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이스라엘 - 세대주의 예언해석학 비판 - 제 8장 로마서 9-11 장의 교회와 이스라엘
 이러한 이유로 교회가 유대인의 복음 전도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는다. 엘레 G. 화잇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증거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라고 격려한다. (139.4)
유대인들에게 빛을 주어야 할 때가 왔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백성들을 위하여 제대로 일할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지하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진리를 확신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자리를 취할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 오순절에 하루에 회개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만큼 회개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가 올 것이다.11
(139.5)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영광은 구원에서뿐만이 아니라 유대 백성에게서 실현될 것이다”12라는 원칙을 말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바울의 희망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복음 전파를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가? 세대주의 종말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이러한 의문은 브루스 콜리(Bruce Corley)에 의해 제기되었다. (140.1)
우리는 “충만한 이방인”이 세상에서 휴거 당한 칠년 후에 묵시적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유대인들은 차별적인 특혜로 구원을 받는가? 아니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통해서인가? 전자의 견해는 바울 복음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이다.13
(140.2)
 바울은 이방인이 구원받는 방법 즉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스라엘의 주님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 이외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다른 길을 제시한 적이 없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조건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희도 믿지 아니하 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롬 11:23, 강조 첨가). 이스라엘 민족은 그의 조상 아브라함의 혈통을 믿고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주장하며 무조건적 보증으로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축복을 기대하여 왔다(마 3:7-9; 요 8:33-34 참조). (140.3)
 그러나 바울은 이스라엘이 민족적 우월을 자랑하는 이런 태도에 대해 단호하게 선언한다. (141.1)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2, 13; 3:22-24 비교).
(141.2)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모든 신학적 차이를 제거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안에 계시”(골 3:11; 갈 3:26-29 비교)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스라엘 민족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은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의 복음을 거절하면서(롬 9:31-10:4)도 종교적인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몰락과 거절당함의 원인이 되었다(롬 11:11, 15).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거절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롬 11:11). (141.3)
 이스라엘의 남은 자 신학에 대한 바울의 적용
 사도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매우 잘 알고 있던 “남은 자”에 대한 약속을 제기하여 비록 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였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주장을 유지하고자 한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 9:6). 그러므로 바울은 이스라엘 국가 내에서 영적 이스라엘에 대한 구분을 계속한다. 선지자들은 영적 이스라엘을 남은 자손이라고 불렀고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들을 지닌 자들이 되었다. 신실한 남은 자손들을 통해 이스라엘은 구속의 역사 속에서 계속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크신 은총으로 신실한 남은 자손을 준비하셨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매 심판마다 당신께 순종하고 신뢰한 그의 백성들을 거절하지 않으심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들은 주님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떠나서는 하나님께 주장하는 데 사용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약속과 이스라엘의 믿음은 바울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약속은 믿음으로 오나니”(롬 4:16)라고 한 것처럼 서로 분리될 수 없다. (141.4)
 세대주의자들은 개개인의 이스라엘인을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조건적 성질을 받아들이나 국가적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무조건적 약속들을 주장한다. 라이리(Ryrie)는 로마서 9:6에 나타난 영적 이스라엘과 육적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구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하였다. (142.1)
로마서에서 바울은 자연적인 출생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된 자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는 이스라엘 인에게 약속된 생명과 사랑을 보증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14
(142.2)
 바울이 확언하는 견해에 의하면 육적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의 언약에서 보증하셨던 “생명과 사랑”의 언약적 약속들을 주장할 권리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주님과 메시아를 믿는 믿음이 그의 축복들을 받는 조건으로 요구되었기 때문이다(롬 11:23). 그러나 이 믿음의 조건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의해 선택된 남은 자에게서도 실현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한 로마서 주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42.3)
“남은 자”란 다만 버림받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과 구별된 어떤 개인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다. 그들 자체가 선택된 사람들이다. 단 한 마디로(in nuce) 그들은 이스라엘이다. ∙∙∙. “남은 자” 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적 은혜가 누가 “남은 자”에 속할지 결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 “남은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른다. 그들은 아무런 주장도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에 의지하고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영적 이스라엘로서 남은자는 약속의 성취를 받는다.15
(142.4)
 세대주의는 같은 언약 안에서도 이스라엘 개인은 단지 조건적인 약속만을 가지고 있고 민족적 이스라엘은 무조건적인 약속을 가지고 있다는 방식으로 개인적 이스라엘과 민족적 이스라엘을 대조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세대주의적 개념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오직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라”(롬 9:27)는 히브리 신학을 계속하고 있다. 이 구절은 이사야 10:22-23 중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21절을 인용한 것이다. 바울의 메시지는 하나님은 그의 말에 신실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그가 약속하신 창조적인 권능을 통하여 다시 믿음 있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모세와 아브라함 언약의 합당 한 후사는 믿지 않는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들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 스도에게 속한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142.5)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143.1)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143.2)
 바울 시대에 이스라엘의 믿는 남은 자손들은 나사렛 예수가 예언적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바울이 기록한 것처럼,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 10:17). 그러므로 바울이 이해한 그대로16 이스라엘의 남은 자손의 일원이 되는 데 민족적 우월이나 선호는 없다. “그리스도인”(행 11:26)이란 이름은 오직 메시아적 백성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 받은 이스라엘인이나 이방인들 모두를 의미한다(갈 3:26-29). (143.3)
 그러므로 바울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호세아의 약속들을 그 종말론적 성취로서 전체 기독교 교회의 형성에 적용하고 있다(롬 9:25, 26; 호 2:23; 1:10 비교). 이제 교회가 그리스도를 거절한 이스라엘 민족—로마서 11:17에서 꺾인 가지로 묘사된—의 자리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가 이스라엘의 언약과 축복과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물론 배도가 발생하면 저주도 받게 된다. 그의 백성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적 축복은 육적 이스라엘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적 부르심은 후회함이 없으시기 때문이다.(롬 11:29). (143.4)
 바울은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신정의 회복을 찾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