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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시종일관 하나님을 위한 백성 곧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고 만민에게 복의 근원이 될 만한 백성을 일으키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다룬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러한 백성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부름을 입었다(창 17:1-8; 참조 창 12:1-3; 15:1-6). 이스라엘이 부름을 입은 목적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완악하여 아담처럼 자만해졌음이 증명되자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 안에서 구속 사업을 완성시킬 남은 무리를 세우기 시작하셨다(사 37:31; 미 2:12; 5:7, 8; 습 3:13). 이스라엘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키려는 신성한 의도는 신약에서 이어지는 연구 주제인데 우리는 그 성취를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볼수 있다. (626.1)
 교회라고 알려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이후 오순절에 등장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조직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의 기초와 특징들은 어느 정도까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으로부터 기원했을까? 교회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신 주님의 사역의 필수적인 영역으로서 그분이 설립한 사회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에 의하여 형성된 공동체로서 부활 이후에 등장한 인간 단체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리스도인 교회라는 개념은 예수님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발전된 개념인가? 이것이 우리가 다뤄야 할 첫째 주제이다. (626.2)
 A. 그리스도의 의도
 복음서를 피상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교회에 관심이 없으셨다고 결론지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은 단지 두 번만 에클레시아(교회)를 언급하셨고 그것도 동일한 복음서에만 나타난다(마 16:18, 19; 18:17). 어떤 이들은 그 언급조차도 초기교회가 나중에 주님의 사역에 반영시킨 것이라고 간주한다. 복음서에서 ‘교회’라는 단어의 실질적인 부재는 주의를 요하는 문제이기는 하나 손꼽을 만한 증거가 없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가시적인 공동체를 수립할 계획이셨다는 사실 자체가 모호해지지는 않는다. 공관복음의 증거를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님이 세우시려고 했던 것이 신학교 이상의 무엇이었음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분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의 단체, 곧 자신을 지도자로 삼은 신앙공동체를 수립하셨다. (626.3)
 1. 제자 모집과 훈련
 초기부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로 제자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셨다. 종종 큰 수의 무리가 모였으나(참조 눅 6:17, 19; 요 6:60), 그들은 비조직적인 추종자들의 집합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누가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은 그들 중에서 사도라 칭하는 열둘을 택하시고(눅 6:12, 13), 그분 곁에 머물게 구별하시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송하기도 하셨다(막 3:14). 이후의 기사들을 보면 열두 제자 그룹은 그리스도께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훈련시키는 조직이 되었다. (627.1)
 예수님은 목적이 분명한 메시아로서 남은 무리라는 공동체를 불러 모으셨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또는 민족적인 메시아사상을 거부하신 탓에 공공연하게 자신을 메시아로 알리기를 꺼리셨지만 일부의 사람에게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확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셨다(마 16:16, 17; 막 14:61, 62; 15:2; 요 4:25, 26). 공동체가 없는 메시아란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제자들, 남은 무리, 메시아 직분이 가리키는 개념들은 메시아에게 있어야 할 필수적인 전유물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 요소이다. (627.2)
 예를 들어 산상설교(마 5-7장)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인상적인 교훈들을 그의 추종자들에게 제시하셨는데 그러한 윤리적인 요구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전제한다. 그분께 속하는 자들은 그들의 주처럼 동일한 희생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람이 되며(마 16:24) 세상을 얻는 것을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새로운 가치관을 품어야 한다(막 8:34-36). (627.3)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자들은 또한 선교를 위해 파송되었다. 그들은 선교 사명을 가진 공동체였다 열둘(막 3:13-15)과 나중에 칠십 인(눅 10:1, 17-20)이 선교 사업에 파송되었던 것은 우연히 생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주께서 의도하신 목적의 일부였다. 그들은 이 점을 고려해서 모집되었다(막 6:7-13; 눅 10:1, 17-20). 그들 역시 동일한 목적을 고려해서 추수장의 주인께 그분의 추수 밭에 더 많은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했다(눅 10:2).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역은 특정 공동체의 형성을 목표로 삼았다. (627.4)
 2. 목자와 양무리
 마 16:1818:17을 제외한 복음서 전체에서 ‘교회’라는 단어의 부재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묘사하기 위해 의도된 몇 가지 다른 용어들의 출현으로 어느 정도 보완된다. 이러한 경향은 ‘양떼’‘참포도나무’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 반영되었다 목자와 양무리 이미지는 구약과 신약 양쪽에서 모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시 23; 80:1눅 12:32;요 10; 21:15; 참조 마 26:31). ‘양떼’‘교회’는 각각 그리스도교 역사와 그 용례에서 전혀 다른것이지만, 둘다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불러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자신에게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을 때(참조 마 4:19; 8:22; 막 2:14; 8:34; 눅 5:27; 18:22; 요 1:43; 21:22), 그분은 자신에게뿐 아니라 선천적인 가족보다 더 친밀한 어떤 관계로 그들을 부르신 것이다. 그러한 새 가족관계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결정된다(막 3:33-35). (627.5)
 예수님은 그분의 봉사 기간 동안 자신 주위로 공동체를 결집시키셨다. 마태복음 16장18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동체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이 과연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는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진술들, 특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했던 첫째 진술은 그 진위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문헌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오히려 그러한 의심은 이 특정 복음서의 구성에 관한 자의적인 추정으로 이루어져있다. 물론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진술들이 나중에 초기 그리스도교 내에서 발전한 조직 또는 구조보다는 다소 느슨한 개념을 의미하지만 그 자체까지 부인할 만한 결정적인 근거는 없다. (628.1)
 B. “이 반석 위에”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라고 고백한 사도 베드로에게 그분은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그리스어로는 ‘음부의 문들’가 이기지 못하리라”(18절)고 천명하셨다. 원어를 보면 ‘나의’라는 글귀가 더 두드러진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는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영구적인 공동체를 수립할 의도를 가지고 계셨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확언은 그분의 임박한 죽음에 비춰 볼 때 훨씬 중요해진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나는 곧 죽지만(참조 21절), 다시 부활하여 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일할 것이며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것과 함께할 것이다.” (628.2)
 또한 교회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8절)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이 언급하신 “반석”의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이들은 아람어 어희(語獻, wordplay)근거로 “베드로”“반석”이 동일하다고 주장하면서 베드로가 그 교회를 세울 반석이고 주께서 사도에게 부여한 그 역할은 항구적이며 그의 후계자들에게 계승된다고 첨언한다. 그러나본문 속에는 그런 종류의 암시가 없다. 훗날 다른 사도들이 베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미뤄볼 때 그들 중 아무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런 의미로 들은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권속의 기초요(고전 3:11) 그 모퉁잇돌이시다(엡 2:20-22; 벧전 2:4-8).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세워질 기초라고 이해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훨씬 더 조화롭다. (628.3)
 정리하자면, 예수님이 자신의 승천 이후에 제자들의 공동체가 출현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셨다는 주장은 확실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그분은 하나의 가시적인 사회의 형성을 가리키는 말씀과 가르침을 남기셨다. (6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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