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들이 발생하자마자 신자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확증할 수 있는 분명한 표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필요성은 이미 초기교회 시대부터 제기되었다. 물론 신약은 여기에 나타난 것보다 조금 더 긴 목록을 제안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특성들은 다른 시대의 것들보다 더욱 확연해 보인다. (649.1)
 A. 믿음
 교회의 근본적인 특성은 살아있는 믿음이다. 신약에 따르면 교회는 철학자나 직업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믿는 자들의 공동체이다. “믿는 자들” 또는 “믿는 무리들”이라는 표현은 교회의 회원들을 가리키기위해 동의어적으로 꾸준히 사용된다(참조 행 4:4, 32; 5:14; 15:5; 18:27; 살전 1:7; 담전 4:12). 처음에 교회의 통과의례이자 그리스도의 몸에 속했다는 증표였던 침례는 기본적으로 믿음과 고백의 의식이었다(행 2:44; 8:12; 16:31-33; 18:8.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이러한 믿음은 단순히 지적인 동의의 행위가 아니라 신자와 그리스도의 친밀한 연합의 상징이었으며 그 결과는 새로운 창조였다(고후 5:17). (649.2)
 B. 친교
 믿음의 본질 다음에 따라오는 표지는 교제이다. 근본적으로 이 교제는 승천하셨지만(행 3:21) 정서적으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와의 사귐이다(갈 2:20; 참조 마 18:20; 28:20).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사귐(코이노니아)에 초대되었고(고전 1:9), 이 사귐은 또한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를 연결해 주는 ‘성령의 교제’(빌 2:1) 또는 “성령의 교통하심”(고후 13:13)이다. (649.3)
 이러한 교제는 동일하게 교회 공동체의 신자들에게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그것은 원시 교회의 주요 특성 가운데 하나였다(행 2:42). 모든 신자는 각각 그리스도와 연결되었으므로 서로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권면을 받았다. 그들이 나누었던 교제의 실상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교제 속에 속한 자들에게 사용되었던 “형제들”이라는 용어의 빈번한 등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서만 40여 차례, 바울의 서신에서 90번 이상 등장한다. 그것은 성만찬에 대해 언급하는 고린도서에서부터 나타난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만찬을 통해 교제할 때, 그것은 참 여자들 사이의 생각과 마음의 친교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친교를 표현하게 하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649.4)
 한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지만, 이 세상 가운데서 그 나라의 당도를 나타내도록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았다. 인간의 관례적인 가치관을 뒤집는 방식의 수많은 역설은 이러한 모형화 과정과 하나님의 통치가 매우 밀접함을 말해준다(참조 눅 22:24-30). 교회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든지 그렇지 않는 자들이든지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 나라의 개방성을 나타내되(마 5:43-48), 동시에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주인, 남자와 여자를 나누는 위압적인 장벽을 허물며 감회를 끼치라고 부름을 받았다(갈 3:28). 그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라는 기도는 경건한 기도 이상의 의미를 표현한다. 그 나라는 교회가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본을 보일 때에 이 세상에서 성장한다(마 6:10;참조 안식일 III. D). (650.1)
 C. 하나 됨
 신약의 설명에 따르면 하나 됨은 교회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이다 비록 여러 회중이 있다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분을 머리로 삼은 한 몸, 한 교회이다. 바울이 기록했듯이(엡 4:4-6), 이 몸을 위한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이시다. 이러한 연합은 가시적인 연합으로 인식된다. 예수님의 기도는 이러한 연합의 필요성을 증명한다 그분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세상으로 하여금 알고 믿게 되기를 간구하셨다(요 17:23, 21). 바울도 이루기를 원했던 그러한 연합은 종족, 계급, 남녀라는 분리적인 요소들을 초월한다(갈 3:28). (650.2)
 그것은 몸의 각 지체들이 하나가 되려는 자발적인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가능한 연합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엡 5:2-15). (650.3)
 다양한 문화와 세대와 지역 안에서 교회는 이질적인 구성원들로 이뤄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신(계 5:9) 어린양을 송축한다. 그러나 모두는 한 몸에 속하며 그 내부적인 연합은 하나의 가시적인 교회 안에서 동일한 믿음과 행위의 고백을 통한 외적인 표현을 추구하며 습득한다(엡 4:5, 13, 14). (650.4)
