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가장 중대한 이슈들 제2장 조사심판이 있을 것인가?
 여러 해 전 나는 우연히 박사학위를 가진 한 과학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교인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인 것을 알고 있었으며, 함께 어울리는 동안 한번은 자신이 우리 교회의 교리들 중에서 가장 많이 반대하는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말해 주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나는 말했다. 나는 그가 안식일, 죽은 사람의 상태, 또는 지옥 중에 하나를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조사심판”이라고 말했다. (24.1)
 “왜 그 가르침에 그렇게 반감을 가지십니까?”라고 나는 물었다. (24.2)
 “왜냐하면,” 그는 말했다. “그런 교리를 믿으면, 아무도 자신의 구원을 확신 할수 없기 때문이지요.” (24.3)
 그때 이후로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재림교회가 조사심판에 관한 우리의 가르침에 대하여 비판을 받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와 동일한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로부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일부 재림교인들까지도 조사심판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였다. 결국 조사심판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만한지 결정하키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일생을 검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24.4)
 클리퍼드 골드스틴( Clifford Goldstein)의 아내는 평생 재림교인으로 살아왔으며, 그런 불안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클리퍼드는 그녀가 들어온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24.5)
나의 아내는 “바로 지금 하늘에서는 심판이 진행 중이며, 언제든지 우리 차례가 올 수 있다고 배웠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때가 왔을 때 우리가 절대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우리는 잃어버려진다. 우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위한 유예의 기간이 끝나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데도 완전해지기 위해서 애쓰고 있을지 모른다.”1)
(24.6)
 클리퍼드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 가르침은 ‘복음’도 아니고, 조사심판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림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으니, 그런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2) (25.1)
 실제로 일부 재림교회 설교자들과 전도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결한 삶을 살도록 촉구하기 위하여 조사심판을 이용해왔다 “심판중에 언제 여러분의 이름이 올라올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라며 그들은 불길한 경고를 주었다 “그러므로 당신이 바르게 살고 있는지 매 순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심판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성경적인 진리와 모순되므로 쉽게 일축해버릴 수 있다. 그 견해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서는 데 끊임없이 불안한 상태에 있게 만든다. (25.2)
 우리의 조사심판 교리에 대한 이러한 개념이 정확한 것이라면 나의 그리스도의 교회 친구의 말이 옳다. 하나님이 조사심판에서 그분의 성도들의 일생의 기록을 검사할 때까지 그들의 구원을 확정할 수 없다면, 우리가 구원받기에 합당한지 하나님이 마음을 정하실 때까지는 그분이 우리를 완전히 용납하셨는지 우리 중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물론 우리가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는 그분도 그렇게 하실 수 없다. (25.3)
 이것이 우리 교회 밖은 물론 우리 편 내부에서도 조사심판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다. 조사심판에 관한 이러한 불확실성을 경험한 많은 재림교인 비평가들은 그 교리 전체를 영적으로 대단히 파괴적인 이설(異說)로 간주하고 내버렸다. 그리고 그 교리는 그들이 이해하는대로 그랬다! (25.4)
 심판에 대한 이러한 오해 때문에 일부 재림교인들은 재림 전(pre-Advent)심판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조사(investigative)라는 말이 유감스럽게도 일부 사람들의 생각 속에 만들어 놓은 신학적인 장애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조사심판이라는 개념에 원래부터 무슨 잘못된 것이 있는가? (26.1)
 조사심판이 정말 있을 것인가?
 나는 성경에 묘사된 마지막 심판과 관련하여 조사라는 용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자유세계에서 모든 재판은 본질적으로 조사의 성격을 가진다 검찰은 어떤 혐의를 기소한다. 그러면 변호인은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피고의 결백을 증명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더 관대한 선고를 받도록 한다 배심원들은 모든 증거를 들은 다음 물러나서 심의를 한다.(그러나 하나님의 결정에 대하여 누구에게 거부권이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선고를 내리기 위한 모든 과정은 기소 내용과 그 반론에 대한 조사[즉, 심리(審理)]로 이루어진다. 형사든 민사든 간에 모든 재판 과정은 조사 심판이다. (26.2)
 하나님께서 언젠가 조사심판을 시행하시리라는 개념은 매우 성경적이다. 전도서 12:14에 솔로몬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사람이 ∙∙∙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 37)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우리의 행위, 언사와 심지어 생각(비밀스러운 일들)까지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 때에 검사를 받을 것이다. 그것이 조사심판이다. (26.3)
 다니엘 7:9, 10 또한 조사심판을 시사한다. (27.1)
“내가 보니 왕좌가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
(27.2)
 이 구절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자신의 보좌에 최고의 재판관으로 앉아계신 분이다. 보좌를 둘러 선 천천만만의 존재는 천사들이 거의 분명하다(참조 계 5:11). 다니엘은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라는 말로 끝맺는다. 이것은 분명 심판의 장면이다. (27.3)
 이 심판 장면에 “책들”이 펼쳐져 았음을 주목하라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도서관의 서가에 꽂힌 “책들”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의 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모양의 책들이 없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두루마리와 찰흙 판에 글을 썼다. 오늘날 우리는 일어난 사건들, 금융 장부, 법적 계약과 기타 정보들을 책이나 컴퓨터 등에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들이 없으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정보들을 기억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정보 저장 장치는 우리의 가장 첨단화된 컴퓨터들보다 훨씬 더 정교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니엘 7:10에 나오는 “책들”은 그것이 실제로 무엇이든 간에 하늘의 기록 보존 수단을 상징하는 말로 생각해야 한다. (27.4)
 책들이 있는 이유
 그러나 왜 하늘에 “책들”이 있을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지 않는가? 그분이 무엇을 기억해내기 위해서 무슨 책이 필요할까? 물론 아니다! 그 책들은 그분의 유익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의 보좌를 모셔 선 존재들의 유익을 위하여 있다 다니엘이 그 “책들”을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아니라 천사들을 묘사한 직후에 소개한 것을 주목하라. 거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천사는 전지(全知)의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그 정보를 생각해내기 위해서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다. 그들이 어떤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지라도 자세한 내용을 회상하기 위해서는 우리처럼 그들에게도 기록이 필요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이 하늘 법정 장면에 책들이 있는 목적이다. (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