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의 기록 연대는 A.D 60년대 후반으로부터 80년까지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다. 마태복음은 초대 교회에서는 가장 인기가 높았던 복음서이다.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다른 어떤 복음서들 보다도 마태복음을 많이 인용하였다. 교훈의 복음서로, 또 교회의 복음서로 간주되었다. 이런 점에서 만약 A.D 60-80년대의 초기 기독교인들이 제칠일 안식일대신에 일요일을 지켰다면 당연히 초대 교회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마태복음에 그러한 신앙적 경향이나 전통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초대 교인들이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켰다는 암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116.3)
 예수님께서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는”(마 28:8) 여인들에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마 28:9). 그러나 이것은 주간의 날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경건한 추종자들에게 끼친 엄청난 충격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마태는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116.4)
 누가복음에 나타난 주간의 첫째 날
 누가복음의 기록 연대는 마태복음과 같거나 그보다 좀 늦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누가는 위대한 역사가의 한 사람으로 문화적 소양과 지적인 훈련과 문학적인 재간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다. 누가는 누가복음의 서문(눅 1:1-4)에서 예수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미루어 살폈으며” 실지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차례대로” 질서있게 진술하였다고 밝혔다. 따라서 예수의 죽음과 매장과 부활로 이루어지는 예수의 사건의 진행을 그가 어떻게 주의 깊게 진술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특별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117.1)
 예수님이 죽고 장사된 날은 안식일이 시작되려는 “예비의 날”이었다(눅 23:54). 예수님의 장례의 마지막 예식을 위해 준비했던 경건한 여인들은 안식일 하루 온 종일을 “계명을 좇아 쉬었다”(56절). 그리고 주간의 첫째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장례를 마치기 위해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24:1). 누가복음 23:55로부터 24:1까지의 구절은 세 구절에 걸쳐 있지만 희랍어로는 한 문장이다. 누가복음 4:1“데”(de 그러나)는 누가복음 23:56의 접속분사 “멘”(men; ∙∙∙ 하지만)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희랍어 한 문장이 누가복음 24장24장으로 쪼개어진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원래의 문장은 여자들이 안식일에 쉬었는데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에는 쉬지 않았다는 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117.2)
 여자들이 아침 일찍이 무덤에 도착해 보니 “돌이 무덤에서 옮기어 있었고 예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눅 24:2, 3).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에서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 곧 천사들을 보았다. 그 천사들은 그들에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물었다(24:5). 천사들은 예수께서 세 차례나(눅 9:22, 44; 18:31, 32) 되풀이하여 그가 고난받아 십자가에 매달릴 뿐만 아니라 “제 3일에”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라 하신 말씀을 그들의 마음에 상기시켰다(24:4-8).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여 부활을 기다렸어야 했다. 천사들은 사람들에게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24:6)고 당부하셨다. 천사의 당부를 들은 이 경건한 여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회상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확고히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기쁜 소식을 예수님의 제자들과 여러 다른 추종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서둘러 달려갔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 보고를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믿지 않았다(24:9-11). (117.3)
 누가복음의 특징이랄 수 있는 정교한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누가는 예수의 죽음이 의미없는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성취였다고 강조하였다. 24:1에서 언급된 같은 날에 두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7마일의 거리에 있는 엠마오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이 걸어가면서 예루살렘에서 발생했던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낯선 객으로 가장한 부활의 주님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 들어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으셨다(눅 24:17). 그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여 기적과 가르침에 의해 선지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대제사장들과 통치자의 손에 무참히 죽임을 당하신 예수의 이야기를 말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가 단순한 선지자의 한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로마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메시야로 기대했는데 이제 그들의 소망은 수포로 돌아가고 실망만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117.4)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제 3일에 부활하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더불어 말하기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지가 사흘째”라 하였다(24:21). 뿐만 아니라 그들은 무덤이 비었고 천사들이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선언하셨다는 여인들의 보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무리의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서” 직접 여자들의 이야기의 진위를 확인한 결과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인 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22-24). (118.1)
 그때 아직도 나그네의 한사람으로 자신을 감추고 계신 주님께서 그들의 영적인 둔감성을 꾸짖으셨다. 메시야의 고난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을 위한 불가피한 성취였다. 예수님은 “모세와 및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27절). 그리하여 종착지에 이르자 그들이 예수님께 함께 머물 것을 강권하였다. 그가 식탁에 그들과 함께 앉게 되자 주인의 입장이 되어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들에게 주시었다”(30절). 그때 갑자기 저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으나 예수님은 저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31절). (118.2)
 같은 날 저녁에 사도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심으로써 크게 놀랐다. 그가 어떻게 거기 오셨으며 그가 어디서 오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자기가 진실로 그들이 사랑하는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확증하려 하셨다. “내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셨다.(39, 40). 그러나 이것으로도 제자들의 의구심과 두려움을 물리치는데는 충분치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먹을 것을 요청하셨다. “구은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시고 그 앞에서 잡수시었다” (42, 43절). 그리고 구약 성경을 십자가와 부활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할 필요성을 가르치려 하셨다. 말씀하시기를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 기록되었다”고 하셨다(46, 47). (118.3)
