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I 부 왕의 선포 (4:17-16:20) 3. 왕국의 원칙들 I (4:17-5:48)
 ■ 말씀에 들어감
 마태복음 5:13-48을 두 번 읽으라. 두 번째 읽을 때는 다음 사항들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100.1)
 1. 13-17절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을 언급한다.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사실인가? 어떻게 소금이 그 짠맛을 잃을 수 있는가? 5:14요한복음 8:129:5과 비교하라.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으로 불릴 수 있는가? (100.2)
 2. 5:17에 언급된 “율법이나 선지자”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면서, 그 구절을 누가복음 24:44과 비교해 보라. 예수께서는 어떻게 율법과 선지자를 “성취”하셨는가? 성경사전에서 율법(law)이라는 항목을 찾아 살펴보고, 신약에 많이 사용된 그 단어의 용례들을 요약해 보라. 5:17-48에서 예수께서 십계명을 폐지하지 않으셨다는 증거들을 찾아 열거해 보라. (100.3)
 3.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전 생애를 보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5:20에서, 그리스도인의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는 한, 그들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義, righteousness)는 신약에서 여러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성구사전을 사용하여 마태복음에 언급된 ‘의’의 용례를 모두 찾아 보라. 마태가 5:20에서 ‘의’가 무슨 뜻으로 쓰였다고 그대는 믿고 있는지 그대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라. 또한 바리새인의 의에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그대가 발견한 것을 열거하라. 다시, 그리스도인의 의가 어떤 방식으로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서기관들)의 그것보다 뛰어나야만 하는지 그 방법들을 열거해 보라. 여기서 마태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유(類)의 의를 가르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5:21-48에서 은혜가 차지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100.4)
 4. 산상설교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진술들 중의 하나는 마태복음 5:48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하신 그 명령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두 문단으로 논의하라. 그대가 답을 작성하기 전에, 5:43-48의 인접한 문맥과 누가복음 6:32-36에 있는 평행 구절들을 반드시 연구하도록 하라. 5:43-48에 있는 인접한 문맥이, 그리스도인들이 모방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하나님의 행위들에 빛을 비춰주고 있는 방법들을 열거하라. 어떻게 누가의 평행 구절이 또한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는가? 율법 가운데 가장 큰 계명에 대한 그리스도의 정의(22:37-40)가 5:48이 가질 수 있는 의미에 어떤 빛을 비추어 주는가? (100.5)
 ■ 말씀을 탐구함
 그리스도인의 감화력
 13-16절의 소금과 빛이란 은유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감화력에 관하여 하신 예수의 선포는 3-12절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에 대한 그의 묘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감화력은 그의 성품에 좌우된다. “그리스도인” 성품이 없다면, “그리스도인” 감화력도 있을 수 없다. 소금이 효력이 있으려면 짜야 하고, 빛은 비쳐야 한다. (101.1)
 소금은 많은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소금은 냉장고가 없는 사회에서는 보존제로 사용된다. 고기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그것을 문질러 고기 속으로 집어넣는다. 소금의 또 다른 긍정적인 기능은 맛을 내는 일이다. 소금이 첨가되면 더 맛이 나는 음식물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성취하려면 소금은 음식에 침투해야 한다. 음식에서 1센티미터라도 떨어져 있는 소금은 보존력을 발휘할 수도 없고 맛을 낼 수도 없다. (101.2)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세상의 소금”(13절)으로 기술한다. 그는 우리에게 소금이 되라고 명령하지 않고, 한 가지 사실을 진술하였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둘러싼 문화와 서로 섞임으로써 소금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오직 이런 방법으로써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역할, 즉 그들의 사회를 보존하고 맛을 내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들이 팔복을 실천하는 생활을 해 나갈 때, 그들의 일상 생활들은 그들 주변의 백성과 사회를 누그러뜨리며 다소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들의 일상 생활은 그들이 보여주는 작은 친절, 그들이 나타내는 겸비, 등을 통하여 사회를 “살맛 나게” 만든다. 거만하고 강퍅해진 사람들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모방하기로 선택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참 그리스도인들을 존경하지 않기가 어렵다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끼치는 감화의 한 가지 효과는 바울이 로마서 1:18-32에 솜씨 있게 묘사한 개인적 및 사회적 퇴락(頹落)을 늦추어 주는 것이다. (101.3)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소금이 되어야 할지 말지에 관해서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만일 그들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들은 세상을 더 좋은 장소로 만드는 그런 방식으로 세상과 섞일 것이다. (101.4)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데 반하여, 그들은 소금으로서 기능을 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들은 그것을 나누어주지 않음을 통하여 그들의 소금기를 움켜쥐고 있을 수도 있다. 예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짠맛을 잃은 사람으로 묘사한다. 사실, 그는 그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잃어 버렸다고 말한다. 결국, 소금이 짠맛이 없게 되기는 불가능하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13절)이다. (102.1)
 이 마지막 진술에서, 우리는 불신실한 자들에게 내릴 하나님의 형벌에 관한 산상설교의 첫 번째 암시를 보게 된다. 이와 같이 13절은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닥쳐올 수도 있는 재난을 가리키고 있다. A. B. 브루스(A. B. Bruce)는 “사회의 구원자가 될 지위에서 길에 밟힐 물질을 제공하는 처지로 떨어지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추락(墜落)인가!”(Bruce, 102)라고 외친다. (102.2)
 마태복음 5:14-16은 빛을 소금에 대한 평행적 은유로 제시한다. 다시 한번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빛”으로 부르시면서 교회의 전세계적 사명을 부각시키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은,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무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암시하신다. 그들은 빛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다. 그들은 빛이든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든 둘 중의 하나다. 그들은 어느 곳에선가 자신을 “세상의 빛”(요 8:12; 9:5; 마 4:16 참고)이라고 말씀하셨던 그리스도와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착한 행실”(5:16)이 그들의 이웃들에게 비쳐 나오도록 하는 데 있어서 예수와 같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 일을 하지 않고(6:1), 백성들이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께 찬양을 돌릴 수 있도록 그렇게 한다. (103.1)
 짠맛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빛이 되는 것에 관하여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빛의 기능을 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런 선택에 함축된 의미는 짠맛을 잃은 사람들의 경우와 동일하다. 종내에 가서는 그들이 가진 빛을 나누어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심판을 받아 그리스도인 우리 밖에 있게 될 것이다(또한 10:32, 33을 보라). (103.2)
 요약하면,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끼치는 영향력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두 가지 실례를 들으셨다. 그 실례들은 “그것들이 주고 자신들을 소비한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라고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는 제시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온갖 종류의 그리고 모든 종류의 자아 중심적인 종교성에 정반대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의 활동 방식에 있어서 다르다. “소금은 은밀하게 일하고 자신을 소비하지만, 그대는 그것이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그의 환경, 그의 가족, 그의 동료들에게 그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통하여, 기도와 사랑으로 거기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가 발휘하는 조용하면서도 주제넘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뜻한다.... 반면에 빛은 눈으로 불 수 있다. 그것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가시적으로 일한다. 이것은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하는 교회의 임무와, 남녀들을 대중의 삶의 각종 분야들로 파송하는 교회의 의무로 볼 수 있다”(Thielicke, 33). (103.3)
 이 위대한 설교에서 여기까지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 품성과 영향에 관하여 말해 오셨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인의 의의 문제로 화제를 돌리신다. (104.1)
 그리스도인의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