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아시나이우스가 독살된 후에 아닐라이우스는 파르티아족의 지도자인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가 다음날인 안식일에 자기를 공격하기 위하여 진영을 구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금요일 밤에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올라가 다음날 즉 안식일 새벽 3시에 파르티안족을 공격하여 많은 군사들을 살해하고 미트리아테스를 사로잡고 그 나머지들을 패주시켰다.33 (62.2)
 이처럼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정당방위를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적들을 패배시키기 위해 선제 공격도 감행하여 자신들의 살길을 확보하였다. 그들에게는 그 당장에는 그들이 높이 쳐들려고 하는 율법 그 자체를 범하는 것이 된다 할지라도 자신들의 종교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싸우다가 죽는 것이 “그 율법을 더 훌륭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62.3)
 안식일에 이루어지는 종교적 활동
 안식일에 이행된 종교적 활동들에 대해서는 언급된 것이 별로 없다. 요셉푸스에 의하면 “제사장 중 한 사람이 안식일이 다가오는 오후와 안식일이 끝나는 다음날 저녁에 성전의 서남쪽 모퉁이에 있는 탑 근처에 서서 백성들에게 일을 중지할 시간과 일을 다시 시작할 시간을 나팔 소리로 알렸다.”34 (62.4)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날마다 일을 했다. 그러나 안식일과 월삭과 절기들에는 제사장들이 대제사장을 수행하였다. 필로는 안식일의 제물, 떡상의 떡과 유향의 배치, 떡 덩어리 위에 소금을 넣는 일 등에 관하여 논의를 남겼으나 당시의 관행에 기초하지 않고 구약성경에 기초하여 논의했다.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마다 “율법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대한 철저하고 정확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회당에 모였다.35 필로는 회당에서 진행된 일에 대해서 다소 자세하게 설명했다. “진실로 그들은 언제나 함께 모여 앉는다. 그들의 대부분은 낭독하는 말씀에 대한 찬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추가하는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침묵을 지킨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석한 일부 제사장들이나 장로들의 한 사람이 그들에게 거룩한 율법의 말씀을 낭독하고 오후 늦게까지 낭독한 말씀을 조목조목 해석한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거룩한 율법들에 대한 숙달된 지식과 상당히 진전된 경건을 갖춘 후 오후 늦게 집으로 흩어진다.”36 (62.5)
 필로는 자주 이러한 활동을 “철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부조들의 철학에 종사하고 자연의 지식을 획득하고 자연의 진리를 탐구하는 일에 시간을 바치는” 일이라고 묘사하였다. (63.1)
 그는 두 항목으로 그들이 공부하는 진리와 윤리들을 요약하였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경건과 거룩함을 나타내어야 할 의무이고 다른 하나는 공의와 겸손으로 사람에게 나타내어야 할 의무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회당을 일컬어 “선한 인식과 절제와 용기와 공의와 그 밖에 분별력과 경건과 거룩함의 학교”라 하였다.37 안식일은 “성품을 개발하고 양심의 요구에 순복하기 위하여 철학을 공부하는 하나의 목적”에 바쳐져야 했다.38 (63.2)
 필로에 의하면 데라퓨타이(Therapeutae, 치료사들)도 6일 동안은 혼자 있다가 안식일에는 함께 모였다. 그들의 봉사는 위에서 필로가 설명한 정규적인 회당예배와 매우 유사했다. “그러나 제칠일에는 그들이 총회를 위해 함께 모여 나이 순서로 적당한 태도로 자리에 앉는다. 손은 옷안에 넣는데 오른손은 가슴과 턱 사이에 넣고 왼손은 옆구리로 내렸다. 그 다음에 그 중에 나이가 많고 그들의 교리에 대하여 충분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조용하고 단정한 자세와 목소리로 현명하고 논리 정연한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는 당대의 웅변가나 소피스트들처럼 수사적으로 자신의 가르침을 표현하지 않고 자신들의 교리와 사상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것들의 정확한 의미를 세심하게 표현하려고 하였다. 단지 청중의 귀에만 남는 말이 아니라 청중의 귀를 거쳐 그 영혼에게까지 침투하여 그곳에 확실히 남아 있을 것을 가르쳤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서 들었으며 단지 그들의 표정이나 머리를 끄덕임으로서 그들이 찬성을 표시했다.”39 (63.3)
 필로에 따르면 회당에는 두개의 울타리가 있었고 낮은 벽에 의해 남녀의 공간이 분리되었다. 그러나 회당은 안식일에 율법을 가르치는 목적 이외의 목적으로도 사용된 것 같다. 요셉푸스는 티베리아스의 한 회당에 안식일에 회집되었던 한 모임을 언급하였다. “그 집회에서 정치적인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제 6시가 이르지 않았다면 쉽사리 소동이 일어날 수 있었다” 고 하였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제 6시에 점심을 들고 집회를 파하는 것이 우리들의 관습이다” 라고 하였다.40 (63.4)
 신구약 중간기의 안식일의 신학