 이것은 대단한 이야기이며 깊은 의미로 가득 찬 이야기이다. 그러나 누가는 사건이 일어난지 여러해 만에 사건을 정리해 기술했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대해 데오빌로에게 가르치려는 의도로 복음서를 썼지만(1:4) 안식일이 이제 철폐되었다든지 또는 그리스도인들이 주간의 첫째날을 지키기 시작했다는 암시를 그의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118.4)
 요한 복음에 나타난 주간의 첫째날
 안식일과 또 주간의 첫째 날에 대한 요한복음의 증언은 두가지 이유 때문에 특별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첫째는 요한복음이 기록된 연대가 상당히 늦다는 것이고 둘째는 요한복음의 기자가 예수님의 측근 제자인 요한이라는 사실이다.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 요한이란사실 때문에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 줄 아는 것이다”(요 21:24). 요한복음의 기록 연대는 정확히 지적할 수 없으나 대부분의 신약 학자들은 제 1세기의 끝 부분일 것으로 그 기록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만약 이처럼 요한복음의 기록연대가 늦다면 그리스도인의 예배일에 대한 요한복음의 증언은 대단히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118.5)
 요한복음 18:15, 16에 따르면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님을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갔었다. 그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집 뜰로 들어갈 수가 있었고 또 베드로까지 데리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요한복음 20:20에 의하면 이 “또 다른 제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제자가 요한이 라는 사실은 또 요한복음에 야고보와 요한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요한복음 21:2에서 두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들”로만 언급된 사실에서도 뒷받침 되고 있다. 요한복음의 기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최측근의 한사람인 제자 요한이라는 사실은 요한복음의 증언에 크게 무게를 더하는 것이다. (119.1)
 요한복음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에 왔다”(20:1). 그녀는 돌이 무덤 입구에서 옮겨진 것을 알고 예수님의 시체가 옮겨진 것으로 단정하여 이 사실을 시몬 베드로와 요한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 그리하여 막달라 마리아의 보고를 들은 그 두 제자들이 함께 무덤까지 달려갔으나 요한이 베드로보다 더 앞서 달려 먼저 무덤에 도착하였다(2-10). 요한은 무덤 밖에서 빈 무덤 안을 살펴보았으나 베드로가 도착하여 함께 들어가기까지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요한은 무덤 안을 살핀 다음에 무덤이 도굴당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무덤 안에서 세마포를 보았고 또 예수의 머리에 씻던 수건도 딴 곳에 개켜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보고 믿은” 것이었다(20:8). (119.2)
 분명히 막달라 마리아도 베드로와 요한보다는 늦은 걸음으로 그들을 뒤 좇아 무덤으로 다시 왔다. 그리고 “두 제자가 집으로 돌아간”(20:10) 이후에도 무덤에 혼자 남았다. 그녀는 “울면서” 허리를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가 뒤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천사들이 말하기를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하였다. 마리아가 “사람들이 내 주를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예수님이 거기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남자가 정원지기인줄로 착각하고 예수님의 시체를 “어디에 두었는지 내게 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 거늘” 마리아가 예수님의 특유의 친근한 말투를 듣고 그가 예수님이신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하고 그녀를 말리셨다(17절). 이렇게 되자 마리아는 서둘러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내가 주님을 보았다”고 소식을 전했다. (119.3)
 그 날 저녁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부활의 주님께서는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때 도마만 없었다(19절, 24절). 여기서 분명 요한복음은 일몰부터 일몰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는 유대 방식이 아니라 밤 자정부터 자정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는 로마 방식으로 날을 계산하고 있다. “안식 후 첫 날 저녁”은 첫째날의 저녁 (즉 일요일 밤)을 말하는 것이지 일요일이 시작되는 저녁 곧 토요일 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19.4)
 그러면 일요일 밤에 제자들은 무슨 목적으로 함께 모여있었는가?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여있었는가? 그렇게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때까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눅 24:36-43; 막 16:9~13). 그러면 주간의 첫째 날에 예배와 그 밖의 종교적인 모임을 갖고자하여 모였었는가?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첫째 날이 제자들에게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는 암시를 전혀 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요한은 주장하기를 제자들이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방문을 잠그고 있었다고 하였다. 아마 그들이 이때 함께 모여 있던 방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들었던 방일 것이며 또 그들이 함께 유하고 있던 방(행 1:13)이었을 것이다. 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닫혀 있었고 자물쇠로 채워 있었다(19절).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셈족 특유의 인사말인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하셨다. 그는 자기가 참으로 부활한 주님이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자기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20절). 그리고 분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셨다. 그리고 오순절에 대한 하나의 예상으로써 그는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하셨다”(21, 22절). 이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 주간의 첫째 날이 안식일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지시를 주시었는가? 요한복음은 그 같은 일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다. (120.1)
 어떤 이유로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던 도마가 뒤에 와서 열명의 제자들로 부터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증언을 들었으나 믿지 않았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고집하였다(25절). (120.2)
 약 일주일 후에 예수님께서 도마도 참석한 가운데 자물쇠로 잠겨있는 그 방으로 다시 들어오셨다(26-29장). 한글 개역 성경과 영어 개역 표준 번역 성경에는 “여드레를 지나서”라고 되어 있다. 희랍어 원문은 “8일 후”이다. 마가복음(8:31; 9:31; 10:34)에서 “사흘 후”라 한 것이 사실은 “제 삼일에”란 뜻이었던것(마 16:21; 20:19; 눅 9:22; 18:33)처럼 “8일후”란 말은 제 8일에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한국 사람처럼 기간을 셈할 때 해당 날짜까지 포함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 날이 정확히 주간의 몇 째날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반적으로는 다음 주 일요일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그 날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