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영원한 복음 제3부 인 간 제9장 하나님의 청지기
 (2)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한 십일조(창 28:22)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갈 때 꿈 속에서 사닥다리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며 그를 축복의 근원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꿈속에서 깬 후에 그는 후일에 자기가 평안히 이삭의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다. (159.3)
 1) 십일조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다
 야곱은 형을 속인 죄에 대해 깊은 좌절감과 죄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삶의 희망을 준 것은 하나님의 현현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죄에 대해 캐묻지 않으시고, 속절없이 도망가는 야곱에게 주님의 임재와 인도를 약속하심으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히 채워주셨다. 그는 빈털터리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옷 입었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부유한 미래를 소유했다. 그는 감사의 태도로 아직은 미지의 흑암 중에 싸여있는 미래를 십일조에 대한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의탁하였다. 지금까지 그는 스스로의 꾀로 살아왔지만 그의 미래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빚어질 것이었다. (160.1)
 2) 십일조는 하나님이 삶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에 대한 믿음의 표시이다
 야곱이 십일조를 드리기로 서약한 조건—하나님의 개인적인 임재, 지키심, 돌보심,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심(창 28:20-21)—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꿈속에서 약속하신 내용들이다(창 28:13-15). 그는 믿음으로 그 약속들을 받아들였다. 그의 확고한 믿음은 십일조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라는 말 속에 강조되어 있다.21 (160.2)
 3) 야곱의 십일조는 이스라엘의 십일조제도의 모본이 되었다
 야곱이 십일조를 누구에게 드릴 것인지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으나 야곱의 이야기는 중요한 암시를 한다. 야곱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념하는 의미로 돌 기둥을 세우고 ‘벧엘’(בֵּֽית־אֵל֑, Bët´ël)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다(창 28:19) 그는 그곳이 ‘벧 엘로힘’(בֵּֽית אֱלֹהִים) ‘하나님의 집’이 되도록 십일조로 후원할 것을 서원했다. 가나안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벧엘에 제단을 쌓고 ‘엘 벧엘’(אֵל בֵּֽית־אֵל֑, ’ël Bët´ël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창 35:3, 6-7). 그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셨으며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약속과 땅에 대한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야곱은 이곳에 돌 기둥을 세우고 기념하였으며, 말씀하신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지었다. 야곱의 행동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집을 돌보기 위한 주요 목적으로 십일조를 드리게 될 것을 예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22 (160.3)
 참고 문헌
 1. 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Eleventh Edition, s.v. ‘Stewardship.’

 2. 구약 성경은 청지기를 의미하는 특정 단어를 갖고 있지 않고 문맥 속에서 청지기로 번역을 한다. 한글 성경의 경우에 ‘청지기’라는 용어는 구약에서 요셉 이야기 속에서만 5회 등장하나(창 43:16, 19; 44:1, 4, 5), 히브리어 본문은 ‘아셰르 알-베트’(אֲשֶׁר עַל־בֵּית, ´ášer `al-Bêt) ‘집 위에 있는 자’를 뜻한다(창 43:16, 19; 44:1, 4). 구약에서 ‘청지기’의 역할은 어휘와 문맥에 따라 변한다. 한 예로 셉나는 재무를 맡은 청지기였다(사 22:15). T.M. Dorman, ‘Steward’, ISBE 4:617.

 3. F. Raymond Collins, ‘Commandment’, ABD 1:1098.

 4. Philip J. Nel, ‘רדה’, NIDOTTE 3:1055.

 5. 민 3:7-8; 4:23, 30, 47; 8:11, 19, 22; 16:9; 18:6, 7, 21, 23. 히브리어 성경에서 동사 ‘아바드’(עָבַד) ‘섬기다’‘샤마르’(שָׁמַר) ‘지키다’가 함께 사용될 경우는 제사장의 성전 봉사를 가리킨다(민 3:7-8; 8:25-26; 18:5-6; 대상 23:32; 겔 44:14).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왕같은 제사장적 사역을 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6. Gordon J. Wenham, ‘Sanctuary Symbolism in the Garden of Eden Story’, Proceedings, 9th World Congress of Jewish Studies, Proceedings of the World Congress of Jewish Studies (Jerusalem: World Union of Jewish Studies, 1986), 19-25. 태초에 인간을 두신 에덴은 성소이다. 인간은 그곳에서 안식일에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고(창 2:3),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 하셨고(창 2:8, 15; 3:8), 그곳을 더럽히는 죄는 추방을 받았고(창 3:22-23),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있었던 그룹 천사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이 에덴의 동편 출입구에 둔 바 되어(‘두다’는 히브리어 ‘샤칸’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의 빛인 ‘셰키나’와 동일한 어원이다, 또한 성소의 출입문은 동편에 있었다) 거룩한 동산을 ‘지켰다’(שָׁמַר, šämar, 창 3:24). 에덴 동산의 나무들은 성소에 둔 일곱 가지를 가진 금 촛대로 형상화 되었다. 솔로몬 성전은 사방 벽과 문짝에 나무와 꽃과 그룹 천사를 조각하여 에덴 동산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왕상 6:18, 29, 32, 35).

