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가장 중대한 이슈들 제3장 조사심판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나는 전문적인 신학자는 아니지만 여러 해 동안 상당한 시간을 신학적인 이슈들을 연구하는 데 바쳤으며, 내가 교리적인 논쟁과 신학적인 논쟁들에 대하여 숙고할 때 유용하였던 한 가지 원칙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신학적인 주장도 그것이 성경의 주요한 가르침과 모순이 된다면, 그 주장은 참일 수 없다. 그러므로 특정한 이슈에 대한 나의 견해가 성경의 주요한 가르침과 충돌한다면, 나는 그 견해를 버리든지 그 가르침에 조화되도록 수정해야 한다. (34.1)
 그것의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널리 퍼져 있는 지옥을 영원한 고통의 장소로 보는 견해이다. 그 교리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반론은, 그것이 사랑과 자비와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반대된다는 것이다. 내친구 조지 나이트(George Knight)는 여러 해 전에〈사인즈 오브 더 타임즈〉(Signs of the Times) 지에 “무한의 히틀러”라는 제목으로 지옥에 관한 기사를 쓴 일이 있다. 만약 하나님이 죄인들로 하여금 영원토록 끊임없이 지옥에서 고통당하도록 허락한다면 그 표현이 정확하게 그분에게 들어맞을 것이다. 히틀러는 적어도 그의 피해자들이 죽은 후에는 결국 평안을 찾는 것을 용납하였다. 그러나 영원한 고통을 주는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희생자들이 죽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가 히틀러를 잔인한 독재자라고 비난한다면, 그의 희생자들이 영원토록 끊임없는 불에 산 채로 타게하는 신에게도 동일한 판단을 내려야 마땅하다. 그것은 우선 성경에 묘사된, 공의롭고 자비로우며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영원한 고통의 교리를 거부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34.2)
 내가 2장에서 언급했던 그리스도의 교회 교인인 친구가 말한 재림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반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는 이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 보았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받으심을 확증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 중 하나이며 다른 가르침은 이것에 의하여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 복음에 모순이 되는 교리는 무엇이든지 그릇된 교리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 교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복음과 조화되도록 수정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오류로 보고 거부해야 한다. 나는 이전 장에서 왜 내가 재림교회의 조사심판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믿는지 지적하였으며, 그 교리와 복음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언급하였다 이 장에서 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을 더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며, 조사심판의 교리를 그 기준에 맞추어 볼 것이다 (35.1)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란 무엇인가?
 하나님에게는 문제가—아주 커다란 문제가 있다. 그분은 완전무결한 사람들만 하늘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생에 단 하나의 결점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아웃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나라에 데리고 가기 원하시지만, 우리는 누구나 다 불완전하고, 그래서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로마서 3:20-24에서 그에 관하여읽는다. 아래에 그 구절을 인용해 놓았다. (35.2)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35.3)
 20절에서 여러분과 나는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21절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바울은 20절에서 율법을 지키는 우리 편의 노력으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자격을 전혀 갖출 수 없다고 진술하였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내놓을 만한 우리 자신의 의가 없기 때문에 그분은 그분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제공하신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a righteousness from God,”〈새국제역〉;〈개역개정판〉은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로 되어있음)라는 말의 의미이다. 그것은 그분으로부터 우리에게로 오는 의이다(참조 빌 3:8, 9). 하나님은 당연히 완전하시다. 마찬가지로 그분의 의도 완전하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에게 그분의 의를 주시면 우리도 또한 완전하다. 우리 내면으로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의가 이제 우리 자신의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36.1)
 하나님은 그분의 의를 주시는 대가로 단 한 가지를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이다. 22절“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고 말한다. 여러분과 내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 순간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결함이 많지만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의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의로운 것으로 간주하신다.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진술하였다. (36.2)
그는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지금 우리 죄를 취하시고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려고 하신다. 그대가 자신을 그에게 바치고 그를 그대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그대의 생애가 악하였을지라도 그의 공로로 인하여 그대는 의롭다 여기심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대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그대는 죄를 도무지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다.1)
(36.3)
 엘렌 화잇이 표현한 개념들을 주목해 보자. (37.1)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취하고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신다.
• 그분은 우리가 의로운 것으로 여기신다.
• 그리스도의 품성이 우리의 품성을 대신한다
•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받아들이신다.
(37.2)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다는 말은 그분 앞에 완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말이다. 그 순간 우리 불완전한 죄인들은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필요한 절대적인 완전함의 자격을 가진다. 이 완전함이 우리의 것이라는 말은 그것을 우리가 스스로 이룩하였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로서 우리의 소유이다 무슨 선물이든지 그것을 받는 사람의 소유가 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를 주셨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의 것이다. (37.3)
 23절24절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나타낸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바울은 23절에서 두 가지를 진술한다. 그것들은 서로 대구를 이루지만 시제는 각각 다르다. (37.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과거 시제
“[모든 사람이]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현재 시제
(37.5)
 그리스어의 현재 시제는 “계속적 현재”이다. 그것은 진행 중인 동작을 표시한다. 우리는 현재 시제의 문장을 번역할 때에 이러한 계속적 현재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항상 이르지 못하더니”라고해야한다. (38.1)
 이어서 나오는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는 말씀을 주목하라. 의롭다 하심은 23절에 나오는 진술들과 각각 병행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38.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과거에
“모든 사람이 계속 죄를 범하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현재에
(38.3)
 그렇게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은 우리 과거의 죄들과 현재에 진행 중인 우리가 범하는 죄들 모두를 담당한다. (38.4)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현재 범하는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본질에 대하여 우리에게 탁월한 통찰을 제공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경험으로써 우리는 혼인이나 입양의 법적 상태와 유사한 영구적인 관계를 예수님과 맺게 된다. 남편과 아내가 혼인 관계를 깨뜨릴 수도 있기는 하지만, 한편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어떤 일을 저질렀다고 해서 그때마다 혼인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합법적으로 입양된 아이가 부모를 거역한다고 해서 그때마다 법적으로 “파양”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도 깨어질 수는 있지만 우리가 매번 죄를 범할 때마다 그런 것은 아니다. 계속 죄를 범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와 혼인을 맺고 있으며, 여전의 그분의 가족에 입양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것은 정해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분의 신부이며 그분의 자녀이다.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