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눈으로 본 요한계시록 제2부 하늘은 붉다 제5장—사람들과 짐승들
 제5장 사람들과 짐승들 (요한계시록 13:1~14:5)
 바다에서 나온 짐승
 소름끼치게 용과 닮은 짐승 하나가 바다로부터 나타난다. 그 짐승도 용처럼 일곱 머리와 열뿔을 달고 있다(계 13:1). (154.1)
 계시록은 그 짐승이 용 자신으로부터 능력을 받았다고 밝힌다(4절). 그것이 바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이 이미 그의 악한 성격을 암시한다. 성경과 고대 중·근동의 문헌에서 물속의 용은 창조주의 대적,1 즉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고임(goyim)을 상징한다.2 그것의 바다 본성도 그 짐승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신원을 암시해 준다. 그 짐승은 로마를 상징하는데, 중동의 국가들은 바다로부터 나오는 그의 세력을 경험한 바가 있다.

  (154.2)
 기원후 100년경에 나온 위경 에스라 4서의 이상들은 로마를 바다에서 출현하는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다(4 Ezra [2 Esdras] 11:1; 12:11). 그러나 그 새로운 짐승 용 이상을 나타낸다. 그 모양은 다니엘 7장의 네 짐승, 곧 표범, 곰, 사자(계 13:2; 참조 단 7:2, 3)와 특별히 넷째 열 뿔 달린 짐승(계 13:1; 참조 단 7:7)을 연상케 한다. (155.1)
 예언적 이상은 이 넷째 짐승의 특이한 모습, 즉 작은 뿔에 초점을 맞춘다. 작은 뿔처럼, 본문의 짐승도 교만하게 말하는 입을 받는다(계 13:4; 참조 단 7:8). 그리고 작은 뿔처럼, 그 짐승도 찬탈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경배를 받고 싶어 하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라고 찬양을 받는다. 그 표현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하여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참조 출 15:11; 시 35:10)라고 하는 말을 반향하며, 그것은 바로 미가엘(히브리어로 미—카—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라는 뜻이다)이라는 이름의 의미이기도 하다. (155.2)
 게다가 작은 뿔과 같이 그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억압하고 그 후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계 13:3). 이러한 사건의 과정이 본문에는 ABC//A'B'C' 형식의 대구법에 의하여 암시되어 있다. (155.3)
▶ 첫 단락 :
          A.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음(계 13:2)
          B. 그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됨(3절)
          C. 상처가 나아 짐승이 경배를 받음(5절)

▶ 둘째 단락 :
          A.' 짐승이 입과 권세를 받음(5절)
          B.' 마흔 두 달 동안(5절)
          C.' 입을 벌리고, 세상의 경배를 받음(6~8절)
(155.4)
 이러한 대구법은 B와 B'를 연관시킨다. 첫째 단락에서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는데(A),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할 때까지 그러하고(B), 그 후에 온 세상이 그에게 감탄한다(C). 마찬가지로 둘째 단락에서도 짐승은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고(A'), 마흔 두 달 동안 그러하며(B'), 그 후에는 온 세상이 그를 경배한다(C'). 그러므로 짐승은 마흔 두 달이 지났을 때 상처를 받는다. (156.1)
 여기까지 예언은 과거의 계시를 재구성하였을 뿐이다. 다니엘와 마찬가지로 본 구절도 로마의 멸망 후에 등장하는 하나님을 대체하려는 한 세력의 출현을 묘사하고 있다. 다니엘에 따르면 이 세력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 7:25), 즉 마흔 두 달 또는 1,260일(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할 것이었다. 본 구절은 더 나아가서 이 압제의 기간이 지난 후에 무엇인가가 그 짐승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만 그것은 결국 회복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를 경배할 것이라고 설명한다(계 13:8).

