다면, 그러면 그 사닥다리는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온 것이 아니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타락한 인류 사이에 큰 심연은 다리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과 죄 있는 육신 사이에 연결을 완성하기 위하여 어떤 다른 방법들이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로마 천주교가 해 온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 조직의 신조는 우리의 서신 왕래에 의해 취해진 견해와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이 교리의 공식적인 표현은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수태설이라고 불리워진다. ∙∙∙ 우리는 이 교리들을 부인하고 명백한 성경의 교훈을 고수함으로 이런 영향들에서 벗어난다.”

 (131.1)
 4. 당신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