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이스라엘 - 세대주의 예언해석학 비판 - 제 6장 이스라엘의 신학적 의미와 사명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에 대한 연구(Uppsala, 1946)에서 스웨덴 학자 다넬(Gustaf A. Danell)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 외에도 세 가지 그룹을 의미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1) 분열 왕국 이전의 12지파,

   (2) 북방 이스라엘의 10지판,

   (3) 북방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이스라엘 남은 자손으로서의 유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외적인 호칭을 넘어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종교적 본질과 신학적 의미를 간파해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네델란드 구약학자 헐스트(A. R. Hulst)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이 처음부터 이중 의미 즉 “사람” 혹은 “나라”“여호와의 백성” 혹은 “종교적 회중”을 가지고 있음을 증거하였다.1 이제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의 종교적—신학적 용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86.1)
 구약의 이스라엘
 성경에서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사용된 창세기 32장은 이 새로운 이름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하면서 죄의식에 사로잡힌 부조 야곱은 그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알지 못하는 “사람”과 한 밤 동안 씨름을 하기 시작한다. 야곱은 끈질기게 이 사람에게 축복을 간구한다. 그것에 대한 대답이 다음과 같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35:9-10 비교). 이후에 선지자 호세아는 야곱의 씨름을 “하나님과” “천사와” 씨름한 것으로 해석하였다(호 12:3, 4). 그러므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은 거룩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야곱이 맺은 여호와와의 새로운 관계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통하여 야곱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86.2)
 여기서 강조된 것은 야곱의, 씨름은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그의 승리는 그가 “울며 간구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으셨다는 확신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천사에 대한 믿음을 붙잡고 자기만족과 자기신뢰를 포기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2 엘렌 화잇(E. G. White)은 야곱의 이름이 바뀐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 였다. “그가 용서받았다는 증거로 그의 죄를 상기시키는 그의 이름이 그의 승리를 기념하는 이름으로 바뀌었다.”3 (87.1)
 바꾸어 말하면,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화목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이후에도 이 이름의 의미의 이러한 거룩한 뿌리를 결코 상실하지 아니하였다. 사실,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들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과 씨름을 반복하여 시작하기를 원하신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씨름과 여호와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앗수르와 애굽의 전쟁말들을 더 의지하는 배도한 이스라엘 족속이 닮아야 할 한 사례로 제시하였다(호 12:3-6; 14:1-3). 다시 말하면, 호세아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것을 참 이스라엘의 표준, 즉 이스라엘 집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되기 위한 규범적인 패턴으로 설명한 것이다. (87.2)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은 모세가 바로에게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2-23)는 말을 할 때 드러났다. 이스라엘 족속은 여호와의 거룩한 뜻을 따라 그를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출 18:1)이요, “여호와의 총회”(민 20:4)이었다. (87.3)
 이스라엘은 다른 모든 민족과 달랐다. 그것은 인종이나, 도덕이나, 정치적인 내용 때문이 아니라 다만 북조들에게 하신 그의 약속을 받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셨기 때문이다(신 7:6-9).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그에게 속하도록 하기 위하여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해 내셨다. (88.1)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두 가지 면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첫째, 민족적 통일체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은혜와 사랑 때문에 그를 경배하기 위해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택함을 입었다(겔 16장 참조). 둘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의 언약을 지킨다면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와 거룩한 나라로 남아 있을 것이다(출 20:24). 이것이 명백히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이스라엘의 미래와 관련된 조건적인 측면이었다. (88.2)
 이스라엘의 국가적 통일성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와 이스라엘의 예배와 충성에 대한 그분의 주장에 기초하고 있다. 충성스러운 남은 자에 대한 구약 개념에서 민족적 종교적 개념은 함께 묶여져 있다.4 래드(G. E. Ladd)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88.3)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전체가 반역적이고 불순종하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운명에 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불신의 나라 가운데서도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이 되는 믿음 있는 남은 자들이 있었다. 이 믿음 있는 남은 자들 가운데에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5
(88.4)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남은 자들을 통하여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언약의 저주대로 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세계의 열방 중에(신 27-28장 참조) 흩어지고 성전이 파괴될 때에도(레 26장 참조) 그러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도 불구하고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레 26:44)는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다. 열방을 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성취될 것이지만, 하나님 자신의 놀라운 방법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88.5)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것은 깊은 종교적 사명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요. 그의 “기업의 백성”(신 14:2)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경배함으로써 그의 구주께 반응하도록 초청을 받고 있다(신 13:6-10). 그러므로 그들은 종교적으로 여호와 앞에서 ‘흠 없는’ 존재들이 되어야 했다(신 18:9-13). 이스라엘 전체에 대해 하나님은 신성한..책임을 부여하셨다. (89.1)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2).
(89.2)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89.3)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으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신 27:9-10).
(89.4)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공식적으로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로 형성되었다.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말씀과 행동을 통하여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을 위한 제사장적 빛이 되도록 이스라엘을 예배하는 회중과 무리(qahal)로 고양시키셨다. 신명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의미에 대한 헐스트(A. Hulst)의 결론은 의미심장하다. (89.5)
관심은 여러 지파들과 그룹들의 집합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개인들의 총합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여타 민족과 다른 민족적 실체로서의 한 백성—이것은 특별히 강조되어야 한다—에 있는 것도 아니다. 관심의 대상은 그 통일성을 여호와의 말씀과 법, 궁극적으로는 여호와 자신에게서 찾는 종교 공동체인 “회중”들이다.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여호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백성들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종 집단으로서의 민족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단위로서의 한 백성이다. 그것은 사회적, 종교적, 예식적인 면에서 나타나는 삶의 순결에 대한 것이다.6
(89.6)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사람들’(문자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아들들’, 1:1; 4:44-46; 10.6; 28:69; 33:1; 34:8, 9; 등)이란 용어는 비록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후손들을 의미하지만, 육체적인 야곱의 자손 그 이상을 의미한다. 물론, 혈연관계가 신앙관계와 필연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신명기는 예배하는 공동체와 인종적 유대관계의 구별을 보여준다. (90.1)
 신명기 23장의 종교법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세 세대를 산 애굽인들 과 에돔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총회”(qahal, 신 23:7-8)에 참여하도록 허락하고 있다. 신명기에서 약속의 땅에서의 번영에 대한 축복은 결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이스라엘이 주님의 계명과 토라를 지키느냐 여부에 달려 있었다(신 26:16-19:27:9-10 참조).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이스라엘이 그들의 공동생활의 기초로서 오직 주님만을 섬기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보고하고 있다(수 24:16-18). 이스라엘은 그들의 매해 축제의 종교적 의식을 통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계속해서 새롭게 하였다. (90.2)
중앙 성소에서 열두 지파 동맹은 반복해서 여호와와의 언약 관계를 상기시키는 부름을 받고, 그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을 위한 봉사의 맹세를 새롭게 하였다. 그러므로 시내산에서 있었던 일들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일련의 역사적 해프닝이 아니었다. 열 두 지파의 엄숙한 예배에서 그들은 다시 당대에 현존하는 하나의 실체가 되었다∙∙∙.선포된 말씀이 이스라엘 존재의 기초를 보이게 하였다. 이 말씀이, 선포되지 않았다면, 열 두 지파의 연합은 자기 공언과 자기 결정의 오류 속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 있었다.7
(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