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의 만찬에 “합당치 않게” 참여하지 말고 자기를 살핀 후에 참여하라고 경고한다(고전 11:27, 28). “합당치 않게”라는 구절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바울이 신자들에게 권면한 “합당한 생애” 및 그의 권면의 문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부르심(엡 4:1)과 “그리스도의 복음”(빌 1:27)에 “합당히 행하”여야 한다(살전 2:12). 골로새서 1:9, 1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더 주님께 합당한 생애를 살고 그를 기쁘게 하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선한 일을 하도록 기도한다. (689.9)
 고린도전서 11:20, 22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에서 어떤 자들이 바울이 정의한 “합당”함에 반대되는 태도를 나타냈다.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부자들이 가난한 형제들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드러냈다. 그들의 그런 행위로 그들은 그들보다 더 불행한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의 주님께 욕을 돌렸다. 예를들면, 그들은 한가족이 함께 먹는 일반적인 식사와 모든 사회적 차별이 배제되어야만 하는 성찬을 구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참조 6BC 765). 이들이 자신들의 동기와 태도를 잘 살펴보았더라면 옳게 행할 길을 알수 있었을 것이다. (690.1)
 그리스도를 믿고 침례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면서 성만찬에 참예해야 한다. 침례받지 않은 신자들은 참여해야 할 참된 이유가 없을 것이다. 믿는 자에게 침례를 베푼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침례받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을 참관하도록 초청할 수 있다. 그들이 합당한 가르침과 침례를 받은 후에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임박한 재림을 기념하는 데 동료 신자들과 합류할 수 있을 것이다. (690.2)
 3. 누룩 없는 빵과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
 유월절 전야에 가정에서 모든 누룩을 제거하는 것이 유대인의 관습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출 12:15, 19; 13:7),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된 떡이 누룩 없는 떡[무교병]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더구나 바울은 누룩을 그리스도에게서는 전혀 찾아볼수 없는 죄와 동일시하고 있다(고전 5:7, 8). 그래서 일반적으로 통밀 가루에다 기름과 물과 소금을 섞어서 만든 누룩 없는 떡이 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희생된 주의 몸을 상징하는 성만찬에서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쓰였다. (690.3)
 공관복음서와 바울은 주의 만찬에 대하여 묘사하면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기 위해 마시는 “잔”“포도나무에서 난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포도주”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알코올은 부패와 죽음의 산물로서 예수의 구속하는 피를 상징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발효된 주스나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는 포도주가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것은 합당치 않다. 포도를 눌러 짜서 만든 주스 는많은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어 주기 위해 흘린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기에 적합하다. (690.4)
 엘렌 화잇은 주의 만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직도 유월절 만찬을 차려 놓은 식탁에 계셨다. 유월절 절기에 쓰던 누룩 없는 떡이 그리스도 앞에 놓여 있었다. 발효되지 않은 유월절 포도즙이 식탁에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떡과 포도즙을 흠 없는 희생물인 자신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셨다. 죄와 죽음을 상징하는 발효로 부패되지 않은 것만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을 대표할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653). (690.5)
 D. 결론
 성만찬에서 주님은 그분의 큰 구원의 선물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 선물은누룩 없는 떡과 순수한 포도 주스로 상징된 그분의 몸과 피다. 떡은 사람 된 예수를 상징하고, 포도즙은 그분의 대속적 피를 가리키는 완전한 상징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만찬을 기념하면서 그들의 죄를 위한 예수의 큰 희생을 인식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현재의 교제와 그의 왕국에서의 미래의 영광을보증하는새 언약을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우리가 우리의 속전과 그리스도의 보혈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의 값비싼 희생의 대가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슬퍼할 때가 아니라 기뻐할 때이다(벧전 1:16). (690.6)
 침례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 대신 고통을 당하고 죽은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연합시켜 준다(롬 6:3, 4). 마찬가지로 주의 만찬도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그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하기도 하지만(고전 11:26),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그분이 친히 새 언약에 기초하여 설명했던 그분의 죽음을 가리킨다(막 14:24). 마치 침례가 그리스도와의 친교 및 그분의 몸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기념한다면, 주의 만찬은 이미 침례 받은 신자들이 자신들을 연합시킨 구속 사건을 기념하는것이다. (691.1)
 침례가 그리스도께 속하고자 하는 회심자의 결심을 표현한다면,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마지막 행위로 선포하고자 하는교회의 열망을 보여 준다. 주의 만찬은 그리스도와의 언약에 인을 친 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드려진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제사를 통해 그분과 연합하게 하는 수단이다. (691.2)
