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한편, 칼뱅은 침례 예식 자체가 은혜를 부여해 준다는 견해를 부정했다. 기타 은혜의 수단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침례도 죄인들의 마음속에 그분의 은혜를 역사하게 하는 도구로 정하셨다 그는 침례를 신자가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정된 첫 표로 보았다. 주께서 그것을 우리가 모든 죄로부터 정결케 된 것을 나타내는 표와 증거로 제정하셨다. 그러나 칼뱅은 곧 이어서 침례가 제공해 주는 유일한 정결이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Institutes 4. 15. 2). 칼뱅에게 침례의 방식은 물에 잠그는 것이든 물을 뿌리는 것이든 중요치 않았다(위의 책, 19).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칼뱅은 특히 유아 세례와 관련하여 예정론에 강한 관심을 가졌다. 루터와 함께, 그는 예정된 자는 침례를 통하여 은혜로 인침을 받는다고 믿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침례는 교회 안에서
“새 생애”를 시작하는 것을 상징한다. 어린아이가 예정된 자라면 침례를 받지 않고 죽을지라도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않는다. 칼뱅은 사적인 침례를 반대하고 성직자가 침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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