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다룬 안식일의 창조의 기원 대 모세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을 반대하는 자들, 특별히 이 전에 안식일을 준수했던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주요 반대들을 점검하도록 여지를 마련해 주었다. 그들의 반대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을 구분하는 급진적인 루터 교도들이었음을 반영한다.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이러한 구분의 기초에는, 안식일을 인간을 위한 창조의 법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폐하신 유대인들을 위해 주어진 모세의 제도로 본다. 결론적으로, 소위 말하는 “새 언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특별한 날을 준수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46.1)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을 부정하는데 사용하는 네 가지의 주요 반대들은 다음과 같다.

   1)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창세기에는 없다.

   2) 안식일을 지킨 사례가 창세기에는 없다.

   3) 창세기에는 “안식”(Sabbath)이라는 단어의 언급이 없다.

   4)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공식이 일곱째 날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46.2)
 (1)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창세기에는 없다.
 명령이 없음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을 부정하는데 사용되는 첫 번째 논증은 창세기 2:2, 3에 일곱째 날을 준수하라는 분명한 명령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세계교회는 이러한 논쟁을 “창세기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라는 여섯 가지의 수사학적인 진술들을 동원하여 이 논증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한다. (46.3)
   1) 창세기는 인간이 쉬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2) 창세기는 인간이 하나님의 본을 따르도록 요청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3) 창세기는 인간이 쉬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4)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를 안식일에 가르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5)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창조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6) 창세기는 인간이 안식일을 지켰다고 말하지 않는다.79) (46.4)
 데일 라쯔라프는 같은 논증을 사용하여, 말하기를, “창세기의 기사에는 인류가 쉬도록 하는 명령이 없다”80)고 한다. “사람이 일곱째 날 창조의 쉼에서 사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81) 그에게는, 이런 사실이 안식일은 인간이 실천해야 할 창조의 법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해 모세에 의해서 소개된 일시적인 제도라는 것을 가리킨다. (46.5)
 “명하지 않으신” 이유들
 창세기 2:2, 3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분명한 명령이 빠진 여러 가능한 이유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창세기가 명령(commands)의 책이 아니라(not) 기원(origins)의 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비록 십계명 중의 어떤 계명도 창세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그것들의 원칙들을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창 26:5)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록 창세기에서 그것들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명과 법을 알았다는 증거이다. 그 이유는 창세기는 기원의 책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어떻게 이 유성의 창조로부터 출애굽기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창조로 이끌어 왔는지를 말해 준다. (47.1)
 창세기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빠진 또 다른 가능한 이유는 창조의 이야기에서 일곱째 날의 우주적인(cosmological) 기능이다. 일곱째 날에 쉬신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시려는 의도가 있다. 그것은 “매우 좋았더라”와 두 번이나 “그가 마치시고,” “그가 안식하셨다”(창 2:2, 3)라는 말로 극화시켜서 말씀하셨다. 마무리 손질이 그분의 완전하신 창조를 개선하지 말아야 했다. (47.2)
 고대 근동의 창조 설화에는, 신의 쉼(전문적인 용어로는 오티오시타스, otiositas)은 보통 편안한 세상 질서를 세우신 것을 함축하고 있으며, 또 일반적으로 인간의 창조로 말미암아 시끄러움과 평화를 깨는 신들을 제거하므로 성취된다.82) 예를 들어, 바벨론의 창조설화인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에서 말둑 신(god Marduk)은 말하기를 “진실로 내가 야만인을 창조할 것이다. 그는 신들의 봉사를 책임질 것이며, 그들은 쉬게 될 것이다!”83)고 한다. 그러나, 창조의 안식일에서는 하나님의 쉼이 경쟁자를 처 복종시키거나 멸망시키므로 확보되거나, 또는 인류의 노동을 착취하므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완전한 창조를 완성하시므로 확보된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은, 당신의 창조 사업을 끝마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사업이 “일이 다하여 . . . 마쳤기”(창 2:2, 3) 때문이다. 닐즈-에릭 엔드리어슨(Niels-Erik Andreasen)이 진술한 바에 의하면, “그것은 창조를 끝내(일의 중단)는 쉼이 아니라, 쉼과 안식일을 수반하여 종결짓는 창조이다.”84) (47.3)
