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은 구약의 이상적인 청지기가 되었다. 요셉의 이야기는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한다. 비참한 노예로 팔린 그는 보디발의 집(창 39:4, 5)과 바로의 왕국(창 41:39-41)에서 두드러진 위치에 올랐다. 요셉은 자신의 사명을 이해했다. 그는 “하나님이∙∙∙선을 위하”“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시려”(창 50:20)고 그런 가혹한 취급을 겪게 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시편 기자는 요셉의 생애를 돌아보며 하나님이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시 105:17)을 언급했다. 요셉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애굽에 큰 축복을 가져 왔다. “왕이∙∙∙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20-22절).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고대 이집트 민족에게 삶의 샘이 되도록 하셨다. 요셉의 온전함을 통해 온 백성의 삶이 보전되었다.”(사도행적, 13). (752.4)
 c.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웃 나라들에게 진리와 은혜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셨다. 그분의 백성은 그분의 청지기가 되어야 했다. 이것이 그들과 맺은 언약의 조건이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 6). 그들은 풍성하게 축복을 받아서 다른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그들은 결코 빌릴 필요가 없었다(신 28:12). (752.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물질적인 축복은 세상의 관심을 끌 것이었다. 열방이 이스라엘을 찾아와서 그들의 특별한 번영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축복의 근원을 효과적으로 증거하고 하늘의 하나님께 순종할 필요성을 가르치는 길을 열어 줄 것이었다(사 44:8; 49:6; 말 3:12). 하나님은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이 구원하는 은혜의 청지기가 되도록 모든 준비를 갖추셨다. “나 야훼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사 42:6, 7). (752.6)
 2. 신약
 a. 하나님의 완전한 청지기로서의 예수님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청지기들의 수장으로 세상에 오셨다(요 5:36). 잃어버린 세상의 회복과 구속은 그분의 청지기 직분의 고려 사항이자 핵심적 요소였다(눅 19:10; 엡 1:10). 마치 우주의 잃어버린 부분이 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분의 손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마 1:21). 그는 생명을 얻게 하려고 오셨다(요 10:10). 아버지 하나님은 사명과 심판을 위해 그에게 권세를 주셨다(마 28:19, 20; 요 5:22-27; 8:29). (753.1)
 바울이 에베소서 1:9-23에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은 구원의 계획의 관리자이다. 그 계획은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활동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인간으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면서 책임을 지고 그 계획을 감독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자기를 세우이에게 충성”(히 3:2)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다(3절)고 한다. 하나님의 집 맡은 충성스러운 아들로서 그분은 그분 자신이 구원의 중개자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753.2)
 b. 그리스도의 비유에 나타난 청지기직분
 청지기직분의 개념은 예수님의 어떤 비유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12장에는 충실한 청지기와 불충실한 청지기가 대조된다. 종들은 허리를 졸라매고 등불을 켜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대비하라는 경고를 받는다. 첫 번째 노크 소리에 그들은 빨리 문을 열고 응답해야 한다. 주인이 올 정확한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고 밤의 이경이나 삼경일 수도 있다. 주인의 명령을 이행하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게된다(42-44절). 그러나 또 다른 청지기는 주인이 올 것을 대비해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청지기이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46절). (753.3)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의 지식과 은사에 대한 책임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47절). 예수님은 이 비유가 제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다양한 축복이 아낌없이 주어졌다. 그들은 주인의 은사를 맡은 청지기로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했다. 세상 끝에 청지기직분에 대한 충분한 해명이 요구될 것이다(참조 마 24:45-51; 25:14-30). (753.4)
 청지기직분은 므나의 비유(눅 19장)와 달란트의 비유(마 25장)의 주요 주제이다. 귀인 또는 지주는 먼 나라로 여행을 한다. 그는 자신이 멀리 있는 동안 종들이 수행할 지시와 임무를 주기 위해 그들을 불러 모은다. 주인은 그들이 자산을 현명하게 사용함으로 각각 이익을 내주길 기대한다. 누가복음 19:13은 주인이 떠나 있는 동안 종들이 그것을 가지고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에서 그는 “그 재산을 그들에게 맡겼”다(마 25:14). 종들은 그들의 책임을 이해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그렇게 했다(16, 17절). 두 비유에서 귀인 또는 지주의 부재 시에도 청지기직분을 잘 수행한 종들은 칭찬을 듣고 보상을 받았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인 및 그의 관심사와 일체감을 가졌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 검토와 평가가 있을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 집에서” 시작된다(벧전 4:17). (753.5)
 마태복음 25:31-46에서 청지기는 옥에 갇힌 자, 병자, 가난한 자, 노숙자 등 불행한 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따라 판단된다. 이타적으로 나눈 자들은 그러한 행위가 왕 자신에게 행해진 것이라는 그의 선언에 놀란다. 그들은 “나라를 상속”하라는 초대를 받는다(34절). 평가에서 실패한 자들은 “영원한 형벌”(46절)에 처해진다(46절). (754.1)
 이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청지기는 보상과 징벌을 받는다. 모든 경우에 집주인은 타협하지 않는다.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그것을 증진시켜야 한다. 판단 기준은 명확하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754.2)
 c. 사도교회에서의 청지기직분
 사도 시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인 청지기직분의 역동적인 한 실례를 보여줬다. 초기교회 구성원들은 개별적으로 또는 단체로 청지기가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태도와 실천으로 그리스도인 청지기직분의 원칙을 잘 보여줬다. 각 사람은 관대함을 나타내며 그들의 부를 나누고 선한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도행전 2:44, 45은 활동하는 그리스도인 청지기직을 묘사한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754.3)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꼈다. 이러한 전 그리스도교적인 인식이 초기에 발전하였다. 선지자 아가보가 예언했던 기근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이방인 가운데 믿는 자들은 아낌없는 자선을 베풀었다. 바울은 이 위기를 진정한 아가페적인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그일을 통하여 범세계적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강화되고 연합되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 11:29, 30). (754.4)
 고린도후서 9:6, 7에서 바울은 ‘베풂의 신학’을 발전시킨다. 요점은 이것이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754.5)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이타적인 베풂은 반향을 일으켰다.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11-13절). (754.6)
 교인들은 믿음의 식구들을 돌보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의 궁핍한 자들을돌보는 동안에도 그들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청지기의 책임은 친족의 필요를 돌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바울은 이것을 매우 강조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7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