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신약에서 ‘교회’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할 차례이다. 물론 그 단어가 묘사하는 사회의 본질과 범위는 말할 것도 없다. 신약의 기자들, 특별히 바울이 사용한 어떤 이미지들은 ‘교회’라는 개념의 질적인 구성 요소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지면을 할애하여 그것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628.1)
 A. 성경의 용어
 영어 단어 처치(church)와 동일한 뜻의 동족어들(참조 스코틀랜드어 kirk, 네덜란드어 kerk, 독일어 Kirche)은 모두 ‘주께 속한 것’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퀴리아코스에서 유래했다. 그것은 신약의 에클레시아를 번역할 때 쓰는 말인데, 이것은 ‘-에서 나온’ 또는 ‘-로부터’라는 뜻의 에크와, ‘부름’이라는 뜻의 클레시스의 합성어이다. 그리스인들은 국정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시민 단체를 지칭하기 위해 그 말을 사용했다. (628.2)
 이제는 독특한 그리스도교 용어가 되었지만 그 말 속에는 그리스도교가 생기기 전의 배경이 있다. 또한 그 말 자체는 구약과 신약 사이에 존재하는 관련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다〈70인역〉은 ‘회의’, ‘회집’, ‘회중’, ‘불러낸 자들’, ‘모임’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카할을 거의 백 번에 가깝게 에클레시아로 번역했다. 그것은 국방의 의무를 위해 부름을 받은 남자들의 모임(민 22:4; 스 16:40) 또는 악을 행하기 위해 모인 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시 26:5).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뿐 아니라(대하 30:13) 호렙에서 하나님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을 묘사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신 9:10; 10:4; 18:16).신 31:30을보면 이스라엘의 “모임”이 종교적인 목적 때문에 야훼 앞에 나아왔다. 그말은모든종류의 모임에 적용할 수 있었다. 카할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백성’‘목적’이다. 또한 ‘모임’, ‘회집’, ‘회중’을 의미하는 또 다른히브리어 에다는 그리스어 쉬나고게로 번역됐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그리스어 에클레시아는 원래 일반적으로 국정과 관련된 연설을 듣기 위한 목적으로 홍보 관원에 의해 소집된 자유 시민의 회집을 지칭하기 위해 사유었다. 이런 용례는 행 19:32, 39, 41에서 찾아볼수 있다. (629.1)
 따라서 그 말은 그리스인이나 유대인 모두와 관련하여 그리스도교 역사에 편입되었다. 그리스도교 용어 속에서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그분께 부름을 받고 나온 자들의 ‘회집’ 또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들의 에클레시아는 자유를 누리면서도 그들의 자유가 주님께 대한 순종에서 비롯됨을 항상 잊지 않는 자들의 사회였다. 이러한 어조는 여러 경우에, 특히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를 언급하는 경우에 명백하게 나타난다(고전 1:2; 10:32; 갈 1:13; 살전 2:14; 딤전 3:5). (629.2)
 간혹 교회는 “그리스도의”(롬 16:16; 갈 1:22) 또는 “주의”(행 20:28) 교회 또는 교회들이라는 자격을 얻는다. 종종 이러한 자격이 암시적인데 설령 전치사구가 빠져 있더라고 문맥적인 의미는 분명하다.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께 에클레시아를 구성하는 권위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생겼고, 그분이 친히 그 안에 계시며 그것을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629.3)
 B. 지역적인 교회와 세계적인 교회
 신약은 교회를 주로 두 가지 방향에서 언급한다. 대부분의 관련 성경절에서 그것은 특정 지역에 위치한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또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서신을 보냈다 예루살렘 또는 겐그레아 교회가 언급될 때도 같은 의미로 그 말이 사용되었다(행 8:1; 11:22; 롬 16:1). 가정에서 모이는 작은 예배소도 교회로 인정되었다(롬 16:5; 고전 16:19; 골 4:15). (629.4)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그 말은 더 확장된 지역을 가리키거나 세계 교회 즉 전체 교회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엡 1:22; 3:10; 골 1:18 외에도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갈 1:2), “유대의 교회들”(갈 1:22; 참조 살전 2:14), “마게도냐 교회들”(고후 8:1), “아시아의 교회들”(고전 16:19) 등 세계적인 의미에서 교회라는 말을 사용한 예들이 있다. 예수님이 자신의 교회를 세우리라고 선언하셨을 때도 같은 의미였다(마 16:18). (629.5)
 교회의 본질과 범위에 대한 신약의 관점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지역과 세계적인 차원을 모두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 고린도의 교회처럼 지역의 회중이 교회이다(고전 1:2). 지역의 회중은 단순히 전체 교회의 일부나 구성원이 아니라 지역적인 의미에서 교회로 간주된다. 부분 속에 전체가 있다. 가시적인 지역 공동체는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지역적으로 표현된 온전한 교회이다. (629.6)
 C.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만일 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자들의 연합이라면 교회를 하나님의 나라와 동의어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둘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혼동하지 말아야 할 측면도 있다. (630.1)
 1. 하나님의 통치로서의 나라
 공관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늘나라는 예수님이 전하신 가르침의 핵심 주제이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 왕으로서의 권위를 의미하며, 이차적으로 그 지배력이 행사되는 영역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그분의 통치와 동의어이다 그리스도의 나라(참조 마 13:41; 눅 22:30; 골 1:13; 딤후 4:1)이기도 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통치를 말한다. 그것의 목적은 죄인들을 속량하고 그들을 악의 세력에서 구조하는 것이다(고전 15:23-28). 사탄의 나라(마 12:26; 눅 11:18)와 세상나라(계 11:15)는 그분 나라와 맞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거역하다가 정복될 것이다(참조 계 11:15). (630.2)
 하나님의 나라는 마지막 때에(마 25:31-46; 참조 13:36-43) 영광 중에 도래하여 물질계의 질서에 중생을 가져오겠지만(마 19:28) 먼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명을 통해 역사안으로 들어왔다(눅 17:21). 그의 전 사역과 교훈의 특징은 부인하지 못할 이런 사실을 반영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나라는 악의 나라의 영역에 침투해 들어온다. 사탄의 권세는 부서진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 나라는 그분 안에 그리고 그분과 함께 도래했다. 그 나라는 이미 왔고, 올 것이지만 오직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온다. 이 복음 즉 예수님이 친히 전파하고 가르치신 “천국 복음”(마 4:23; 9:35)은 끝이 이르기 전에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마 24:14)되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하도록 호소한다(참조 재림 I. D.) (630.3)
 2. 교회의 역할
 비록 그 둘 사이에 뗄 수 없는 관계가 성립한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그 나라가 아니다. 그 둘은 오늘의 시대에도 동의어가 아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한다. 반면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천국 복음의 부름에 대한 반응으로 생겼기 때문에 천국을 증언한다. 천국은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구속 활동이지만, 교회는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속량함을 입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그 나라 또는 하나님의 통치의 발현이다. 이 나라의 조직 또는 도구로서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천국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630.4)
 D. 신실한 이스라엘
 신약의 증거에 따르면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교회가 어떻게 이스라엘과 연관이 있느냐?’이다. 이 문제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논쟁의 대상이다. (630.5)
 1. 두 개의 주된 접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