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기념”이라는 말을 떡 및 잔과 관련지어 언급함으로써 주의 만찬의 “기념”의 측면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성만찬의 예언적 요소를 훨씬 더 분명하게 강조한다. 이 예식에 참예하는 것은 재림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26절).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의 생애와 죽으심의 의미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기념이 그분의 참된 기념이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사회적 신분과 개인적 쾌락을 추구하는 데 바빴다.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재를 살기 위해서 과거와 미래를 기억하도록 촉구함으로 그런 이기적 행동들을 반박하였다. (687.6)
 마지막으로, 바울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데 있어서 그 예식을 남용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 예식에 “합당치 않게” 참예함으로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게 한다(27절). 그의 권면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상징들의 뜻을 온전히 분변한 후에 주의 만찬에 참여하라는 것이다(28, 29절). 이렇게 하는 데 실패함으로 이미 고린도 교인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이 미쳤고, 따라서 분명 그들에게 추가적인 심판이 초래될 것이었다(29, 30절). 마지막으로 이 회중에게 주의 만찬을 기념하기 위한 바른 길에 대한 교훈을 주면서, 바울은 그들이 이 특별한 예식을 식탐과 과시의 경우로 변질시켰음을 내비친다(33, 34절). (687.7)
 B. 주의 만찬의 신학적 의미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그가 제정한 성만찬의 기본적 의미를 친히 설명하셨다. 이 주제에 대한 어떠한 신학적 사상이든지 모두 그가 말씀하신 것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당연히 그리스도의 제자로 여기기 때문에 주의 만찬의 근본적 의미는 다락방의 열두 제자들에게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동일하다. (688.1)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몸이요” 그리고 “이것은 나의 피”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초청한 것이다. 유사한 개념이 요한복음 6:51-58에서도 발견된다. 거기서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며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셔야 한다고 그분의 청중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자는 그분 안에 “거할” 것이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같은 “거함”을 설명하기 위하여 농장의 한 실물을 사용하였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한다. 다 아는 대로, 그리스도의 말을 듣는 자들이 그분의 몸을 실제로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분의 제자들이 그들 자신을 그의 몸에 신체적으로 밀착시키는 것을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러므로 거하는 것, 먹는 것 그리고 마시는 것은 뭔가를 상징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주의 만찬에서의 잔과 떡은 더 큰 실재를 가리키는 상징이다. 잔과 떡은 예수의 몸과 피 자체가 아니라 그분의 부서진 몸과 흘린 피, 즉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거기서나오는 구원의 선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688.2)
 사람들은 먹고 마심으로 영양분을 몸 안으로 섭취한다. 음식을 먹고 마심으로 사람들이 섭취한 것이 그들 몸의 세포의 일부가 됨으로써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힘을 얻는다. 잔을 마시고 떡을 먹음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된다. 그들은 교제를나누면서 그와함께 먹을뿐 아니라 그분의 품성들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생애에 적용한다. (688.3)
 잔은 “새 언약”을 가리킨다고 예수께서 말씀했다(눅 22:20). 언약의 개념은 유대인들에게 분명한 것이었다. 야훼께서 먼저 이스라엘을 축복하기로 자발적으로 언약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를 사랑하고 순종하겠다고 동의하였다. 이 언약에 대한 위반은 BC 586년에 바벨론 포로를 초래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법이그분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게 되기를 항상 원했으나(신 6:6; 시 37:31; 사 51:7), 그들은 그분을 실망시켰다. 예레미야는 돌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새겨지는 새 언약의 확실성을 이미 피력했었다(렘 31:33, 34). 이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이나 의도를 변경한다는 뜻에서 새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준하는 수단이 새 것이라는 뜻이다. 예수 자신의 피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비준할 것이었다. 최후의 만찬에서 이 새 언약이 실현되었다. 제자들이 잔에 참여할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가능하게 된 새 언약의 제공과능력에 참여하였다 그리스도의 피는 그분의 자발적인 대속의 상징과 수단이었다. 즉 그것은 새 언약이 수립되었음을 나타내는 보증이었다. (688.4)
