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2부 재림교회 선구자들의 그리스도론 제5장 알론조 T. 존스 (1850~1923) 1
 존스의 견해, 이 질문은 애당초 제기되지 않았어야 했다. “둘째 아담은 첫째 아담과 같은 존재로서 오신 것이 아니며, 첫째 아담이 그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 그 시점에 오신 것이다. 둘째 아담은 첫째 아담으로부터 인류가 물려받은 인류의 퇴락된 그 시점에 오셨다.”32 “예수님은 사단의 영토에 오셨고 사단 자신이 영향을 끼친 그 위치에서의 인성을 취하셨다.”33

 (109.1)
 어떤 대표자들은 예수께서 어떻게 죄인이 아니셨으면서도 “죄 있는 육신”을 가지실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음이 아주 명백하다. 이점에서 존스가 대답해야만 했던 질문들이 생겨났다. 즉각적으로 그는 무염시태설의 교리를 다루어야 하겠다는 부담을 갖게 되었다. “그는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까이 접근하실 수 없으시며 또한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죄 있고 퇴락하여 타락한 인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그 거짓교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의 성육신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사상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분리시키는 교황권에서 비롯된 것이다.”34

 (109.2)
 이 가르침에 의하면 “그러므로 마리아는 흠이 없고 완전하고 죄가 없고 그룹천사나 케르빔 천사보다 더 고귀하게 출생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는 그 여인으로부터 그와 같이 출생하여 그 여인으로부터 완전무결한 죄 없는 인성을 취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을 우리들로부터 그룹천사나 케르빔 천사보다 더 멀리 그리고 죄 없는 본성안에서 격리시킨다∙∙∙. 나는 나를 도와줄, 죄 있는 본성에 관해서 어떤 것을 알고 있는 그런 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본성이고 주님의 본성이시며, 이와 같이 주께서는 우리와 하나가 되셨기 때문이다.”35

 (109.3)
 어떤 대표자들은 존스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정욕들을 갖고 계셨다”고 말하므로 너무 지나치게 가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109.4)
 그들은 다음과 같은 엘렌 G. 화잇으로부터의 문장을 가지고 그와 대질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을 지니신 형제이시나 동일한 정욕들을 갖고 계시지는 않다.” 존스는 예수님의 육신과 그분의 마음 사이에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으나 죄 있는 마음의 모양으로 오시지는 않으셨다. 그분의 마음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지 말라. 그분의 육신은 우리의 육신이셨으나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셨다. 그러므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36

 (110.1)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들 스스로 속임받도록 허용하므로 그들은 사단의 영의 ‘종’이 되었고 우리도 그들을 따라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아담 자신의 입장에서 싸움을 싸우러 오셨다. 아담은 낙원을 잃어버렸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자손들에게 한 번 더 전달되게 되었다. 그리고 사단은 정복되었다.”37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셨으나 모든 시험을 대항하고 죄로 이끄는 모든 유인에 대항하는 그 충직성을 유지했던 마음—죄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았던 마음—아니, 결코 조금도 생각으로조차도—그런 마음을 갖고 오셨다.”38

 (110.2)
 존스는 그의 논증을 입증하기 위하여 엘렌 G. 화잇이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관해 빌립보서 2장 6, 7절히브리서 1장 3절에 대해 인용한 그 분의 두 가지 본성인 신성과 인성을 강조한다.39 그 다음에 존스는 아직 인쇄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생애”라는 임시 제목이 붙었던 시대의 소망의 원고로부터 인용하였다. “위대한 구속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구주께서는 타락한 사람의 입장을 취하셔야만 하셨다. ∙∙∙ 타락한 사람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서 있던 곳까지 내려 오셔서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분은 인성을 취하시고 인류의 연약성과 퇴화성을 지니셨다. 그분은 인간의 재난의 가장 낮은 곳까지 스스로를 낮추심으로 사람을 동정하실 수 있고 죄가 그를 빠뜨려 놓은 타락의 늪으로부터 그를 구출할 수 있게 하셨다.”