 E. 역사적 개관
 1. 초기
 초기교회에서는 주의 만찬이, 특별히 가난한 자들을 위해 고안된 “애찬”(아가페)과 관련하여 기념된 것으로 보인다. 고린도 교회(고전 11:17-22) 이후로는 여러 남용들로 인해 이 기념이 손상되었으며, 결국 성만찬을 기념하기 전에 금식하는 것을 의무화함에 따라 성만찬 예식이 형제애적인 식사(애찬)로부터 분리되었다(3세기중엽). (691.3)
 초기교회의 몇몇 저술가가 주의 만찬에 대하여 언급했다.〈디다케(Didache)〉(1세기말 또는 2세기 초)는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지침을 준다. 기도들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고 잔이 떡보다 먼저 제공되며 침례받은 신자만 참여자들을 연합시키기 위한 의도로 예식에 참여할 수 있다(9, 10). 이그나티우스(Ignatius, 2세기 초)는 오직 주교만이 예식을 집례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Smyrnaeans 8[ANF 1:90]). 그는 또한 이 예식이 “불멸의 약”이라고도 주장하였다(Ephesians 20 [ANF 1:57]). 유스티노스 마르튀로스(Justin Martyr, 2세기 중엽)는 주의 만찬이 매주 기념된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물과 떡을 섞은 포도주의 사용에 관해 언급하는데, 그것은 곧 “말씀의 기도”를 통한 “예수의 살과 피”를 말한다(Apology 1. 65-67 [ANF 1:185]). (691.4)
 교회 역사의 초기에는 떡과 포도주가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제 살과 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레나이우스(Irenaeus, 130년경-200년경)는, 땅에서 생산된 빵이 “하나님의 기원을 받을 때 더 이상 보통 떡이 아니고 땅과 하늘의 두 실재로 구성된 성체(Eucharist)가 된다.”(Against Heresies 4,18. 5 [ANF 1:486])고 했다. 힙폴뤼투스(Hippolytus, 170-236년경)는 주의 만찬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엄명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믿고 소홀히 여기지 않고 먹도록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Apostolic Tradition 32. 2. 3). 예루살렘의 퀴릴루스(Cyril of Jerusalem, 347년경)는 초신자들에게 떡과 포도주가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됨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하였다(Mystagogical Catecheses 4. 9; 5. 7 [NPNF-27:152, 154]). 그들은 이것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위의 책, 5. 20). 암브로시우스(Ambrose, 339-397년)는 떡과 포도주가 “거룩한 기도의 신비한 효력에 의하여 살과 피로 변화된다.”라고 기록하였다(On the Christian Faith 4. 10 [NPNF-2:278]). (691.5)
 사제들이 중재 역할을 발전시켜 가면서 성찬식의 기념이 미사 제사(Sacrifice of the Mass)되었다. 이미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는 떡과 포도주를 가리켜 “제사”(sacrifice)라는 용어를 사용했다(Morgan 140-144). 253년에 퀴프리아누스(Cyprian)는 한 편지에서 사제가 포도주를 제공할 때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희생 제사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거듭거듭 주장하였다(Epostle 62 [ANF 5:362, 363]).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John Chrysostom, 347년경-407년)는 성찬식을 “두려운 희생 제사이며 형언할 수 없는 신비”라고 일컬었다(Homilies on Acts 21[NPNF-111:141]). 심지어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350년경-428년경)는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줄 때 그리스도가 희생되기 위해 식탁에 눕는다고 주장하였다(Catechetical Homilies 15,16). (691.6)
 2. 중세
 5세기 이후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주의 만찬 중에 있는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서방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354-430년)가 성만찬은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가시적인 증거라고 말했다(참조 First Catechetical Instruction 26. 50).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찬이 효력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믿음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섭취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Sermon 112. 5; cf. Treatise on the Gospel of John 25. 12; 26. 18). 일반적으로 동방에서는 일단 떡과 포도주가 바쳐지면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동일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다마스쿠스의 요한(John of Damascus, 675년경-749년경)은 “떡과 포도주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가리키는 상징이 아니라(절대그럴 수 없다!), 주님의 신격화된 몸 그 자체이다.”라고까지 주장할 수 있었다(Orthodox Faith 4.13). (692.1)
 과연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몸이 실재로 임재하는지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여러 세기에 걸쳐 계속되었다. 1050년에 투르의 베렝가르(Berengar of Tours)는 떡과 포도주가 실재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타낸다고 가르쳤다. 그것들은 믿음으로 받기 때문에 영혼을 영적으로 키워주는 것이다. 이 가르침 때문에 그는 이단으로 정죄 받고, 떡과 포도주과 바쳐진 후에는 실재로 예수의 몸과 피가 된다는 교황 니콜라우스 2세의 성명을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나중에 그가 자신의 본래 입장을 다시 고수하자 다시 단죄 받고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실재 몸:으로 본질적으로 변한다.’는 데 동의하도록 강요당했다”(Barclay 70,71). (6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