 7. P. N. 힐리어, ‘청지기직’, 아가페신학사전 (아가페, 2001), 983-984.

 8. 창 6:12‘모든 혈육 있는 자’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Harland, 31; Gerhard F. Hasel, ‘Some Issues Regarding the Nature and Universality of the Genesis Flood Narrative’, Origins 5 (1978): 83-91.

 9. Waltke and Yu, 302.

 10. 창 6:22‘노아가 행하되 ∙∙∙ 다 행하였더라’는 히브리어 본문은 ‘행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사’(עָשָׂל, `äSâ)를 문장의 처음과 끝에 반복함으로, 또한 포괄적 의미를 갖는 ‘콜’(כָּל, Köl) ‘모두’를 함께 사용함으로 노아의 전적인 순종의 행위를 매우 크게 강조한다. 또한 창 6:22의 문장 구성이 창 7:5에서 반복됨으로 (노아가 ‘야훼/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동일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이것과 유사한 관용적 표현은 회막을 세우는 일(출 39:32, 42; 40:16), 광야의 방랑 생활의 두드러진 지점들(민 1:54; 2:34; 9:5)에 나타난다. 참조, Wenham, Genesis 1-15, 176.

 11. Ibid.

 12. 발트케는 창 8:9에서 노아가 생명의 보호를 위해서 방주로 날아 온 비둘기를 손으로 맞아들이는 모습 속에서 하나님, 인간, 하나님의 피조물 사이의 회복된 관계를 파악한다. Waltke and Yu, 303.

 13. 창 14:17의 사웨 골짜기(Valley of Shaveh)는 왕의 골짜기를 지칭하며, 이곳에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비석을 세웠다(삼하 18:18). 요세푸스(Ant 7.10.3 §243)는 이 비석이 예루살렘에서 두 스타디아(350에서 400 미터) 거리에 있다고 함으로 왕의 계곡이 기드론 골짜기임을 지적하고 있다. Michael C. Astour, ‘Shaveh, Valley Of’, ABD 5:1168.

 14. 십일조의 관습은 애굽, 시리아, 리디아, 바벨론, 앗시리아에 있었으며, 기원전 14세기경의 우가릿에서도 발견이 된다. 참조, E. E. Carpenter, ‘Tithe’, ISBE 4:861.

 15. Johann Peter Lange, Tayler Lewis, and Abraham Gosman, Genesis, or, the First Book of Moses, Together with a General Theological and Homiletical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New York: C. Scribner & co., 1868), 405.

 16. 창 14:13에서 아브람을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라고 히브리인 독자들에게 말 할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사람’이라고 한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거주하였더라’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샤칸’(שָׁכַן, šäkan)은 천막 속에 임시적으로 사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은 이방인, 혹은 국외자로서의 아브람의 신분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욘 1:9에서 요나는 이 명칭으로 외국인들에게 자기를 소개했다. Reyburn, 317.

 17.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된 뒤에도 근본적으로 히브리인은 땅의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이며, 땅의 진정한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다. 참조, 레 25:23.

 18. Gordon J. McConville, ‘Abraham and Melchizedek: Horizons in Genesis 14’, He Swore an Oath, second edition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94), 115.

 19. ‘믹겐’(מִגֵּן, miGGën) ‘붙이다’는 히브리 성경에서 모두 3회 나타나는데 한결같이 ‘나탄’(נָתַן, nätan) ‘주다’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참조, 창 14:20; 호 11:8; 잠 4:9. 창 15:1‘마겐’(מָגֵן, mägën) ‘방패’는 승리와 보호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그려진 창 14:20을 회상시키는 말씀이다. Wenham, Genesis 1-15, 317.

 20. 십분 일을 왕에게 바친 예는 우가릿(Ugarit)에서 발견이 되며, 사무엘은 왕정을 통해 백성이 부담해야 할 짐으로 이것을 제시했다(삼상 8:15, 17). 참조, Sarna, 110.

 21.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의 히브리어 원문은 ‘아사르’(עָשַׂר, `äSar)의 강의형인 피엘형의 부정사 절대형 ‘앗세르’(עָשֵּׂר, aSSër)를 피엘형의 미완료동사 1인칭 공성의 바로 앞에 놓음으로 십분 일을 바치는 일이 확실하고도 철저할 것임을 강조한다. 개역개정판은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고 했으며, 영어표준역(English Standard Version)은 ‘온전한 십일조를 주님께 드리겠습니다(I will give a full tenth to you)’ 라고 하였다. 사르나는 야곱이 드린 십일조를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 온 후에 드린 일회적 십일조로 이해한다. Ibid., 201. 그러나 히브리어 부정사는 ‘철저하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가나안으로 돌아온 후에 야곱은 하나님께 약속한 온전한 십일조를 확실하게 실천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적으로 십일조를 드렸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참조, GKC §113n.

 22. Carpenter, 862. (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