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3 부 성소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 11. 일곱 가지의 등대 (나의 모든 빛은 그리스도외 것임)
 제사장은 등을 끊임없이 손질해야 한다. 그의 감시는 기름과 심지의 중단 없는 공급을 보증했다.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위한 빛의 전달자가 될 수 없다. 끊임없이 밝은 빛을 내게 하는 것은 하늘의 사자들이 금그릇에 있는 금기름을 금관(金管)을 통하여 성소의 등잔에 넣어 주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빛을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게 하는 것은 곧 끊임없이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합된 모든 사람 속에는 사랑의 금기름이 값없이 부어져서 그 사랑의 빛이 선행과 하나님을 위한 진실되고 참된 봉사를 통해서 반사하게 된다”(실물교훈, 418). (145.2)
 복음시대에는 우리의 대제사장의 위치가 “교회에 대한 당신의 관계”에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금 촛대 사이가 되어 있다(계 1:12~20).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끊임없이 교통하고 계신다. ∙∙∙ 부단한 조심과 끊임없는 경계로 당신의 파수병들(혹은 촛대, RH, 1887. 5. 31.)중 어떤 이들의 빛이 흐리거나 꺼지지는 않는지 보시려고 살피신다. 촛대들이 단순히 인간의 돌봄에 맡겨진다면 껌벅거리는 불꽃은 약해져서 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여호와의 집의 참 파수꾼이시요, 성전 마당의 참 청지기시다. 당신의 계속적인 사려와 유지하시는 은혜는 생명과 빛의 근원이다”(사도행적, 586; 이 말은 “성전 뜰”의 촛대 혹은 요한계시록 1, 3장“일곱 금촛대”와 함께, 일곱 가지의 촛대와 동일시 된다.) (145.3)
 촛대는 빛을 비출 수 없다
 비록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었을 지라도 등대는 빛을 비출 수 없었다. 그것의 유일한 기능은 빛을 가진 자들을 높이 들어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이야기이다(마 5:15). 예수님은 당신의 새로 태어난 제자의 마음을 당신의 심지로 만들기 위하여 당신의 품성의 옷을 주신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의 영혼”“여호와의 등불”(잠 20:27)로 만들기 위하여 관대하게 은혜의 기름을 첨가하신다. 여기에서 나타내고자 의도한 “사람”은 첫째 그리스도시고, 다음은 확대하여 그분의 제자들이다. “그리스도는 어둠 속에서 비치는 빛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따르는 자들 역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거룩한 제단에서 그들의 초를 불붙여야 한다. 진리로 성화되는 품성은 완전한 광택을 첨가한다”(YI, 1895. 1.3.). (145.4)
 이 제자의 “영”은 선과 악을 막론하고 생애의 자극에 그가 반응할 때 나타낸 그의 태도와 감정의 총체이다. 모든 흑암의 투쟁 기간에 그의 맏형님의 “영”을 반영하기 위하여 신자는 거룩한 기름을 찾아야 한다. 오직 그 때에만 그분께서 그에게 입혀 주시는 그리스도의 의의 심지에서 참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 “말씀은 설교자의 빛이며, 황금 기름이 하늘 감람나무로부터 대접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처럼 그것은 생명의 등대가 모든 사람이 식별할 수 있도록 분명하고 힘차게 빛을 발하도록 한다”(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342). (145.5)
 등대는 “여호와 앞에서 ∙∙∙ 끊이지 않고”(레 24:4), 그 빛을 비추었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하나님께로만 주의를 이끌기 위하여 우리 구주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146.1)
 빛은 모든 거룩한 것들 위에 흐른다
 등의 빛은 떡과 포도즙이 놓은 금상 위에도 흘렀으며(대하 13:11), 굶주린 마음, 목마른 영혼에게 예수께 와서 먹고 마시도록 초청했다. 그 영광은 그 향로와 함께 금단을 휘황찬란하게 비췄으며, 잃어버린 자들을 위하여 중보하고 있는, 저는 자와 약한 자를 불러 기도하게 하는 제사장을 보이게 했다(눅 1:8~10).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결코 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창 9:9~16) “가장 아름다운 색깔”(초기문집, 252)의 향의 무지개 구름을 비추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 광택은 노출된 금벽을 비추고 은받침을 은은히 비추고, 예배자들의 마음을 우리의 형님 제사장이 지금 봉사하고 계신 하늘 성소를 계속해서 쳐다보게 하고자 하늘의 존재들로 이루어진 화려하게 무늬 놓은 두꺼운 천들 위에 비쳤다. (146.2)
 밤낮 비추기 위해서 매 등은 면밀하게 손질되어야 한다(레 24:2~4). 우리 각 사람은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의 동료 여행자들을 하늘길을 따라 안내하기 위하여 우리가 빛을 비추기 전에 주님께로부터 개인적으로 빛을 받아야 한다. “각 사람은 계속 타오르게 해야 할 자기 자신의 빛이 있다. 만일 하늘의 기름이 황금 관들을 통하여 이 등잔으로 흘러들어간다면, 만일 황금 관이 그들 자신을 비워 버리게 된다면, 만일 자아가 비워진 그릇에 그것이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그리하여 거룩한 기름을 받을 준비가 이루어진다면, 거룩한 기름으로 잘 채워진 그 등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죄인들의 길에 그 빛을 던질 수 있다. 시위나 과시를 위하여 일어난 전체적인 횃불 행렬보다 방황자의 길을 비추는 그런 하나의 등에서부터 훨씬 더 많은 빛이 비친다”(RH, 1899. 5. 9.). (146.3)
