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는 자신의 성육신과 생애와 죽음을 통해 여신 새로운 ‘도’를 위해서 침례, 성만찬과 같이 거듭난 모든 제자가 준수해야 할 몇 가지의 예식을 지정하셨다. 어떤 이들은 그것들을 예식으로, 이들은 성례전으로 칭한다. ‘차례, 줄’을 의미하는 라틴어 오르도(ordo)에서 유래한 오디넌스(ordinance, 예식)라는 용어는 주께서 제정하신 일종의 관례를 지칭한다. 반면 신성하거나 신비한 사물에 대해 사용되었던 라틴어 사크라멘툼(sacramentum)에서 유래한 새크러먼트(sacrament, 성례전)는 일종의 의식으로 정의될 수 있는데, 그 안에서 영적인 실체들은 가시적인 기호에 의해 제시된다.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의식 너머의 어떤 관념을 암시하며, 그러한 실체에 동참하는 가시적인 기호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두 용어 모두 신약에서는 생소한 것이지만, 두 의식은 교회가 나타내는 신앙 표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642.1)
 A. 침례
 1. 선례와 기원
 침례 예식은 아마도 유대교 개종 의식 또는 침례 요한이 행했던 의식으로부터 외적인 형식을 빌려왔을 것이다. 양편의 공통점은 그것이 새로운 삶을 수용함으로 옛 생애의 파괴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의 침례는 유대인들에게 전해졌으며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막 1:4)로의 부르심이었다. 주의 침례의 경우에 주된 강조점은 특별한 임무에 대한 헌신과 메시아 사역을 위한 성별에 있었다(참조 마 3:15). (642.2)
 그리스도교 침례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육화, 삶과 죽음이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실행되는 침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에 참여함을 가리킨다. (642.3)
 2. 명령
 침례를 주라는 명령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침례를 주라는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의 일부이다(마 28:19). 주의 명령은 제자들에 의하여 충실하게 이행되었다. 행 2:38, 41; 8:12, 13, 16, 36-38; 9:18; 16:15에는 실제로 침례 장면이 기록되었다. 복음의 선포는 결심을 촉구하고 침례로 완성된다. 신약에는 침례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흔적이 없다. (643.1)
 3. 침례의 의미
 본질적으로 침례는 복음과 그것이 제시하는 구원의 계획과 의미를 반영하는 간단한 의식이다. 그 용어는 밥토(안으로 또는 아래로 잠기다)라는 말의 강형 밥티조에서 비롯되었다 물의 침례가 언급되었을때(마 3:6; 막 1:9; 행 2:41), 그것은 사람을 수면 아래로 담근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반면 밥티조가 씻음(막 7:4, 눅 11:38) 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막 10:38, 39; 눅 12:50)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었기때문에 침례의 형태에 대하여 그 본질적인 의미를 단정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신약에서 몇차례 물에 잠기는 형태의 침례가 기록되었다는 사실(참조 마 3:6; 막 1:5, 9, 10; 요 3:23)로 미뤄볼 때, 신약의 기자들에 의해 부여된 중요성과 신학적인 의미로 말미암아 한층 더 설득력을 얻게 된 견해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643.2)
 바울에게 침례의 의미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구속적인 사건들에 결부되어 있으며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있다. 사도는 이렇게 묻는다 “무룻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 4; 참조 골 2:12). 바울의 해석은 물에 잠기는 형태의 침례에서만 오롯이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643.3)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모든 죄인을 위해 이루신 일은 각 신자가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들의 것으로 승인된다. 침례를 받을 때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롬 6:6, 8; 참조 골 3:3). 그분의 죽음이 그들을 죄에서 해방했다(롬 6:7, 18).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으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11-13절;7:4-6;골 3:1). 물에 잠기는 것은 그리스도께 잠기는 삶의 외적인 표현이다. 물에서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 13:14; 갈 3:27), 그분 안에서 누리는 새로운 인생의 외적인 표현이다. (643.4)