 성경 시대에는 언약이 흔히 식사로 마쳐졌다. 서로 함께 먹음으로서 양편은 그들의 약조를 이행할 것을 결심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잔과 떡을 나눔으로 그들과 언약을 맺었다. 그분은 그들의 구원이 가능하게 되도록 그들을 위하여 피를 흘릴 것이었다. 그분은 또한 마침내 그들을 데리고 갈 하나님의 왕국에 처소를 예비하기로 동의하였다. 그때까지 그분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않을 것이었다(눅 22:18). (688.5)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의 왕국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 언약에 있어서 예수께서는 자신 편에서의 언약의 징표로 자기의 피와 살을 제공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편의 합의 부분으로서 그 언약의 조건을 이행할 증거로 그분의 희생의 상징에 참여한다. 신자들이 주의 만찬을 기념할 때마다 십자가를 회고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그분의 식탁에 둘러 앉을 날을 바라본다. (688.6)
 새 언약의 피는용서를 위하여 부어졌다(마 26:28). 예수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의 죄들이 지워진다. 예레미야의 새 언약이 말하는 부드러운 마음은 하나님의 용서와 결부돼 있다(렘 31:31-34). 잔을 마시는 것은 인간이 이 용서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한다. (689.1)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온 회중이 함께 잔과 떡에 참예하기 때문에 주의 만찬은 연합시켜주는 요인이 된다. 함께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주님에게는 물론, 서로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689.2)
 예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주의 만찬을 기념하라고 권고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주의 만찬으로부터 얻는 유익들 때문이다. 헬라어 동사 시제는 반복되는 동작(한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는 동작)을 뜻한다. 마치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킨 것처럼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가능해진 죄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한다. 유월절이 유월절 양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대한 것처럼, 주의 만찬은 왕국에서 어린양의 승리를 고대한다. (689.3)
 주의 만찬을 기념할 때, 기념하는 자들은 예수의 죽음의 사실과 실재를 생각해야 할 뿐 아니라 특별히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게 주는 현재적 의미와 영향을 숙고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의 슬픔보다는 부활의 승리의 기쁨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주의 만찬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명상하지 않고는 결코 완전한 기념이 될수 없다. (689.4)
 곧이어 이 성만찬 예식이 “감사를 드림”이라는 뜻의 “Eucharist” 알려지게 된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면서 신자 각자는 예수의 생애와 죽음이라는 무한한 선물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 이 예식은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 간의 친교, 죄 사함 그리고 장래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벅찬 소망을 기념하는 것이다. (689.5)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지적한 대로, 주의 만찬의 기념은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이다(고전 11:26). 그리스도의 고통을 가리키는 상징들에 참여하는 것은 재림의 확실성을 선포하는 행위이다. 상징적 식사로서, 성만찬 예식은 신자들의 일상생활과 그리스도의 오심의 약속을 결합시켜 주며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소망을 증거하도록 권능을 부여해 준다(참조 교회론 VI. B. 1). (689.6)
 C. 주의 만찬의 실제
 신약은주의 만찬의 기념과관련된 세부 사항에 대해서 거의 침묵하고 있다 횟수 누가 참여할 수 있고참여할 수 없는지, 심지어는 사용되는 떡이나 잔의 정확한 재료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이런 실질적인요소들은 성경적 원칙들을 토대로 계발되어 왔다. (689.7)
 1. 기념 횟수
 “이 잔을 마실 때마다”(참조 고전 11:26)라는 구절은 성만찬을 얼마나 자주 기념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지침을 주지 못한다.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횟수에 관해서 신약에는 다른 언급이 없다. 그래서 교회들은 각각 다른 실행 양식들을 계발해 왔다 어떤 교회들은 성만찬을 매주 기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매일 기념하기도 한다. (689.8)
 2. 누가 참여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