 이 일곱 등은 등대 자체를 비추었다(출 25:37). “치는 일”로 생긴 망치 자국이 분명하게 보이게 되어, 사려 깊은 관찰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겪은 시련을 상기케 했다. 이 상처들은 고통중에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교회를 예언적 빛으로 또한 새겼다. 빛은 겨울의 폭풍으로 이렇게 연단된 가지들 위에 가장 밝은 빛을 비추게 되었다. 환난 가운데 태어난 새 창조의 생명을 통하여 맺는 열매는 빛이 또한 연타당한 금 위에 나타낸 것이다. 그 제작의 역사는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렇게 기록되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가르침과 우리의 생애에 관하여 옛 성경에 간적된 것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위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엘렌 G. 화잇 자서전, 184). (146.4)
 빛을 거절하면 심판이 따른다. 빛은 그리스도인을 비추던지 아니면 돌봄을 받지 못하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갈 것이다. 40년 동안 바벨론은 빼앗아 온 히브리 등대의 불을 꺼 두었다. 그러나 그 성이 무너지는 밤에 그 촛대는 벨사살의 잔치석으로 운반되었다. 그 빛으로 선지자 다니엘은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를 읽었고(단 5:5), 하늘 목자 왕의 표상이 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했다(사 44:24~45:4; 단 5:30, 31). (146.5)
 하나님의 빛은 심지어 숨겨져 있거나 등한시되어 있을 때에도 세상의 역사를 비출 수 있다. (147.1)
 빛을 꺼버림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면 일곱 촛대는 옮겨질 것이다(2BC, 1032). 그리스도께서는 빛을 꺼버릴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에 대하여 경고하셨다. (147.2)
 “말”이 불꽃을 꺼 버릴 수 있다(마 5:14~16). 이것은 농부의 물질적 성공의 척도를 나타냈다. “사단은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한다. 신앙 생애가 사업의 염려에 흡수되어 버리고, 그들의 마음이 사업에 몰두되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은밀한 기도를 드리고 아침과 저녁에 희생의 제단 위에 찬양과 감사의 제물을 계속해서 태울 수 없게 될 때 그의 목적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교회증언 5권, 430). “지난 날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해온 어떤 교인들은 그들의 사업이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리도록 허용하고 그들의 빛을 말아래 숨기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잊어버렸고 그들의 사업을 그들의 신앙의 무덤으로 삼고 있다”(6T, 196). 구주께서는 이 진리를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당신의 비유로 설명하셨다(눅 12:16~21). (147.3)
 침상이 빛을 덮어 버릴 수도 있다(막 4:21). 이 상징적 언어는 게으름(잠 26:24; 6:10, 24~33), 혹은 정욕(창 49:4; 겔 23:17; 계 2:22), 하늘의 불꽃을 꺼버리는 어떤 수단 등에 관하여 부르짖는다.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동안, 원수가 악한 씨들을 뿌린다(마 13:25). 하와가 유혹을 받아 타락했을 때 아담은 낮잠을 자고 있었던가? 제자들은 잠자다가 정복당했다(마 26:40~45).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빛의 첫 쇠잔, 기도의 첫 등한, 영적 졸음의 첫 증상을 조심하라”(4T, 124). (147.4)
 “경계해야 할 사람은 무식하거나 교양이 없는 자들만 아니다. 사단은 가장 높은 지위, 가장 거룩한 직분을 가진 자들을 유혹할 준비를 할 것이다. 만일 그가 그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영혼을 더럽히게 할 수 있다면 그는 그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멸망시킬 수 있다. 그는 3천년 전에 사용했던 동일한 매개체들을 지금도 사용한다. 세속적 우정, 매혹적인 미, 향락의 추구, 환락, 잔치, 혹은 술잔으로 그는 일곱째 계명을 범하도록 유혹한다”(부조와 선지자, 457, 458). (147.5)
 “그릇”이 빛을 질식시킬 수 있다(skeuos, 눅 8:16). 이것은 너무 많은 수고의 값을 치른 생애의 여분의 일에 대한 증거이다(“세간”, 마 12:29, “기구”, 행 27:19). 수양을 쌓아 바른 위치에서 적절한 상태에 있는 동안에도 그것들은 지나치게 많아지면 빛을 꺼버린다. (147.6)
 “은밀한 장소”도 빛을 잘 감출 수 있다(krupt, 토굴, 독방, 지하실, 눅 11:33). 비겁한 마음은 어두운 베드로의 마음에서 메시야에 대한 증거를 닫아버렸다(요 18:15~27). 공포는 사도들의 혀를 숨겨진 방 속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부활하신 구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요 20:19). “우상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 27:15). 어떤 숨은 공포와 욕망이 그대의 생애를 은밀하게 움직이게 하는가? 어떤 부식성의 비밀이 그대를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감추는가? (147.7)
 소유물을 잃어버리는 공포가 그들의 혀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가진 어떤 전도자들의 입술을 봉해 버렸다. 조소의 수치는 몇 시간 전에 죽을 때까지 고백하기로 약속한 자의 입에서 저주를 쏟아 놓았다. 어떤 비밀한 우상은 분명히 빛을 꺼버릴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시 19:12)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 (1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