  (156.2)
 역사는 이 예언을 확증해 준다. 그 1,260년은 교회가 제도적인 권력으로 확립된 538년에 시작하여 나폴레옹의 칼이 그를 찌른 1798년에 마친다.3 그 후 교회는 신속히 회복하고 교황권은 다시 확립된다. 19세기는 가톨릭교회의 부흥을 보여 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70년)는 교황에 대한 다시 새로워 진 존중과 헌신의 시대를 열었다. 교회는 프랑스 혁명 기간을 빠져나와서 전보다 더욱 강력해지고 점점 더 정치적·도덕적인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예수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교황이 중보할 때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친히 중보하신다고 설명한다. 가톨릭 음악가들은 비오 9세(1846~1878의 교황)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한 찬양의 송가들을 작곡하였다. 어떤 교회의 선전가들은 그 신부(神父)를 “인류의 부(富)—하나님”4이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마침내 1870년에 교회의 지도부는 교황의 무류성(無性)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그때로부터 교황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몰락과 다른 경제·사회적 위기들은 그 도덕적 특권을 강화해 주었다. 1994년에 타임 지(誌)는 교황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커버스 토리를 그에게 바쳤다.5 (156.3)
 자비로운 교황의 신원을 감히 괴물 같은 짐승이라고 밝히는 것은 관용, 개방성과 존경심이 증대해가는 우리 시대에 매우 부적절한 일로 보일 것이다. 교황의 엄청난 대중성, 그의 세계 평화를 위한 운동 그리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한 그의 원조는 어떤 면에서는 예언과 모순이 된다. (157.1)
 그러나 흥미롭게도 예언은 그것까지 예고하고 있다.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7, 8). 처음으로 교황의 영향력이 가톨릭교의 경계를 넘어서 폭발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계를 넘고, “교회의 장녀(長女)”인 프랑스까지 넘어서고 있다. (157.2)
 그러나 예언적 이상이 그런 의미의 가톨릭교회를 반드시 비난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예언의 의도는 비난하기보다는 역사의 굴곡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믿음을 강화하고 소망을 지지하기 위하여 작용하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본 구절의 교훈은 이것이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 (157.3)
 땅에서 올라온 짐승
 세상이 상처가 나은 짐승을 보고 감탄하기 시작한 직후에, 계시록의 선지자는 이번에는 땅으로부터 나오는, 또 다른 짐승을 본다.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이윽고 첫째 짐승의 진영에 가세하고 “용처럼 말”한다(11절). 땅 짐승은 그처럼 바다 짐승과 동맹을 맺고 용이 나누어 준 동일한 권력을 공유한다(4절).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12절). (157.4)
 게다가 그 땅 짐승은 “땅과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12절) 선동하기 위하여 그 권력으로 모든 일을 행한다. 큰 이적들로써 세상을 미혹하고(13, 14절), 그는 첫 짐승을 위하여 선동하고, 그것의 큰 우상을 세운다(14절). 그는 심지어 버튼을 누르면 살아나는 새로운 장난감처럼 이 우상에게 생기를 주고, 소리 효과까지 갖춘다. 그것이 폭력을 일으키는 것만 아니라면 우리는 웃음이라도 지으려고 할 것이다. (158.1)
 본 구절은 우리에게 다니엘 3장의 사건이 생각나게 한다. 느부갓네살은 그의 꿈에서 본 우상(단 2장)의 모양을 본떠서 큰 신상을 세우고 그의 신하들, 즉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 하는 자들”(단 3:4; 참조 3:7)에게 그것에게 경배하라고 명령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형을 내리라고 한다(단 3:6). 이제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한다(계 13:15). (158.2)
 계시록은 그 경배의 표를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는다고 묘사한다(16절). 그것은 신명기에서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신 6:8; 참조 출 13:9)라고 한 모습을 빌려온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히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행동(손)과 생각(이마)으로 율법에 대하여 전적으로 복종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기 위하여 매일의 습관으로 트필린(Tefillin)을 손과 이마에 감는 것을 생각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158.3)
 땅 짐승의 의도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세의 율법에 대한 복종을 기대하시듯이 모든 사람이 바다 짐승의 법에 복종하도록 강제하기를 원한다. 이마와 손에, 다시 말해서 생각과 행동이 포함된 전적인 복종을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땅 짐승은 바다 짐승이 하나님의 지위에 도달하도록 돕는다. 그것이 정한 법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 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대신한다. “짐승의 표”는 그러므로 외견상의 문신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다 짐승의 법이 사람들 의 마음속 깊이 새겨지고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표현된다는 징표의 역할을 한다.

  (1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