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본체를 붙잡다 제2부 재림교회 선구자들의 그리스도론 제4장 엘리엇 J, 와그너 (1855~1916)
 ‘말씀이 육신이 되었’을 때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기 위하여 와그너는 로마서 8장 3, 4절를 인용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그 자신 위에 사람과 같은 모양을 취하셨다면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셨으며 그가 닮기를 원하는 사람은 죄 있는 사람이었으니 이는 그가 구속하러 오신 이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 더욱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취하셨다”는 사실은 죄 없는 육신이 아닌 죄 있는 육신이었다. 그가 취하신 육신은 타락한 인성이 복종하는 모든 인간의 연약성과 죄 있는 경향을 지녔다. 그는 “육신을 따라 죄 있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다윗은 인간 본성에 모든 열정을 지녔다. 그는 자신에 대해 고백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 였나이다’(시 51:5)라고 하였다.”12

 (92.2)
 와그너의 견해로는 히브리서 2장 16~18절의 본문이 이와 같은 입장을 확인한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13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서 그 것을 한층 더 심도있게 기록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14

 (92.3)
 와그너는 갈라디아서 4장 4, 5절히브리서 2장 18절; 4장 15, 16절을 한 번 더 인용한 후에 다음과 같은 주의를 했다.

 (92.4)
 “어떤 사람이 여기까지 읽는 동안 우리들이 그분을 죄인의 수준까지 끌어내림으로써 예수의 성품을 격하시키고 있다고 혹 생각했을지도 모른다.”15 “그와는 반대로 우 리는 단순히 우리의 축복받으신 우리의 구세주의 신적인 능력을 높여 주는 것이며 그분은 전혀 다른 환경아래서 그분이 유지하셨던 흠 없이 순결한 수준에까지 사람을 이끌어 올리기 위하여 그분 자신이 자진하여 죄 있는 인간의 수준에까지 내려오셨다.”16

 (93.1)
 육신의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신성은 한순간이라도 악한 욕망을 품으신 적이 없으며 또한 그분의 신성이 한순간이라도 흔들리지 않으셨다. 사람이 고통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육신으로 겪으신 후에 그분은 영광의 궁정을 떠나셨을 때와 똑같이 흠없는 상태로 아버지의 보좌로 돌아가셨다.”17

 (93.2)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비결은 바로 이 논리에 준한다. “그는 연약하셨지만 죄는 없으셨다. 이는 신성의 능력이 그분 안에 끊임없이 거하셨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동일한 권세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으니,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엡 3:17, 19).18

 (93.3)
 “인간 육체가 상속받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시며 친히 자녀들을 당신과 동일시 하셨고 그들을 짓누르는 것은 무엇이든 당신도 짓눌림을 받으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 권세를 저항하는 데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지 당신 자신이 알고 계신다. 만일 우리가 불경건과 세상적인 정욕을 거부하고자 진심으로 갈망한다면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게 강한 능력을 주시고자 하신다. 그분께서 본래 당신 안에 간직하셨던 모든 권능을 은혜로서 우리 안에 또한 머물게 하실 수 있으시니 이는 그가 이를 자원하여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19

 (93.4)
 “얼마나 놀라운 가능성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가!”라고 와그너는 외친다. 그러므로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20고 말할 수 있었다.

 (94.1)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란 주제에 대해 언급한 와그너의 이론은 이와 같은 것이다. 와그너에 의하면 죄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 안에 ‘거하기 위하여’ 오셔야 한다는 것이다. 육신 속에 있는 죄를 정복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소유하신 하늘의 권세를 받아들이고자 갈급하는 모든 자에게 이 권세를 주시고자 하신다. 죄 있는 인성(in sinful human nature)으로 죄 없는 생애를 살기 위해 그리스도 위에 부여되었던 동일한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 를 모시고 있는 죄인들에게 시험을 이기고 죄의 권세를 깨뜨릴 역량이 있게 하셨다.

