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는 그들이 그의 권면을 용납할 것을 희망하고, 또 한 디모데가 놓였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편지를 마친다. 그는 디모데가 빨리 돌아오면 속히 그들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이 지도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기를 요청하며 이탈리아로부터의 문안을 그들에게 전한다. 그는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이제 그의 사업을 마쳤다. 그는 그리스도가 온전히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으시며, 인간의 투쟁에서 인간과 함께 동정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시며 사람도 되심을 나타내 보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요 중보자로서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나타나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대언자 이상의 분이시다. 그는 인류가 따라갈 길을 인도하는 대장이시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그의 몸인 휘장을 통하여 성소 안에 들어가심으로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셨으며, 우리는 이제 담대함으로 그와 함께 그 곳에 들어 갈 수 있다.
독자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처음부터 저자의 목적이었다. 지상에서 백성들은 결코 성소의 그 어떤 부분이라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본 경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그의 처소로 들어갈 수도 없는 어떤 하나님을 경배했다. 히브리서에서 바울은 전연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지상에 있는 대제사장은 1년에 단 하루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는 어느 누구와도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는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으로 다가갔고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는 것은 다 제거하셨으며 대제사장이 살아서 나왔을 때 크게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기쁨보다는 고된 의무였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이 모든 것이 바뀌어진다. 기쁨으로 그는 그 자신이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어디든지 어린 양이 인도하는 곳을 따라가기를 배운 구속받은 자들을 그와 함께 이끌어 들이신다. 옛 율법의 특권을 능가하는 복음의 특권을 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히브리서에는 서신 전체를 통해
“더 좋은 것”이 반복되는 바와 같이, 더 좋은 이런 것에 대한 약속으로 일관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천사보다 나은”(
히 1:4),
“나은 것”(
6:9),
“더 나은 복”(
7:7),
“더 좋은 소망”(
7:19),
“더 좋은 언약”(
7:22),
“더 좋은 약속”,
“더 좋은 언약”(
8:6),
“더 좋은 제물”(
9:23),
“ 더 낫고 영구한 산업”(
10:34),
“더 나은 본향”(
11:16),
“더 좋은 부활”(
11:35),
“더 좋은 것”(
11:40),
“아벨의 죄보다 낫게 말하는 뿌린 죄”(
12:24) 그리고 이러한
“더 나은 것” 중 가장 주된 것은 하나님의 면전에 두려움과 떨림이 아닌 거룩한 담대함으로 서게되는 특전임이 분명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유산인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 수가 없다.
저자는 제
10장으로 그의 편지를 마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10장 19절과
20절에서 그의 독자들을 하나님의 면전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그러나 영원한 축복에 들어갈 그들의 가능성을 의심하므로 떨고 있는 영혼들을 생각하고서 격려와 경고를 주기 위한 어떤 말씀들을 덧붙이고 있다. 인간이 영원한 곳에 들어가는 것은 그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11장을 믿음에 대해 희망적이고도 고무적인 장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독자들은 많은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결국은 승리를 얻은 모든 사람들의 목록을 대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 야곱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왕국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다윗, 바락, 삼손, 라합, 그외 모든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들의 수는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아니면(without us)”(
히 11:40) 온전함을 이룰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로의 말씀이며 영광의 말씀이다. 그 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없으면 채워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용기를 갖자. 하나님은 남은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은” 영웅들과 연합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 곳에 거할 곳이 많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와, 모든 독자들이 넉넉히 그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기를 기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