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병거 제9장 하나님의 백성이 겪을 마지막 때의 위기
 하나님께서는 “세 귀신의 영”이 도모하는 일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마지막 경고를 선포하도록, 세 천사를 보내신다(6-9절16:13, 14). 천사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충성스럽게 남아있고 또한 “예수께 신실하게” 남아있도록 격려한다(계 14:12). (181.4)
 사단의 세 영들이 전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아마겟돈에서 하나님을 대항하는 “전쟁을 위하여 ∙∙∙ 모으도록” 하고 있는 반면에(계 16:14, 16). 하나님의 세 거룩한 천사들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바벨론을 떠나 시온산에서 어린양과 함께 서라고 호소한다(계 14:1; 18:4). (181.5)
 1. 적그리스도의 거짓 주장들
 요한계시록 16장에 나오는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진노의 잔은 6장 끝 부분에 나오는 진노의 날에 있을 일을 더욱더 자세하게 밝혀준다. 일곱 재앙이라는 일련의 심판은 “음녀의 파멸에서 그 클라이맥스에 다다른다.”2) 요한계시록 전체가 에스겔서의 개요의 모델—배도와 심판 그리고 마지막 회복一을 뒤따른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메싱거얼드 포드(J.M. Ford)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음녀 바벨론이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시대의 빗나간 “예루살렘”“믿음 없는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결론을 내린다.3) 다른 말로 하자면 현대 바벨론은 무신론적인 세력이 아니라 옛 바벨론처럼 행동하는, 하나님의 불충실한 언약의 백성이라는 말이다. 이 주장은 우리가 만일 다음과 같은 성경적인 증거들을 고려하면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182.1)
 히브리의 다섯 선지자들이 그들 당시의 배도한 이스라엘 족속들—유다를 포함하여—을 “음녀” 즉 야훼의 간음한 아내로 묘사하였다(호 2:5; 3:3; 4:15; 사 1:21; 미 1:7; 렘 2:20; 3:1, 6-10; 겔 16장23장을 특별히 보라). 에스겔은 다른 어느 선지자들보다 생생하게 예루살렘이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과 “뻔뻔하게(수치스럽게) 행음한” 것을 비난하였다(겔 16:26-30). (182.2)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부정한 애정 행각 때문에 거룩한 분노 가운데서 예루살렘에 대항하도록 바로 그 연인들을 모으심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벌거벗기고, 장식품을 훔쳐 갈 것이며, 그들을 칼로 토막내며, 그들의 집을 불사를 것이다(37-41절). 요한계시록 17장은 타락한 이스라엘에 내린 이 심판의 묵시문서적인 실체(antitype)를 음녀 바벨론에게 적용하고 있다.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계 17:16). (182.3)
 하나님께서 자기의 옛 언약의 백성에 대해 내리는 선고는 매우 구체적이다: (183.1)
 “그들이 행음하였으며 피를 손에 묻혔으며 또 그 우상과 행음하며 내게 낳아준 자식들을 우상을 위하여 화제로 살랐으며 이외에도 그들이 내게 행한 것이 있나니 당일에 내 성소를 더럽히며 내 안식일을 범하였도다”(겔 23:37, 38). (183.2)
 성소와 안식일은 이스라엘이 창조주와 구속주되신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기둥이었다. 이 둘은 이스라엘을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독특하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이 거룩한 진리들로써 지금도 배도와 개혁을 측정하신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경배와 도덕적 삶의 궁극적인 책임은 특히 안수받은 제사장들에게 놓여 있었다. (183.3)
 그러므로 음녀인 예루살렘에 관한 일반적인 상징 방법 가운데서 중심 초점은 부패한 제사장직에 특별히 집중된다.4) 흥미로운 사실은 쿰란 두루마리들이 예루살렘이 재차 성소에서 예배 의식상의 배도를 시작하고 가난한 자들을 희생시키면서 사회 불의를 조장한 악한 제사장들을 지지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5) (183.4)
 묵시문학상 음녀의 몇 가지 특징은 그리스도교 안에 재생되어진 배도들을 가리킨다:

   (1) 음녀는 손에 금잔을 들고 있다(계 17:4).

   (2) 음녀는 자기의 머리 위에 비밀스러운 의미를 지닌 이름을 기록하였다: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5절).