 (110.3)
 “∙∙∙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거기에 준하는 조건들 을 짊어지셨다. 그분은 시험에 굴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의 본성을 취하셨으며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의존하셨다.”40

 (111.1)
 존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보십시오. 우리는 어디에서나 견고 한 터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지만 우리의 정욕들에는 참여하지 않으셨다고 거론될 때 그것은 솔직하고 옳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성의 마음은 결코 죄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 성령에 의해서 자유로이 우리에게 제공되었습니다.”41

 (111.2)
 어떤 사람들은 존스가 사실상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정욕을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느꼈다.42 전혀 그렇지 않다. 존스는 우리에게 보편적인 죄로 기우는 유전적인 경향들과 우리가 시험에 굴복함으로 계발되는 습관들 사이에 차이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바로 그분의 최선을 다하셨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은 우리의 육신이었으며 그 안에는 우리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우리의 육신 안에 있는 죄로 기우는 모든 경향이 그분의 육신 안에 있었으며 그것들은 그분이 죄에 동의하도록 그분을 유인했다.”43 이와 같이 예수는 그의 육신 가운데 유전적인 우리의 정욕을 지니고 있었으나 결코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셨다. 이것이 존스가 자신의 주장이 모순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정욕들을 소유하셨지만 그분이 결코 그것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모든 문제점은 이 차이점을 깨닫는 여하에 달려 있다.44

 (111.3)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가 가능함
 진실로 육신 가운데서 죄를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는 존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제자들 각 사람마다 육신 안에 있는 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은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111.4)
 즉 육신 안에 있는 죄를 멸함으로 “율법의 의로운 요구 조건들이 죄의 본성을 따라서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사는 우리들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다”(롬 8:2~4). (112.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죄 있는 육신 안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주 앞에 그분이 죄 있는 육신을 소유하셨음에도 죄를 나타내는 대신에 그분 자신의 임재와 능력과 영광을 나타낼 수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그리고 그 아들이 어느 사람에게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사람에게 요청되는 전부는 그 사람이 주님으로 하여금 주 예수님으로서 그를 소유하게 하는 데 있다.”45

 (112.2)
 1893년 초기에 존스는 그리스도의 죄에 대한 승리로부터 이런 실제적인 교훈을 이끌어 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서 의의 옷을 짜셨기 때문에 “그분(하나님)은 당연히 우리들이 그것을 마치 그 육신이 불멸의 것으로 만들어졌을 때처럼 지금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 ∙∙∙ 마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안에 내재하시고 하나님이 그분 안에 그분의 품성이 우리 안에 내재하시며 그분의 품성이 우리들이 당면하는 이런 고통과 시험을 통하여 우리들 속으로 짜여지고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의의 옷을 짜는 분이시나 우리들 없이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 곧 여러분과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비밀 곧 복음의 비밀이며 이것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46

 (112.3)
 꼭 같은 실제적인 결론이 1895년 그의 17번째 연구에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해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47 어느 때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을 폭넓게 생각할 때 “그분(예수님) 안에 거하였던 거룩한 영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바 된 그 성령은 우리의 본성적이고도 죗 된 자아를 억제할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우리의 승리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원수를 멸하시는 방법이다.”48

 (112.4)
 A. T. 존스의 기록과 설교는 1888년 기별의 가장 위대한 진리였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 8:2)을 통하여 승리의 생애를 살 수 있다.” (112.5)
 존스에 의하면 어떤 사람은 이런 자유에 대해 그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죄에 대한 승리가 절대적으로 확보된 것이며 결국 죄의 권능이 육체로부터 떠난 것이라고 오해하여 완전 주의에 빠져든다. (113.1)
 1899년 ‘거룩한 육체’ 운동에 대하여 언급했는데 이것은 1901년 대총회와 (그 후에) 오류라고 판명되었다. “죄 있는 육신”이란 그의 기사는 그리스도인 완전에 관한 주제 가운데 어느 정도 밝혀지고 있다. (113.2)
 “많은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중대하고도 매우 성가신 오류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회심할 때 그들에게 이전의 죄 있는 육신이 지워진다는 생각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그들로부터 죄 있는 육신을 전적으로 분리시킴으로 그 육신으로부터 구원받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다음 그들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그래서 그들의 옛 몸과 동일한 경향을 지니고 동일한 잘못과 동일한 유혹에 빠지는 동일한 육신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그들은 그것에 대처할 준비가 되지 못하여 실망하게 되면 결국 낙심하게 되고 결코 자신들이 회심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49

 (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