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마겟돈이라는 이름은 전투의 개념, 그 이상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그 전투의 결과를 또한 암시한다. 스가랴의 예언의 문맥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하다드 림몬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아마겟돈은 흥미로운 애곡의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 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슥 2:11, 12). (212.1)
 그의 신탁(神託)에서 스가랴는 자기 백성에게 그들이 하다드 림몬에 관계된 것과 비슷한 애곡의 기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알린다. 여기서 선지자는 고대 가나안 사람들의 전설을 암시하는데, 그 이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고 라스 샴라(Ras Shamra) 서판(書板)에도 나와 있다.19 그것은 천둥의 신인 하다드 신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는 모우트 여신에 의하여 살해당한 자신의 독자 알레인의 죽음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림몬으로 말하자면 그는 아람의 신이다(왕하 5:18). 그 둘 사이에는 문화적인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림몬은 가나안의 신 하다드와 결합되어 있다. rmm이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림몬(Rimmon)은 서부 셈족 문헌에서 종종 천둥과 동일시되며, 따라서 그것은 하다드의 별명이 되기도 한다.20 하다드(림몬)신의 신화는 고대 팔레스타인 다산(多産)의 신인 바알의 제의(祭儀)와 잘 일치된다. 해마다 가나안의 경배자들은 바알의 죽음을 두고 애곡하였다.21 (212.2)
 그러나 이방 신화에 대한 언급 외에도, 스가랴의 본문이 가리키는 또 다른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자체의 전승에 있는 것이다. 므깃도 골짜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애곡 사건을 목격하였다. 애굽의 바로 느고가 기원전 609년에 요시야 왕을 죽인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그 사건과 관련된 역대기의 구절(대하 35:20~27)에는 스가랴의 본문과 공통된 몇 가지 주제들이 있다. 양 본문이 모두 여인들의 애곡을 언급하고(대하 35:25; 참조 슥 12:12~14), 둘 다 므깃도의 애곡을 예루살렘의 애곡으로 동일시한다(대하 35:22: 참조 슥 12:11). 그리고 두 본문에서만 “므깃도 골짜기”(대하 35:22; 참조 슥 12:11)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러한 평행은 두 구절이 동일한 사건, 곧 요시야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212.3)
 이스라엘을 가장 오래 다스린 왕인 요시야는 또한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개혁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단독으로 왕국의 북부와 남부를, 영적·도덕적·정치적으로 일치시키고 통합하였다. 역사서에 의하면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마지막 왕이었다(왕하 22:2).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유다왕국 몰락의 시작이었다. 역대기 저자의 증언에 의하면(1세기가 지난 후) 그 백성은 그의 죽음을 “오늘날까지”(대하 35:25) 해마다 기념하였다.22 (213.1)
 “므깃도 골짜기”라는 표현이 실제로 요시야의 죽음을 가리킨다면, 그것을 하다드 림몬과 연관시킨 것은 더욱 극적인 특성을 가중시킨다. 하다드 림몬은 신의 “장자”였기 때문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온 백성이 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함께 애도를 받고 있다. (213.2)
 아마겟돈이라는 이름은 바벨의 우상 숭배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을 보여 준다. 그것은 전에 없이 큰 애곡의 날이다. 나중에 18장에서 계시록은 바벨론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애곡이 있을 것을 묘사하면서 이 경고를 확인해 준다. “애곡”이라는 핵심 단어가 이 구절에 여러 번 등장한다(계 18:7, 8, 11, 15, 19). 그것은 전통적인 의례적(儀禮的) 애곡을 말한다. 눈물, 재, 애가(哀歌)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9, 10, 15, 19). (213.3)
 장자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하다드 림몬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아마겟돈은 또한 우리에게 애굽의 열째 재앙을 가리킨다(출 12:29~36). 이러한 일치는 의도가 없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두드러진다. 애굽의 장자의 죽음은 전례가 없었던 사건이다.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출 11:6). (213.4)
 여기서 우리는 하다드 림몬을 통하여 아마겟돈의 다른 교훈을 배운다. 바벨의 몰락은 고대 애굽인들이 겪었던 것과 동등한 본질과 강도(强度)의 손해를 입힐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장자의 죽음은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그 집안의 대가 끊어진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장자의 죽음은 그들 종교의 죽음이었다. 출애굽기의 본문이 마지막 재앙을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린 것]”(출 12:12)이라고 해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성경은 장자라는 개념을 제사장,23 이스라엘,24 그리스도25에게 적용하며, 신약에서는 예수님 자신에게26 적용시킨다. 장자가 가지는 그 중대한 의미로 볼 때 이 손실은 훨씬 더 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 죽었음을 의미한다. (213.5)
