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안식일 준수에 대한 예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음
 아마도 안식일의 창조의 기원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논증은 전 부조들의 시기인 창세기 2장 이 후로부터 출애굽기 16장에 이르기까지 안식일을 준수한 분명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로져 콩돈(Roger Congdon)은 안식일 신학(Sabbatic Theology)에 대한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 . 제 육 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고 말씀하시기 전에는 안식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출 16:4, 5). 이 말씀들은 그 사건이 시내산의 십계명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 . 성경에서 안식일에 대한 첫 언급과 모든 역사에서 그 말씀을 첫 번째 사용한 시기는 출애굽기 16:23에 있다.”88)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하나님의세계교회는 창세기는 “인간이 안식일을 지켰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확증한다.89) (48.5)
 준수되지 않았는가?
 안식일의 준수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창세기 2장출애굽기 16장 사이에 없는 것은 안식일 준수의 원칙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꼭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침묵은, 아담과 모세 사이에, 안식일이 비록 알려졌지만 준수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었다. 여호수아와 느헤미야 사이에 거의 일 천년 동안이나 장막절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와 유사한 상황일 것이다(느 8:17). (49.1)
 당연한 일로 간주됨
 더 그럴듯한 설명은, 안식일 준수의 관습이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이유들이 바로 이러한 설명을 지지하고 있다. (49.2)
 첫째, 우리는 신명기와 열왕기하 사이에 안식일에 관해 침묵하고 있는 예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침묵을 안식일의 준수가 없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첫 번째 부수적인 언급이 열왕기하 4:23에 나타나며, 그 구절은 안식일에 선지자를 방문하는 습관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49.3)
 둘째, 창세기는 출애굽기와 같이 법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기원에 대한 간략한 기록들을 포함하고 있다. 어떤 다른 명령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상, 안식일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49.4)
 셋째, 창세기의 전체와 출애굽기의 처음 몇 장에 걸쳐 안식일의 존재를 함축하고 있을 법한 일곱째 날의 사용에 대한 상황적인 증거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칠일의 기간이 홍수의 얘기 가운데는 네 번이나 언급된다(창 7:4, 10; 8:10, 12). (49.5)
 분명한 것은, “주일”(week) 역시 야곱의 혼례식의 기간(창 29:27)과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 기간(창 50:10)을 묘사하는 기술적인 방법에 사용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기간이 욥의 친구들이 그 부조에게 애도를 표한 것에서 관찰된다(욥 2:13). 아마도 언급된 모든 예전적인 것들은 안식일의 시작과 함께 끝났을 것이다. (49.6)
 마지막으로, 안식일은 출애굽기 16장20장에서 이미 존재했던 제도라는 것이 제시되어 있다. 만나를 여섯째 날에는 갑절을 모으라는 지침은 안식일의 중요성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제 육일에는 그들이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출 16:5). 그러나 여섯째 날에 갑절을 거두는 것에 대한 어떤 설명의 생략이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49.7)
 이와 유사하게, 출애굽기 20장에는 안식일이 이미 익숙히 알고 있었던 제도로 전제하고 있다. 계명은 “안식일을 알아라”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안식일을 기억하여”(출 20:8)라고 말한 것은 이미 그 날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함축하는 말이다. 더 나아가서, 그 계명은, 안식일을 창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제시하므로(출 20:11), 그 축제가 출애굽 후의 것이라는 것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49.8)
 부조들이 어떻게 안식일을 지켰는지를 상상하는 것은 유용 가능한 정보에 의존하기 보다는 상상에 더 많이 의존하므로 결실이 별로 없다. 그러나 안식일 준수의 본질이 그 예식을 성취시키기 위해 가는 어떤 장소(a place to go)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우리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한 시간(time to be)의 설정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부조들이 안식일에 그들의 권속들과 함께 거룩한 시간으로 보냈고, 그리고 창세기에 기술된 것같이 기도(창 12:8; 26:25), 희생제사(창 12:8; 13:18; 26:25; 33:20), 그리고 가르침(창 18:19)과 같은 것으로 묘사된 어떤 예배의 행위에 가담했다는 것은 매우 가능한 일들이다. (49.9)
 (3) 창세기에 “안식”이란 단어의 언급이 없음
 창세기 2:2, 3“안식”(Sabbath)이란 용어가 없는 것은 안식일이란 제도가 창조 때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후인 모세의 때에 시작된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어떤 사람들은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로벌트 모레이(Robert Morey)는 강하게 진술하기를 “그러나 안식일 창조 법이 창세기 2:1-3에 발견되지 않고 있지 않는가? ‘안식’이라는 단어가 그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 않는가?”90)라고 한다. (50.1)
 하롤드 드레슬러(Harold Dressler)도 이와 유사한 진술을 하기를 창세기 2장‘안식’이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 장은 ‘일곱째 날’에 대해서만 말한다. 독자가 ‘일곱째 날’‘안식’을 동일하게 간주하지 않는 한 여기서는 ‘안식’에 대한 언급이 없다.”91) 비슷한 맥락에서 데일 라쯔라프는 “창세기의 이야기에는 ‘안식’이라는 단어가 없으며, 쉬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사실, 사람은 이 일곱째 날의 창조의 쉼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92)고 기록한다. (50.2)
 언어의 형태
 실제로 “안식”이라는 명칭이 그 구절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동의어 형태인 솨바트(shabat, 중지하다, 멈추다, 쉬다)라는 말이 사용되며, 후자에는 우고 카수토(Ugo Cassuto)가 주목한 것처럼 ‘안식일’이라는 말을 암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93) (50.3)
 더 나아가, 카수토가 잘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안식이라는 말보다 일곱째 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이방 국가들의 점성학적인 “안식들”(sabbaths)과는 무관하며 또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와 진 그 날의 영구적인 질서를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잘 반영할 수도 있다.94) (50.4)
 영구적인 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