 우리는 그 동안 신구약 중간기의 안식일에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할 수 없었으며 그 날에 어떤 종교적 활동이 이행되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나 이제는 그 날이 제칠일이고 안식일이며 영적인 날이 되는 다른 여러 가지 특성과 관련된 안식일의 깊은 사상에 대하여 주목해 볼 차례이다. 안식일을 이러한 관점에서 깊이 사색한 사람은 단연 필로이다. 자연히 그의 일부 논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다소 공상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 시대를 감안한다면. 특히 그 당시 그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던 철학적 사조들을 생각한다면 그의 주장하는 바를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63.5)
 필로는 숫자 7의 의미와 관련하여 안식일의 신학을 발전시켰으며41 이 세상의 생일로서의 안식일의 보편적 중요성을 강조하려 하였으며42 안식의 철학적 의미를 논의하고43 제7일 안식일이 뜻하는 평등과 자유를 강조하려 하였다.44 (64.1)
 그밖의 요소들
 안식일의 계수: 쿰란의 역법(Calendar)에 따르면 새해와 새 분기는 수요일에 시작한다. 1년은 364일이고 한 달은 30일이며 3개월마다 하루를 추가하였다. 그러면 1기는 정확히 13주간이 된다. 이렇게 하면 해마다 절기는 같은 날에 돌아오며 안식일과 겹치는 일이 없다. 일년 전체를 통해 안식일들이 계수된 증거도 있다. 안식일들을 계수하는 관습은 쿰란 종파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에게도 공통하는 관습이 었다.45 (64.2)
 창조전에도 안식일이 준수되었다: 필로는 만나의 기적과 관련하여 “안식일은 세상이 창조된 이후부터만 존중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과 지각적인 존재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존중받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Moses 2:48). (64.3)
 사마리아인들도 다른 이유로 안식일을 지켰다: 요셉푸스에 의하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은 가급적이면 유대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려 하였을 뿐만아니라 그들의 관습과 사마리아인들의 관습의 관련도 끊으려 하였다. 그들도 안식일을 지켰지만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준수하는 이유들과는 다른 별도의 이유들을 마련했다. “우리의 조상들은 그들의 땅에 가뭄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리고 고대의 어떤 미신을 좇아 유대인들이 안식일이라고 부르는 날을 습관적으로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다.46 (64.4)
 안식일의 어원:아피온(Apion)의 설명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한지 6일째 되는 날에 사타구니에 종창을 앓게 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이 유대에 도착한 후에 제칠일에 쉬었으며 그날을 삽바톤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삽바톤이란 명칭에는 사타구니의 질병을 나타내는 이집트의 말인 “삽보”(Sabbo)가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대하여 요셉푸스는 “이는 대단히 경솔하고 엄청난 무지의 소치”라고 비난하였다. 삽보와 삽바톤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삽바톤은 히브리어로 일을 중지하는 것을 뜻하며 이집트어 삽보는 사타구니의 질병이라는 것이다.47 (64.5)
 제8일: 제 2 에녹서 33:1, 2는 창조의 날들을 이 세계의 역사에 관련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세상 역사는 7000년을 일 주간으로 삼는 일 주간의 역사라 하였다. 그러나 예배의 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제8일”이란 단어를 언급하였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 바르나바스(Barnabas)는 이 “제8일”에 근거하여 일요일 사상을 발전시켰다(Barnabas 15:9). 바르나바스는 이 앞서 제 2 에녹서의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창조의 개요를 설명했다(Barnabas 15:4, 5). (64.6)
 제 2 에녹서의 저자는 “셀 수도 없으며 끝도 없고 해도 달도 주간도 날도 시간도 없는 시간”이 시작하는 날로 제8일을 생각했다(2 Enoch 33:1). 그는 제 7천년의 기간을 천년기로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르나바스는 그렇게 했다. 따라서 1일을 1천년으로 간주하는 세계 주간의 방식에 따르면 제칠일은 제칠천년의 천년기를 모형으로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제 8천년째 되는 새 시대를 대표하는 날이 된다. 이브의 임종에서 천사장이 아담의 아들 셋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주장은 대단히 흥미롭다. “하나님의 사람아 죽은 자를 위하여 6일이 넘도록 애곡하지 말라. 제칠일은 부활의 표징이며 새로운 시대의 안식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에서부터 쉬셨다.”48 (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