 다른 한편으로,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을 암시한다고 해서 모두가 다 완전히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니다. 성경은 애굽의 마지막 재앙을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페사흐(넘어서 지나감)와 연관시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로서 이제 자기 목숨을 구하고, 일어나서, 허리에 띠를 띠고,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쥐고, 행동에 나설 준비를 한다(11절). 그 날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51절) 인도하여 내려고 선택하신 날이다. 열째 재앙 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비참함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의 원수에 대한 승리를 가져온다. (214.1)
 사실 아마겟돈 전쟁은 일곱째 잔에 가서야 발발한다. 처음으로 하나님이 먼저 형벌을 내리시고, 그 결과는 최종적이다. 우리가 듣는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되었다”(계 16:17). 이것은 관용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그 말을 요한계시록 21장 6절21)에서 다시 듣는다. 거기서는 그 구절을 처음과 나중이신,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과 연결시킨다. 하나님의 원수들의 완고함은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바벨의 진영이 하나님에게 공개적인 전쟁을 선포 한다. 넷째 재앙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계 16:9), 다섯째에서는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한다(11절). 이제 일곱째 재앙에 와서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저주한다(21절).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 가장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가장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발전해 가는 것을 우리는 본다. “하나님의 이름”“하늘의 하나님,” 그리고 마침내는 단순히 “하나님”으로 바뀌어 간다.

21) 개역한글판에서는 “이루었도다” 라고 번역함(역자 주).
(214.2)
 처음으로, 재앙이 인간 뿐 아니라 온 세상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천연계는 혼돈에 빠진다. 섬들과 산들이 사라진다(20절). 덧붙여 말하자면, 애굽의 재앙들에 대한 또 다른 암시를 볼수 있다. 바로 우박이다. 거대한 우박이 땅에 퍼붓는다(21절, 참조 출 9:22 이하).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애굽 땅의 사람과 짐승과 밭의 모든 채소에 내리”는 그 우박의 참혹한 피해를 두 번 언급한다(출 9:22, 25). (214.3)
 지금까지 예고되기만 했던 하나님의 진노가(계 14:8, 10) 이제는 최대의 영향력에 도달하였다.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계 16:19). (215.1)
 고대 바벨의 이야기에서처럼 하나님의 강림은 그 건축자들을 흩어버린다. 그들이 꾀하던 연합은 이제 완전히 와해되었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19절), 세 세력 용(신비종교의 세력), 짐승(공식적인 기독교) 그리고 거짓 선지자(미국) 사이의 동맹은 이제 해체된다. 세계 권력 셋의 분산은 열방의 몰락을 초래한다(19절). 그 사건은 여섯째 쇼파르를 반향하는데, 그때에도 세 권력이 세계 무대를 지배하고 있었다(계 9:13, 14). (215.2)
 이러한 혼돈은 바로 바벨의 몰락을 가리키는 징조이다. (215.3)
 간주곡:미녀와 야수
 혼돈함의 한 가운데서 예언의 말씀은 잠시 정지한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계 17:1, 2). 말하는 천사가 일곱 대접, 즉 잔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은(1절) 우연이 아니다. 그가 보여 주는 내용은 그가 관여하는 일곱 잔의 형벌을 정당화해 준다. (215.4)
 하나님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일부 위대한 독재자들처럼 행동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그분은 그 백성을 사랑하고 존중하셔서 그들이 그분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기를 바라신다. (215.5)
 이 부분은 구조상 등장하는 간주곡 중 마지막 것이다. 지금까지 간주곡들은 구속받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고, 그들은 아직 구원받지는 못했지만 소망 위에 살고 있었다(계 7; 15:1~5). 한편, 바벨은 역사가 진행되는 내내 반역적인 행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시록의 셋째이자 마지막 부분(계 15~22장)은 구속받은 자들에 대한 이상을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보여준다. 이제 그 책에서는 바벨이 잠깐 간주곡으로 나온다. 계시록의 구조 자체가 이렇게 희망과 심판을 내보인다. (215.6)
 미녀
 계시록은 여기서 간주곡의 바벨을 그녀의 경쟁자, 즉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이 인간 역사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상징하는 12장의 여자와 비슷하게 보이는 여자로 묘사한다. 그 둘 모두 우주적인 차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주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둘 다 광야와 관계가 있고(계 17:3; 참조 12:6, 14) 용과도 관계가 있다. (계 17:3, 7; 참조 12:4, 13 이하).

  (2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