 (94.2)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와그너의 그리스도론은 아주 자연스럽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이끌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분의 인격과 분리 될 수 없다. 1888년에 와그너에 의해 제시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와그너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실제적 적용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타락한 인성과 동일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그분이 하시는 사역은 단지 사법적인 용서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모든 불의”(요일 1:9)에서 정결케 함을 또한 표현하는 것이다.2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의의 갑옷으로 입히실 때 다만 죄를 위한 가면을 씌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없이하시는 것이다. ∙∙∙ 그것은 실제적으로 죄로부터 그를 깨 끗하게 하시는 것이다. 만일 그가 죄의 정죄로부터 깨끗이 되고 의롭게 되면 그는 확실히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그는 참으로 다른 사람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된다.”22

 (94.3)
 와그너의 위대한 업적은 재림교회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원칙을 다시 소개해 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론을 구원의 사역에 적용시키고 있다. 루터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사법적인 관계로 제시하였다. 일치의 법칙은 이 관점을 인증한다. (94.4)
 “모든 우리의 의는 우리들 밖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한편 와그너의 견해는 칭의는 사람을 의롭게 하시려고 사람 안에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활동을 포함하는데(롬 5:19)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그의 마음 가운데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하는 자에게 능력을 통해서 되는 것이다. (95.1)
 1900년 런던에서 발간된 <영원한 언약(The Everlasting Covenant)> 이라는 그의 마지막 책 가운데 와그너는 이렇게 진술한다. “종말이 오기 전, 곧 주께서 오실 때, 지구상에는 한 백성이 있을 것인데 지구상 거민들의 수에 비례해서 큰 수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알려지기에 필요한 백성들로 이들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나사렛 예수 안에 거하였던 것 같이 그들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친히 나사렛 예수와 함께 행하셨던 그 일을 또한 예수께 복종하는 어떤 사람과도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실 것이다.”23

 (95.2)
 와그너가 자신의 그리스도론을 확증함(1891~1902)
 1890년대 동안에 와그너는 재림교단 내에서 상당한 권리를 행사했다. 엘렌 G. 화잇의 지시를 받고 그의 동료인 에이 티 존스와의 협력 가운데 그는 장막회나 큰 목회집회들이나 여러 대총회 회기 중에서 믿음으로 말미 암는 의의 기별을 제시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95.3)
 1891년의 대총회 회기 중에 와그너는 16번에 걸친 일련의 성경공부를 지도하도록 초청을 받았으며 그것을 그는 로마서에 집중했다.24 그는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중요한 사상을 전개함에서 그보다 더 좋은 편지서를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구절이 특히 예수의 인성에 대한 화제의 초점이 되었다.

 (95.4)
 로마서 1장 3절에 다윗의 후손에 관한 다윗의 주장은 그에게 첫 번째 기회를 제공했다.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한다.

 (95.5)
 와그너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한다. “예수님의 조상들이 되었던 다윗과 그 후대의 왕들의 역사를 읽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주께서 인간적인 측면에서 다른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의 조상들 에게서 불리한 조건이 갖게 되었다는 것을 볼 것이다. 그 조상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방탕하고 포악한 우상숭배자들이었다. 비록 예수께서 그와 같은 연약함이 있었을지라도 ‘그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셨다’(벧전 2:22 KJV), 이것은 가장 미천한 사람들의 생애의 조건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능력이 유전성에 대해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25

 (96.1)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는 것에 관하여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보편적인 사상은 이것이 그리스도가 죄 있는 육신을 취하지 않으시고 단지 이처럼 보이는 형상만을 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26

 (96.2)
 이에 대한 반박으로 와그너는 히브리서 2장 17절을 인용했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그런 다음에 그는 갈라디아서 4장 4, 5절을 다시 인용했으며 거기서 바울은 주장하기를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여인에게서 나셨으며 율법 아래 나셨다고 하였다. 여기서 와그너의 결론이 나온다. “그는 여인에게서 난 모든 사람이 소유하는 것과 동일한 육신을 취하셨다.”27

 (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