 하나님의 쉼의 기능
 어떤 책임성 있는 예술가는 이상에 맞는 물건을 만들기까지 일하고 난 후에야 그 일을 멈춘다. 무한히 높은 생각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로 이 세상을 창조하기를 마치신 후에, 일곱째 날에 그 창조하시던 일을 중단하셨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두 번이나 “쉬셨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인 사바트(sabat)가 가지고 있는 바로 그 뜻이다. 그것의 더 정확한 뜻은 “일로부터 정지하다, 그만두다, 중단하다”이다. (47.4)
 신체적인 피곤으로부터 쉰다는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히브리서는 다른 단어인 누아(nuah)를 사용하는데, 그것 역시 영어로는 “쉰다”(to rest)라고 번역한다. 사실, 후자는 출애굽기 20:11에 나타나는바, 거기에는 하나님의 창조의 일로부터의 쉼의 형태가 엿새 동안에 일하고 일곱 째 날에 쉬라는 명령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주어져 있다. 그러나,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의 쉼의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사바트(sabat)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인류학적인 기능보다는 오히려 우주론적인 기능을 성취한다. 그것은 왜 사람들이 쉬어야 하는가 보다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에 대한 느낌: 그분께서 창조를 완성하셔서 완전한 것으로 간주하셨고, 또 그것을 인정하시고, 멈추셨다는 것을 설명한다. (47.5)
 하나님의 쉼의 이런 기능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이해되었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주목하기를 “우리는 창세기 2:2에서 일곱째 날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쉬시므로’ 당신의 일을 완성하셨다. 그분께서는 자신과 자신의 창조에 한계를 설정하셨다. 그분께서는 이 특별한 창조, 곧 창조주로서 이 특별한 일에 있어서 영화롭게 하시므로 만족해 하셨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의 창조를 진척시키시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가 매우 좋게 창조하셨다는 것을 발견하셨다(창 1:31).”85) “사람의 창조를 마치셨을 때, 인간의 출현에서 그 절정과 의미를 발견하시고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만드신 모든 일로부터 일곱째 날에 쉬셨다. 그분께서 모든 것이 매우 좋으므로 따라서 연장하거나 보충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아신 것은 바로 이 날이었다”86)고 했다. (47.6)
 디이트리히 본훼퍼(Dietrich Bonhoeffer)도 이와 유사하게 “성경에서 ‘쉼’(rest)은 ‘쉬고있는 것’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일이 마쳐진 후의 쉼을 의미하며, 그것은 완성을 의미하고, 그것은 세상이 쉬는 완전과 평화를 의미한다.”87)고 설명한다. 우리는 그분의 창조를 그분의 중지, 곧 쉼(cessation-rest)과 비교하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그 모든 것들을 “매우 좋았더라”(창 1:31)고 간주하셨으므로, 그분께서 창조하신 것에 마지막 손질을 추가하실 필요가 없었다는 복된 소식을 선포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일하시는 것(doing)으로부터의 하나님의 마치심은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사물들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창조물과 함께 계시기(being with)를 원하신 것을 표현하고 있다. (48.1)
 하나의 명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본보기임
 안식일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보다는 하나님의 본보기로서 창조의 이야기 안에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역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죄 없는 세상, 곧 이간시키는 하나의 부과물로서가 아니라 자비로우신 창조주께 대한 자유로운 반응으로서 죄 없는 세상에 안식일을 두시기로 의도하셨다는 것을 반영한다. 인간들은 안식일에 그들의 창조주를 위해서 그들 자신을 유용하게 드리기로 자유롭게 선택하므로,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갱신과 풍요로움을 경험해야 했다. 이런 필요들이 없어지지 않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 심화된 고로, 안식일 법의 도덕적, 우주적, 그리고 영원한 기능이 후에 계명의 형태로 반복되었다. (48.2)
 무엇이 하나님의 명령을 도덕적이고 우주적인 법으로 만드는가? 우리는 법이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하는데도 도덕적인 법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본보기로 말미암아 제정된 원칙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발표된 원칙보다 덜 구속적인가? 행동이 말보다 더 크게 소리지르지 않는가? (48.3)
 안식일이 시내산에서 기원되었다는 논증은 모세로 하여금 진리를 곡해시키는 죄를 짓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적어도 엄청난 오해의 희생물로 만든다. 그는 안식일을 안식일 명령에서 창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실제로 그것은 새로운 창조였다. 만일 사실이라면, 그러한 책임은 모세의 결백성이나, 또는 성경에 기록된 그 밖의 것에 대한 신뢰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 된다. (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