 또한 물에 잠김은 그리스도께 대한 진지한 내적 헌신의 외적 표현이다. 이것은 로마서 6장에서 ‘함께’라는 의미의 전치사 과 결합하여 사용한 몇 개의 단어들에 의하여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함께 묻히며(쉬네타페멘), 그분과 하나의 식물이 된다(쉼퓌토이). 옛 본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쉬네스타우로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쉰 크리스도) 죽었다면, 또한 그와 함께 살아날 것이다(쉬제소멘, 롬 6:4-6, 8). 이런 다양한 주제들로부터 우리는 침례가 옛 생애의 수장(水葬)이자 새로운 삶의 출현 곧 죽음과 부활이라는 근본적인 개념에서 공통적인 강조점을 확인한다. (643.5)
 4. 한 몸으로 연합하는 침례
 신자들은 “그리스도로”(갈 3:27) 침례를 받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몸으로 침례를 받는다(고전 12:13). 만약 침례가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분의 몸인 교회와 동일시 되는 것과 같다. 바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전 12:13). 그리스도교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행 2:38; 10:48) 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행 8:16; 19:5) 행해지는 침례이다. 그것은 독특한 침례 문구를 언급한다기보다는 신학적인 침례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것은 특별히 침례를 받은 자들이 결합의 개념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속해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643.6)
 5. 신자들의 침례
 여기서 확실한 것은 이 침례가 신자들의 침례라는 점이다. 만약 그것이 정말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죄에 대한 죄인의 죽음, 곧 그리스도의 죽음, 장사 그리고 부활을 상징한다면 침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했다는 믿음의 행위이자 공적인 증언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그 사람의 헌신의 증언이다. 이는 사도행전이 그토록 자주 믿음, 회개, 침례를 함께 연결시키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오순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7, 38)고 대답했다. 사마리아인들도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았다(행 8:12).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는 빌립보 성의 간수의 질문에 바울은 단순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0, 31)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와 그의 가족은 침례를 받았다(33절). (644.1)
 각 경우마다 침례는 회개와 회심의 표현이었다. 몇 차례 집과 가족들(참조 행 11:14; 16:15, 31-34; 18:8)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침례의 조건을 만족 시켰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선포된 말씀에 반응하였고 그들의 회개와 믿음을 고백했다 신약에는 유아가 침례를 받았다는 암시가 없다. 유아 세례에 대한 일반적인 논쟁은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이뤄진다 신자들이 물에 잠기는 의식은 사도시대의 관습이다 다른 형태의 소개는 안전하지 않으며 오해의 소지가 있다. (644.2)
 6. 침례와 성령
 신약의 여러 곳에서 성령의 선물은 물의 침례와 뚜렷하게 연결되어 있다(행 2:38; 8:14-17; 9:17, 18; 10:44-48; 19:1-7, 마 3:11; 막 1:8; 눅 3:16; 요 1:33; 3:5). 어떤 경우에는 침례에 앞서 성령이 임했고(행 10:44, 47), 다른 경우에는 침례를 받은 후에 성령이 임했다(행 2:37, 38; 막 1:8). 성령의 임함과 안수를 결부시킨 경우도 두 번 나타난다(행 8:12-17; 19:1-6). 그러나 안수가 성령이 내리는 조건 또는 그 순간에필수적이라는 가르침은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다. 고넬료의 경우에는 베드로가 손에 안수했다는 어떤 외적인 표시 없이도 성령께서 침례 전에 그에게 임하셨다(행 10:44-48). 그럼에도 사도는 하나님의 명백한 은총의 표시를 확인한 뒤에도 고넬료와 그의 가족이 물의 침례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둘은 병행한다. (644.3)
 신약에서 침례 예식은 여러 요소로 분해되지 않는 하나의 온전한 절차이다. 성령의 부여는 그러한 통전적인(whole) 행위 속에서 이뤄진다. 성경에서 성령이 배제된 침례란 없다. 침례는 언제나 물과 성령으로 이루어진다(참조 예식들 I.) (6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