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이해는 그의 신성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큰 비중으로 항상 도전받아 왔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리스도교 시대의 처음 세기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논쟁점이 되어 왔으며 그리스도론이 오늘날에는 대체로 그리스도의 인성에만 국한되는 지점에 이르렀다. 심각한 질문은 예수님의 육체가 타락하기 전의 아담의 육체였는가 타락 후의 육체였는가,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육체가 죄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이 었는가 아니면 죄와 사망의 세력에 종속되는 것이었는가? 이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면 구원의 계획에 대한 모든 면에 그릇된 모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께서 인류를 죄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하려고 인간에게 내려 주시는 은혜의 구속하시는 현실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55.1)
 엘렌 G. 화잇은 이 기본적 진리를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의 승리와 순종은 바로 진정한 인간의 승리와 순종이다. 우리는 주님의 인성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견해들 때문에 많은 오류를 만든다. 우리가 그분의 인성에 사단과의 투쟁에서 사람이 소유할 수 없는 능력을 부여할 때에, 우리는 그분의 인성의 완전성을 파괴하는 것이다.”1 (55.2)
 성육신은 하나의 신비
 부인할 수 없이,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은 하나의 신비이다. 사도 바울은 선언하기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함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 셨음이라”(딤전 3:16)고 하였다. (56.1)
 이 신비는 다만 성육신에 관한 것뿐 아니라, 구원의 계획의 모든 국면에 관련이 되어 있다. 엘렌 G, 화잇이 다음과 같이 단언하는 것은 기이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속죄 희생과 중보 사업에 대한 연구는 시대가 다할 때까지 부지런히 연구하는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을 것이다.”2 성육신에 관한 비슷한 기록에서 그녀는,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성육신 하신 것을 명상할 때에 우리는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신비 앞에 당혹하게 된다. 우리가 그 신비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 수록 그것은 더욱 놀라웁게 보인다”3고 하였다. (56.2)
 측량할 수 없는 신비라고 하는 그 사실 자체가 그것이 금지된 주제라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기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울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성도들 앞에 나타났고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 27)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는 또 말하기를 경건의 비밀은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딤전 3:16)라고 하였다. 이것은 인간을 구원할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나눠주기를 원하시는 진리의 점 진적인 계시를 의미한다. (56.3)
 비록 그녀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참으로 신비라고 주장하지만, 엘렌 G. 화잇은 우리가 그것을 깊이 연구하도록 권한다. 왜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가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제공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56.4)
 “그것은 우리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붙들어 매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사람들을 붙들어 매는 황금사슬이다. 이것이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한 마디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우리가 이 문제를 연구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하신 말씀을 주의깊이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참회하는 정신으로 배우는 자의 겸비한 태도를 가지고 이 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말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에 대한 연구는 숨은 진리를 깊이 탐구하는 연구자에게 보상을 주는 풍성한 결실의 밭이다.”4 (57.1)
 여기서 우리가 추구하는 데 어려운 문제점은 성육신의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어떻게 가능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훨씬 초월하는 신비이다. 그리스도론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는 왜 성육신이 필요했으며 어떤 종류의 육신으로 오셨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요 이점에 대하여 신약성경은 명백한 정보를 제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57.2)
 그리스도론의 성서적 기초
 선구자들이 세미—아리안 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전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신뢰한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론의 문호를 개척했으며 20세기 최고의 해석자들이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연구를 공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57.3)
 신약과 별도로, 초기 재림교인들이 죄 있는 육신(Sinful flash)을 예수님에게 적용한 배후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가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재림교회의 저술가들이 예수님이 죄의 권세를 정복한 그 육신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사용했던 성서적인 참고 문헌들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57.4)
 가장 빈번하게 인용된 명백한 본문은 로마서 8장 3절이다. 다른 어떤 구절도 성육신의 이유와 어떤 종류의 육신으로 성육신이 이루어졌느냐에 관해 더 훌륭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셨다(condemned sin in the flesh) (condemn는 폐기처분하다, 멸하다는 의미가 있음:역자 주). (58.1)
 최초의 재림교회 신학자들이 킹 제임스 성경(KJV)의 표현 구절인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를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해석한 것과 성육신 때의 예수님의 육신에 대한 바울의 정의와 동일하다. 그들은 모양(Likeness—동일성, 유사성)이라는 단어를 빌립보서 2장 7절의 말씀과 정확하게 같은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빌립보서 2장 7절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고 사람과 같이 되심으로 말하자면, 바울이 로마서 8장 3절에서 말한 대로 예수께서 단순히 인간의 모양만 취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죄 있는 육체(Sarkos hamartias)와 동일한 본성을 취한 것이다. (58.2)
 이것이 예수님이 죄인이었다거나 조금이라도 사람의 죄에 참여했다는 의미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58.3)
 ‘하나님이 육신에 죄를 정하’셨다는 표현은 예수가 죄 있는 육신 가운데서 죄 없는 생애를 사심으로 실제로 육신 속에 있는 죄를 멸하셨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롬 8:3, KJV). 따라서 “그는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히 5:9)셨다. 이와 같이 그 시초부터 선구자들의 그리스도론은 그들의 구원론과 직결이 되었는데, 후자는 전자가 작용할 수 있는 기능이 되는 것이다(역자주:구원론은 그리스도론의 기능이 된다). (58.4)
 자주 인용되는 다른 본문들 중에 우리는 또 로마서 1장 3절(KJV)을 찾는데 그 절은 예수님이 그분의 조상들을 통해서 물려받은 본성을 설명한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히브리서 2장 16절도 적용되었다.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58.5)
 한 저술가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가장 불명예스러운 점을 언급하여 말하기를 “다윗의 조상과 후손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리스도가 출생한 그 계열이 인성의 모든 취약성을 그분 안에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59.1)
 에베소서에서 히브리서까지 소개된 여러 다른 구절들은 예수의 인성이 인간 형제와 동일했음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히 2:13)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14절),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17절), 또 다른 구절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59.2)
 바울이 갈라디아서 4장 4, 5절에서 강조한 것은 인간구원의 조건으로 타락한 인성에 실제적으로 완전히 참여하셨음을 나타내는 데 자주 인용되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장 21절“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