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톨릭의 교회론은 계몽주의의 학문적인 도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교황의 대권을 입증하기 위한 공식 신학자들과 교회법 학자들의 일관성 있는 경향은 교회 내에 발생한 민족주의(갈리아주의 [Gallicanism], 요제프주의[Josephinism], 페브로니우스주의[Febronianism])와 19세기의 새로운 신학적 자유주의에 의해 유도된 측면이 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1870년)가 이러한 발전의 정점을 찍었다. 그것은 교황의 권력을 신앙과 도덕의 문제뿐 아니라 교회의 징계와 정치를 포함한 문제들에 대해서까지 모든 로마가톨릭교회의 위에 군림하는 최대, 최고의 권력으로 정의했다. (661.3)
 E. 20세기
 교회의 본질과 정체에 대한 20세기의 관점은 종교 개혁시대의 그것보다 더 다양화된 패턴을 제시한다. 현 시대의 시각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대표적인 인물들 또는 운동들을 선택적으로 다루겠다. (661.4)
 1. 개신교 자유주의
 리췰의 신학과그의 윤리적 강조는 특별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유럽과 미국 그리고 특히 개신교 진보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에 대한 역사적 비평주의에 뿌리를 두고 종교를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으로 이해했던 쉴라이어마허와 리췰의 윤리적인 접근 방식에 힘을 입어 사회 복음(social gospel)에 강조점을 두는 교회의 개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교회는 기껏해야 다가올 나라를 맞이할 길을 열겠다는 “사회 복음”의 사명을 위한 공동의 신앙적 또는 윤리적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인간 조직체에 불과했다. 신조와 교회론적 교의는 사적인 견해의 문제였으며 종종 급진적인 사회 변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661.5)
 자유주의 교회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사이에서 연합에 대한 범그리스도적인 자극으로 각성된 신자유주의(neoliberal) 신학자들은 영적인 교회와 조직된 교회 사이의 구분을 주장하면서 교회를 위한 공간을 확보했다. 즉 분열된 교단들을 초월한 한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사회적인 협동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수립한 거룩한 기관으로서 하나님의 통치에 헌신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친교이다. 그것은 심지어 어느 정도 필연적인 조직 체계를 갖출 수도 있다. (662.1)
 2. 카를 바르트(Karl Barth)의 교회론
 자연 신학과 경험에 기초한 모든 종교를 거부하며 종교개혁의 기본 원칙들로 회귀하고자 노력한 카를(Karl Barth)의 신학에서는교회론이 동시대 신학자들의 교회론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언어는 사람들의 바람만큼 항상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의 교회론은 진전을 이뤘다. 바르트는 교회의 본질과 정체에 관한 자신의 관점들을 일관성을 가지고 명확하게 표명해 왔다. 그의 저술 〈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 제4권을 보면 관련된 주제에 관한 바르트의 논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662.2)
 교회는 인간의 기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이자 사건이며, 새롭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분의 창조 사역이다. 그것은 비가시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에 불가시성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려는 시도는 그것의 가치를 폄훼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이며, 한 교회로 가는 과정에서 분열된 교회들은 자신들이 하나의 교회라는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 비록 계속되는 실패와 부족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단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거룩하다. 그것은 또한 각 시대마다 그 본질에 충실하며 지속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한 보편적(catholic)이다. 이것은 또한 교회의 사도성을 설명한다. 교회는 사도들과 그들의 기별에 따르며 그들의 규범적인 권위와 지시 하에 머문다. 이점에서 참교회와 거짓 교회가 구분된다. (662.3)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며 또한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이런 이중의 사역은 복음 전파를 촉구하고 그것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그 사역과 관련된 자들이 처해 있는 때와 장소와 상황에 대한 적용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중 사역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각 형태는 전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토대로 한다 성직자와 평신도 그리고 직분자와 비직분자라는 일체의 구분은 거부된다. 아무도 직위를 갖지 않으나 아무도 의무에서 면제되지도 않는다. (662.4)
 3. 한스 큉의 교회론
 한스 큉(Hans Kung: 1928-)은 20세기의 로마가톨릭 교회론 신학자 중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가장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저술〈교회구조론(Structures of the Church, 1963)〉과 〈교회론(The Church, 1967)〉에서 주로 성경적인 자료와 교회 역사를 토대로 하나의 교회론을 구축한다. 교회의 기원, 예식, 사도적인 계승, 지역과 세계 교회, 교황의 지위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큉은 교회 역사와 신약의 증거들을 사용하되 현재의 공식적인 교리를 지지하기보다는 대안적인 가능성들을 제시한다. 로마가톨릭과 개신교를 구분하는 선은 전통적인 사상보다는 덜 날카롭게 그에게 작용한다 교회의 본질과 정체에 관한 논의에서 그의 가장 두드러진 기여는 1979년 바티칸공회 이전에 그가 제기했던 통찰력 있는 문제들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로마가톨릭 신학을 가르칠 수 있는 신임서를 회수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662.5)
 F. 현재의 옆바람들
 1. 에큐메니컬 운동
 최근의 교회론은 근대의 종교통합 운동의 발생과 발전으로 인하여 최전선에 서있다. 종교통합 운동의 주된 관심사가 교회들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과 정체에 관한 사안들은 간과될 수 없다. (662.6)
 1910년 에든버러(Edinburgh)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 결과로 1948년에 창설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시적인 연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러한 연대는 상호 사역의 인정 속에서 하나의 침례와 사도적인 신앙 고백, 성만찬의 공동참여를 통해 그 토대를 구축한다고 인식된다. 모든 것이 교회론에 관련된 쟁점들이다. 그 자체로는 어떤 뚜렷한 교회론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여러 교회 사이에서 연대감을 조성해 왔으며, 그것은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20세기 교회 역사에 괄목할 만한 요소로 꼽힌다. 이러한 집합점은 1982년에 가결했던 신앙과 질서 성명서 ‘침례, 성만찬과 목회’에서 그 면모가 드러났다. (663.1)
 영적인 진리에 대한 관심의 측면에서 어떤 교회들은 교회 정부, 목회의 형태와 기능 초대형교회의 망령, 세계 선교의 영역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실패 등 그들의 염려와 의구심을 주저하지 않고 표명했다. (663.2)
 2. 로마가볼릭의 에큐메니컬 운동
 처음에는 WCC가 표방한 목적에 반대했지만, 로마가톨릭교회는 그것과 광범위한 협력의 길을 선택했다. 교회 통치 방식에 관한 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는 교황권을 상당히 공동체적이고 협력적인 관점에서 보았고, 모든 그리스도교의 재연합에 대한 그것의 열망을 분명하게 드러냈으며, 또한 동방정교의 “자매 교회들”과 다른 교단의 “교회적 차원들”을 인정하였다. 그 이후로 로마가톨릭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쌍방향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WCC와 관계를 증진시켰다. 그럼에도 요한 바오로 2세가 보낸 회칙 “하나가 되게 하소서”(Ut unum sint, 1995)와 그리스도교의 연합에 대한 그것의 호소는 교착에 빠진 에큐메니컬 운동과 그것의 불확실한 미래를 해소하는 데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663.3)
 3. 포스트모더니즘의 방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