 성경에 따르면, 이런 연합과 결속은 교회라는 조직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에 있다. 그 말씀이란 사도들이 전했고(행 4:31; 13:5; 15:35; 16:32 등), 이방인들이 모여서 듣고 기뻐했던(행 11:1; 13:44, 48), 그리고 흥왕하여 번성했던 말씀이다(행 12:24;참조 6:7; 13:49; 19:20). 분열과 파벌의식은 거짓 형제(갈 2:4)와 거짓 사도(고후 11:13),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거짓 교훈(딤전 6:3; 벧후 2:1)과 더불어 강력하게 규탄을 받았다(참조 고전 11:18, 19; 갈 5:20). 바울의 깨달음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딤전 2:4)신다. 그런데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딤전 6:4) 자들은 반드시 보존되어야 할 “진리”(살후 2:12, 13), “진리의 말씀”(엡 1:13; 딤후 2:15) 같은 것을 반대하며 교회의 하나님 됨을 위협하고 있다. (650.5)
 D. 거룩함
 성결은 교회의 또 다른 주요 특징이다. “믿는 자들”과 더불어 “성도”는 특히 바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구성원들을 지칭하기 위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명칭 중 하나이다. 신약에서 거룩한(그리스어로 하기오스) 사람, 사물 또는 장소는 하나님께 속한다. 즉 그것은 죄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성별된다. 이러한 요구는 다음과 같은 진술에서 강조된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 20;참조 벧전 1:18, 19). (650.6)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성결과 성도됨의 의미는 옛날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것처럼(출 19:6; 벧전 2:9;참조 레 20:26)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서 세상으로부터 분리됨에 있다(딤후 1:9). 교회는 세상과 분리되어서 거룩하므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반사하며 타락한 세상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세상 중에서”(요 17:6) 불러내셨다. 그들은 비록 여전히 “세상에”(11절) 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14절)한 것으로 여기셨다. 신약에서 성결의 개념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됨’‘반역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아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하라는 그것의 사명과 임무를 저버린 채 거룩해질 수는 없다. (651.1)
 반면 외적인 성결의 의미와 병행하여 ‘거룩한’‘성도’라는 말은 윤리적인 거룩함의 의미를 동반한다. 그리스도교의 성결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말미암아 결정되는 상태뿐 아니라 성품과 행위에서 표현되는 ‘하나님께 대한 성별’에 있다. 교회의 신자들은 성결의 증거가 대단히 부족할 지라도 성도로 부름을 받는다. 바울도 책망 받을 것이 많았던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성도”라는 명칭을 사용한다(고후 1:1). 비록 성별과 성도됨이 신자로서의 외적인 부름과 상태를 가리킨다 할지라도, 성화의 작업은 진행 중이며 또한 계속 되어야 한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보일지라도 고린도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동시에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 묘사되었다(고전 1: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자신을 그리스도께 성별하여(고후 6:14-18)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룬다(고후 7:1). 성결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시되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엡 5:25, 26; 참조 딛 2:14) 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라는 경험이다. 교회의 성결은 지속적인 인간의 불완전성과 엮여 있다. 교회는 거룩하나 여전히 연약함의 영향을 받는다. (651.2)
 E.보편성
 동일한 명확성을 가지고 신약은 교회의 보편성 또는 포용성을 주장한다. 교파적인 느낌 때문에 자주 오해되곤 하지만 ‘catholic’(보편적인)이라는 말은 계층적인 특정 종교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기별이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교회는 만민을 포용해야 한다(마 28:19; 참조 계 14:6). 그것은 특정 시대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세대와 민족과 사회에 속한 신자들을 포괄한다. (651.3)
 그러나 교회의 보편성은 그것의 전 세계적인 활동에 있지 않고,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진리와 더불어 그것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는 감화력에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교회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온전한 권면을 제공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하신 대로 온전한 진리를 가지고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참조 행 20:27).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모든 가르침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 세상에 가르친다(마 28:20). 여기에 신뢰할 만한 시금석이 있다. 교회의 보편적인 특성은 선교적으로 명확한 관련성들을 가지고 있다. (651.4)
 F.사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