   (3) 음녀는 예수의 순교자들인 “성도들의 피에 취하였다”(6절). (183.5)
 음녀가 입고 있는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며진 자주 빛과 붉은 빛의 다채로운 옷은 곧바로 동일한 색깔의 옷을 입었고 열두 보석이 금 가운데 박혀서 만들어진 흉배를 지닌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을 상기시켜 준다(출 28:5, 15-20). 음녀의 이마에 있는 신비한 각인(刻印)인 “큰 바벨론”을 대제사장의 이마에 쓰여져 있는 “야훼께 성결”의 대응구로 볼 수 있다(출 28:36. 38). 환언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음녀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을 모방한 것으로, 기독교 내의 전세계적인 종교적 배도를 뜻한다. 적그리스도는 기독교 시대의 “제사장—음녀”라고 불리우기조차 해왔다.6) 음녀는 구원의 거룩한 봉사一성소에서의 “구원의 잔”(시 116:13 참조)一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신 바벨론의 포도주로 가득 채운 금잔 속에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혼란을 담아 제공한다(계 14:8 참조). 바벨론은 반대자들을 핍박하고 결국은 처형시키기 위하여 국가 권력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종교적 도그마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일을 분명히 주장한다(계 17:1-6). (184.1)
 고대 예루살렘은 이미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살해한 자였다(마 23:29-39). 만일 이스라엘의 배도와 교회의 배도 간에 본질적인 상응성이 실재한다면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새 언약상의 구원의 길과 그 신성한 안식일의 쉼을 타락시키는 일을 한다고 예기할 수 있다. 바울은 사도 교회 내에서 근본적인 배도를 예견하면서 지역 교회의 장로들에게 사도적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이 도래할 것을 경계하라고 당부하였다: (184.2)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행 20:28-30).
(184.3)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185.1)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마지막 반역”이 역사상으로 “적당한 시기에”만 그 모든 기만이 벗겨질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만이 그것을 멸망시킬 것으로 알고 있었다(살후 2:3-8). (185.2)
 요한계시록에는 지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벨론을 떠나 하나님의 이스라엘로서 시온산으로 오고(계 18:4; 14:1). 음녀로부터 분리하여(계 17장). 하나님의 여자에게 연합하라고 하는(계 12장) 그리스도의 마지막 호소가 기록되어 있다. 창조주께 충성스러운 경배를 드릴 것인지 아니면 불충실한 경배를 드릴 것인지가 근본적인 이슈이다(계 14:7, 9-11).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과 정반대로 선다는 것이다. 마지막 싸움은 하나님의 원래의 계명들과 예수 안에서 사도적 신앙의 지속적 타당성에 대한 분노에서 일어나고 있다(계 14:12). 그러므로 마지막 종교적 투쟁의 중심에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도덕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놓여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계속하여 범하는 자가 ‘짐승의 표’ 를 받게 된다는 일은 하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율법과 복음에 관한 성경의 권위 문제를 확실히 밝히신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느냐 사람의 계명을 순종하느냐 하는 문제 중 어느 한편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에 비로소 있게 된다.”7) 이 짐승의 표야말로 전세계에서 마지막 세대의 최후 논쟁점이 될 것이다(계 14:6, 9-12). (185.3)
 2. 최후 드라마의 역사적인 모형들
 자기의 믿음을 위하여 죽은 첫번째 순교자는 아벨이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자기의 제사를 가납치 않으시자 자기의 동생에게 노를 발하였다. 그래서 가인은 “그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창 4:8). 같은 하나님의 경배자들 간의 이 숙명적인 증오는 그리스도의 참 교회에 대하여 적그리스도가 벌이는 잔혹한 전쟁의 원형이 된다. 최후 이슈도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였는가 여하에 있다. (186.1)
 다니엘서에 나오는 두 개의 이야기는 묵시문학적 드라마에서의 종교적인 이슈를 특별하게 조명해 주고 있다. 바벨론의 왕인 느부갓네살은 두라 평지에 금신상을 세웠다. 그는 그 금신상 낙성 예식때에 모든 사람들이 나팔과 여러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 금신상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였다(단 3:1-5). 느브갓네살의 독재적인 조서는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이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6절). 유대 정부의 세 관리들이 야훼께 향한 충성으로 느부갓네살의 이 명령에 순종하기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1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