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나 신약에는 “청지기직분”이라는 말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함축하는 단어가 없다. 교리는 한 단어 또는 하나의 본문의 주석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고 가르치는 대로 이 교리는 성경 전체에 광범위하게 근거하며 확고하게 뿌리박고 있다. 그것은 구약과 신약의 본문에 의존한다. 그 개념은 역동적인 성경적 증언의 지속적인 조명을 통해 더 발전하고 명확해진다(참조 잠 4:18). (747.1)
 A. 개념과 용어
 1. “집을 다스리는 자”
 가장 단순한 용어로 표현하면, 청지기란 다른 사람의 사업이나 재산을 관리하고 책임 맡도록 고용된 사람이다. 용어는 단순할 수 있지만 개념은 광범위하다. 분명히, 청지기는 종이지만 권위 있는 종이다. 이는 “집”을 돌보는 집사(majordomo, 가령[家令])로 누군가를 임명하는 거의 보편적인 관습에서 그 실례를 찾을 수 있다. 아브라함의 종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이었다. 즉 그는 아브라함이 소유한 모든 것을 관리했다(창 24:2). (747.2)
 바로는 요셉에게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창 41:40고 하였다. 여기서 “집”은 재산, 토지 소유권 또는 영역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거주지, 건물에 사는 사람들, 가족의 일 또는 전체 나라의 이익을 의미할 수 있다. 보디발은 요셉이 자신의 집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았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창 39:4). (747.3)
 바로의 관리자가 되기 전에 요셉은 옥중에서도 죄수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22절). 바로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된 후에, 요셉도 자신의 집을 돌보는 청지기를 고용했다. 그의 형제들이 애굽을 방문했을 때, 요셉은 “그 집의 청지기에게 말하여”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어 돌려주었다(창 43:19; 44:1). 요셉의 형제들에게 나타낸 청지기의 반응을 보면 요셉이 그를 신뢰하여 가정사 전반을 그에게 맡겼음이 분명하다(창 43:23). (747.4)
 더 확대하여 “집”은 도시, 지방 또는 왕국을 포함하는 책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집)의 왕으로 삼았더라”(삼하 2:4). 열왕기하 10:5에 나오는 “왕궁을 책임지는 자”는 왕의 “집”을 책임 맡은 자였다(이런 표현은 왕하 15:5, 에 8:2, 사 22:15, 36:3 등에서도 사용됨). 다니엘서에는 환관장이 네 명의 히브리 귀인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단 1:10). 환관장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단어(사르)는 “청지기”로도 바꿔 쓸 수 있으며, 대장 우두머리, 장군, 총독, 관리인, 주인, 통치자 또는 청지기를 가리킨다. 이런 개념이 발전해 감에 따라 청지기는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받지 않고는 그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747.5)
 2. 청지기(오이코노모스)와 청지기 직분(오이코노미아)
 신약은 구약의 사상을 1세기의 사상과 개념 및 언어와 결합시킴으로써 청지기직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풍성하게 하고 확대한다. 청지기직분과 관련된 가장 일반적인 헬라어 단어는 “집”을 의미하는 오이코스오이키아에서 파생되었다. 오이코노모스는 집을 지키는 사람으로 청지기 또는 관리자를 말한다. 오이코노미아“집 경영”이라는 추상명사이며, 그 의미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곤 한다. (747.6)
 예수님의 비유(눅 16:2-4)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는 오이코노모스라고 불리며 그의 의무와 책임은 오이코노미아“청지기직분”이라고 일컬어진다. 고린도전서 9:17에서 바울은 오이코노미아를 그에게 맡겨진 신탁[“직분”]이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1:10오이코노미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언급한다. 에베소서 3:2에서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청지기 직분”을 언급한다. (747.7)
 골로새서 1:25에서 오이코노미아“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게” 하는 하나님이 주신 권한이다. 디도서 1:7에서 감독은 “청지기”(오이코노모스)라고 불리는데, 이는 그가 수행해야 할 청지기 직분의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748.1)
 오이코노모스로마서 16:23에서 도시의 재정관[“재무”]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4:1, 2에서 바울은 교회가 그와 그의 동료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다. 더욱이 그는 “맡은 자(오이코노모스)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청지기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748.2)
 B. 청지기직분의 기초가 되는 창조
 1.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
 청지기 교리는 창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청지기 직분의 본질을온전히 파악하려면 어떤 경우든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사실 창세기의 처음 세 장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본성과 품성에 관한 개념을 결정한다. (748.3)
 암시적이든 명시적이든 하나님이 “궁극적인 관심의 주인”이라는 사상은 성경 전반에 배어 있다. 창세기의 첫 번째 구절에서 야훼가 창조주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성경 기자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명확한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참조 창조 III. A-C).
 2. 하나님의 소유권
 창조를 통해 하나님은 변함없는 사랑을 지닌 은혜로운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분의 창조 사역은 그분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통찰을 준다. 그분은새로운 세계를 관심과솜씨로써 조성하셨다. 탁월한 명장의 세계는 무한히 아름답다. 시편 기자는 사람들에게 “야훼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라(시 107:31; 111:4)고 권하고 있다. (748.4)
 성경 전반에는 창조와 구원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가 나타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구속주이다.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그분은 죄의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구원의 계획을 마련하셨다(벧전 1:18-20). 따라서 예수님의 인격 속에서 창조와 구속과 은혜가 하나가 되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진리와 결속된 거룩한 은혜는 참화하는 죄인과 인간의 범죄로 영향을 받은 지구를 완전하게 재창조한다(참조 구원론111. C). (748.5)
 창조는 사랑 많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였다. 창조의 목적은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 될 지적인 존재들로 세계를 채우는 것이었다. “야훼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야훼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18). (7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