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마태복음 제 II 부 왕의 선포 (4:17-16:20) 3. 왕국의 원칙들 I (4:17-5:48)
 마태복음의 첫 네 장은 예수의 출생부터 “이방의 갈릴리”(4:15)에서의 그의 봉사의 시작까지 다루고 있다. 마태복음 4:17은 첫 복음서에서 중추를 이루고 있는 위대한 구절들 중의 하나이다. “이때로부터 예수께서 비로소”라는 표현은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세 가지 주요 부분으로 나누기 위해 이곳에서, 그리고 16:21에서 사용하는 문학적 방법이다. (87.1)
 첫 네 장은 왕 자신을 다루었다. 그 다음의 열두 장은 왕의 선포를 다룬다. 마태복음 4:17은 왕국에 대한 예수의 공표(公表)이며, 4:18-25은 그리스도의 봉사의 시작과 그의 왕국의 초기 발전을 다룬다. 그러고 나서 5-7장은 인상 깊은 산상설교 가운데서 그 왕국의 원칙들을 제시한다. (87.2)
 그 설교에 대한 마태의 위치 배정에는 한 논리가 있다. 예수께서는 급속도로 확장 일로를 걷고 있는 봉사를 하고 있었고, 백성들은 어떤 일이 관련되어 있는지, 즉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산상설교가 그 설명이다. 예수의 사역의 벽두에 마태는 새 시대의 원칙들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다 놓게 하였다. (87.3)
 예수의 설교는 세계 역사상 위대한 문서들 중의 하나로 입증되어 왔다. 그 설교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품성, 영향, 의, 경건, 목표, 우선 순위, 관계들, 그리고 헌신을 다룬다. (87.4)
 그 설교는, 예수께서 “권세”(7:29) 있게 가르쳤기 때문에 유대의 교사들과 같지 않았다는 말로써 끝나고 있다. 권세(權勢), 즉 권위(權威, authority)의 본질이 마태복음 8-10장의 주제가 될 것이다. (87.5)
 ■ 말씀에 들어감
 산상설교 전체와 그 배경에 대한 느낌을 갖기 위해 4:17-7:29을 한 번 또는 두 번 읽으라. (88.1)
 1. 제시된 자료의 점진적 전개 과정을 주목하라. 또한 5, 6장7장 사이에서 내용상의 중요한 차이점들을 주목하라. 그대의 성경에는 아마도 그 설교의 작은 제목들의 목록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대가 그대의 마태복음 노트에 그 설교 내부의 논리를 포착하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그 설교의 개요를 적을 수 있는지 살펴 보라. (88.2)
 2. 전체적으로 그 설교를 살펴보았으므로, 이제는 4:17-5:1과 첫 주요 부분인 5: 2-12에서 그 배경을 읽도록 하라. 두 번째 읽은 후에는 다음의 사항들을 다루어 보도록 하라. (88.3)
 3. 마태복음 4:23(또한 9:35도 보라)은 예수의 봉사의 세 가지 측면들을 지적한다. 그것들을 열거하라. 성경사전이나 주석을 사용하여 이 각각의 측면이 지니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라. 그것들이 그리스도의 봉사의 전체적인 배경에서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88.4)
 4. 한 장의 빈 종이에 세로로 네 칸을 만들고 팔복(5:10-12에 있는 이중의 축복은 하나로 세라)을 분석해 보라. 첫째 칸에는 각 축복에 대한 인간적 특성들을, 둘째 칸에는 각 특성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셋째 칸에는 축복들을, 그리고 넷째 칸에는 그 축복이 언제 부여되는지 열거하라. (88.5)
 5. 몇 년 전 도널드 크레이빌(Donald Kraybill)은 거꾸로 뒤집힌 왕국(The Upside—Down Kingdom)이라는 제하(題下)에, 5:3-12의 원칙들에 기초한 책을 썼다. 팔복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왕국의 원칙들이 이 세상의 원칙들과 어떻게 다른지 증명하는 짧은 문단을 각각의 축복에 대하여 쓰라. (89.1)
 6. 팔복을 검토할 때, 그대가 그것들을 분류(分類)하거나 그 개요를 말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떠오르는가? 그대는 그 축복들 가운데서 어떤 점진적 전개의 과정을 보는가, 아니면 그것들의 순서가 무작위적인가? 그대의 마태복음 노트에 그대의 생각과 개요를 적어 보라. (89.2)
 ■ 말씀을 탐구함
 왕의 초기 봉사
 아마도 마태복음 4:17-5:2을 읽고 사람들이 첫 번째로 주목하게 되는 사항은 예수의 기별이 침례자 요한의 기별과 같다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4:27; 3:2). 예수의 봉사는 그의 전주자의 봉사의 연속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요한처럼 그는 백성들이 그들의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즉 천국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한다. 예수께서는 그 왕국이 올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회개하라고 촉구하지 않고, 그것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하신 것을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89.3)
 그런데 그것이 가깝다고 한 것은 얼마나 가깝다는 말인가? 결국 예수와 요한은 거의 2,000년 전에 그 말씀을 하였고, 세상은 여전히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89.4)
 이 생각은 우리를 천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만든다.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이라는 말은 그 표현을 32번 정도 사용하는 마태가 강조하고 있는 구(句)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누가와 마가는 “하나님의 나라”(신국[神國], “the kingdom of God”)로 부르기를 더 선호한다. 본질적으로 그 두 용어는 같은 뜻이며, 마태는 그것들을 19:23, 24에서 동일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왕국을 기술할 때 하나님 대신에 하늘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존경 때문에 그것을 발음하는 일을 피했다.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쓰고 있는 마태는 그러한 문화적 민감성을 존중하여, 의도적으로 “천국”을 사용하는 반면에, 누가와 마가는 그들의 이방인 독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89.5)
 이제 그 용어에 관해서는 그만하고 다른 이야기로 옮겨가자. 요한의 설교와 예수의 설교 모두에서 긴박성의 토대는 그 왕국의 임박성인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왕국이 현재인가 미래인가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시대로부터 논쟁의 주제가 되어 왔다. 성경적 답변은 그것이 두 가지 다라는 것처럼 보인다. 왕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그 왕국이 시작되었다는 말에 일리가 있지만, 그것의 완성은 아직도 미래의 일이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 결과로, 예수께서는 “침례자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해 왔으며(11:12),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2:28)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왕국의 미래의 도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6:10). 왕국의 충만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르러올 것이다(24, 25장). (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