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는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이미 알려진 관행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창 14:18-20. 야훼께 서원한 야곱에 관해서도 같은 기록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 (750.6)
 십일조는 하나님께 속한 10분의 1로 간주되어야 했다.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야훼의 것이니 야훼께 성물이라”(레 27:30). 거룩하게 구별된 10분의 1은 야훼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야훼의 것이로다”(시 24:1; 참조 50:10-12; 학 2:8). (750.7)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씨앗의 모든 수확물 곧 “매년 토지소산”(신 14:22)의 십일조를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언약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이같이 나타냈다. 그분은 모든 면에서 첫째가 되어야 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야훼를 공경하라”(잠 3:9). (750.8)
 다음과 같은 기록은 포로기 이후에도 십일조의 실천이 계속되었음을 나타낸다.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느 13:12). 분명히 십일조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지원을 포함하는 종교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민 18:21). 포로기 이후 시대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었다(느 12:44). 이 일은 그들에게 “재물 얻을 능력”(느 8:8)을 주신 크신 공급자께 기쁨과 감사로 행해졌다. (750.9)
 십일조는 유형적인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물리적인 창조가 “좋았더라”라고 선포되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따라서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야훼를 공경하라”(잠 3:9)고 명령한다. 십일조를 돌려드리는 것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분리하는 잘못된 이분법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모든 좋은 선물을 주는 분이시다. 그분은 이른바 영적인 것과 이른바 자연적인 것을 근본적으로 구별 짓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전 3:11). 훗날 예수님은 십일조를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마 23:23) 것으로 인정하셨다. (751.1)
 예배자는 십일조를 돌려드림으로써 가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과 동역자가 된다. 희생적인 사랑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은 돌보시는 하나님과의 일체감을 드러내 준다. 하나님의 관심과 염려가 믿는 자의 관심과 염려가 된다. 그리하여 언약 관계가 깊어진다. (751.2)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서 겪은 유대 민족의 경험은 십일조 제도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온 백성이 하나님과 진심어린 언약을 맺었다. (751.3)
 모든 유대인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창고에 가져 왔을 때 느헤미야는 창고지기를 임명하였는데, 그들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다(느 13:13). (751.4)
 구약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야훼의 요구 사항과 더불어 풍성한 축복의 약속을 되풀이 한다. (751.5)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야훼의 말이니라”(말 3:8-12). (751.6)
 십일조를 돌려드리지 않으면 언약의 위반으로 간주된다. (751.7)
 D. 청지기직분의 실례들
 야훼께서는 십일조와 더불어 헌물을 요구하셨다.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이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고 있다고 한탄하셨다(말 3:8).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순례할 때 그들은 헌물 곧 맛타나를 드려야 했는데, 그것은 “주다”를 의미하는 나탄이라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신 16:17). 이 단어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는 선물(창 25:5) 및 하나님이 아론에게 주신 제사장 직분(민 18:7)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또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한 선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참조 에 9:22). (751.8)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그분의 가장 부유한 선물인 은혜를 선물로 받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비롭고 은혜롭고 선하셨다. 토라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었다. 풍성한 은혜의 나타남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 시편 96:8에 제시되어 있다. “야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야훼께 예배할지어다.” 다윗은 경외심으로 이렇게 외쳤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751.9)
 나눔의 본보기로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약 1:5) 하나님을 바라본다.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시는(마 5:45) 분을 본받는다.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모본, 곧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롬 8:32) 분 안에서 변화된다. (752.1)
 1. 구약
 하나님은 특정한 개인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통해 항상 그분의 은혜를 세상에 전하신다. 그들은 세상에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 보이고 어떤 의미에서 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성경에 기록된 어떤 인물들은 신실한 청지기직분의 원리를 집약적으로 나타내보여 준다. (752.2)
 a. 아브라함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약속은 이것이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언약 관계에서 야훼께 대한 전적인 헌신의 모본으로서 두드러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야훼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히브리어로 ‘그를 알았나니’) 이는 나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9). 청지기직분은 신뢰 관계를 전제로 한다. 하나님께 대한 충실, 그분의 뜻에 대한 헌신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대한 순종은 참된 청지기의 특징이다.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으로써 그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수탁자로 삼고 싶어 하셨음을 분명히 했다. (752.3)
 b.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