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제 13 장 — 마지막 권면
 사도는 그의 사업을 마쳤다. 그는 그리스도를 구세주요 대제사장으로 나타냈으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하늘 성소에서 행하고 계시는 사업에 대하여 가르쳤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그와 함께 성문 밖으로 나가 그의 고난을 체험할 때는 지금이다. 이것은 그들이 매우 생생하게 경험할 것인바 그들은 곧 예루살렘을 떠나 세계 전역으로 흩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잊지 말아야 하며 항상 그들의 주님을 본받아야 한다.

 작별 인사는 가장 의미심장하고 아름다운 것인데 사도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영원한 언약에 대하여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히 13:1-4 (13:1-4)
 히브리서의 마지막 장은 많은 실제적인 교훈을 포함하고 있다. 저 자는 시내산과 시온산을 비교함을 끝으로 그의 주된 논지를 마쳤다. 그는 이제 몇 가지 권면을 첨가한다.

(어구(語句) 해설)
히브리서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그 당시의 이방인들 사이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으나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는 특별한 미덕으로 부각되었다. 사도는 여기에서 믿는 자들에게 형제를 사랑하라고 권면하기보다—이것은 그들이 이미 행해왔으므로—그 일을 계속하라고 권면한다.

 박해는 있어왔고 더 많이 닥쳐올 것이었으며 각 사람이 그의 형제를 돕기 위하여 준비함이 필요하였다. 그리스도는 도망해야 할 때가 오면 아무것도 가지고 갈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마 26:16-18). 그 때는 가까이 오고 있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주의를 기울이고 도움을 주어야 할 때였다.

히브리서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손님을 대접함
 여관들은 흔하지 않았으며 손님들은 종종 혐의자로 간주되었다. 변화된 환경 때문에 환대는 그 때와같이 지금도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이것이 사실일지라도 환대의 정신은 영원히 필요하다.

 천사들은 아브라함, 롯, 마노아, 기드온의 대접을 받았다(창 18:2-22; 19:1, 2; 삿 13:2-14; 6:11-20). 심판의 때 손님을 대접함은 고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마 25:35).

히브리서 13: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학대받는 자
 이 성경절은 당시 믿는 자들 중 얼마는 속박당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울 자신은 종종 감옥에 갇혔으며 자기를 도운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 감금당한 사람들을 기억해 줄 것을 요청한다. 학대는 때때로 예지력의 결핍으로 있을 수 있지만 반면 여러 경우에 명백한 이유없이 가해진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판단할 것이 아니요 고통받는 자들을 생각하여야하며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해야 한다. 학대받고 있는 자를 생각하라는 권면은 우리도 아직 육체 가운데 있고 우리도 똑 같은 재난에 봉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인한다.

히브리서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혼인을 귀히 여기고
 결혼은 귀한 것이 아니라는 그릇된 관념을 배격하고 순결을 강조하는 권면이다. 아울러 독신주의를 공격한다.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가장 고상한 상태는 독신 생활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는 것처럼, 그 당시에도 “결혼을 금지”하는 사람들이 얼마간 있었다(딤전 4:1-3). 그러한 논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음란한 것을 미워하신다. 모든 제어되지 않은 정욕은 결혼 관계에 있든지 없든지 정죄를 당한다. 결혼 생활은 거룩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사람은 죄를 숨길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모든 것은 언젠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히 13: 5-8 (13: 5-8)
(어구(語句) 해설)
히브리서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돈을 사랑치 말고
 “돈을 사랑치 말고”라는 문장의 문자적 표현은 “너의 마음을 탐욕에서 돌리라”이다. 흠정역은 “너의 회화에 탐심이 없게 하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회화”란 생애, 매일의 생활, 품행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단지 행동에 대한 것보다 “마음의 성향”에 대하여 더 언급하고 있다. 행동은 실제 그렇지 않을지라도 마음이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서는 마음의 상태에 비추어 행동을 조사하라고 권면한다. 문자적인 해석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이다. 부유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돈을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가난한 사람이거나 부유한 사람이거나 간에 탐욕스런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권면들을 단지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시키는 일은 없도록 하자. 권면들은 모두를 위해 쓰여졌으며 우리 모두는 그것들로 인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만족함
 만족하는 미덕은 하나님의 가장 귀중한 선물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격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의 소유에 대해서는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흔히 이러한 것으로부터는 눈을 돌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성취한 것으로 쉽게 만족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만큼 더 골치거리는 없다.

내가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인용절은 아마도 여호수아 1장 5절에서 온 것 같으나 성경 전반에 걸쳐 같은 약속들이 많이 있다(창 28:15; 사 41:17; 대상 28:20).

히브리서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이 성경절은 시편 118:6의 헬라어역 성경에서 왔다. 인용된 말씀은 자신감에 넘쳐 있다. 주님이 우리 편에 계시고 우리가 주님 편에 있을 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히브리서 13: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
 하나님의 교회에는 질서와 조직이 있다. 비록 “교회를 지배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나 지도자를 존경해야 한다. 권면은 특별히 먼저 지도자된 사람들에게 그리고 남은 자들에게 언급하는 듯 보이나 원칙은 모든 시대에 적용된다.

저희 믿음을 따름 또는 저희 믿음을 본받음
 우리가 열심으로 그들의 사상, 종말, 혹은 생애를 주의하여 보기 위해서는 그들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동일 하시니라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은 오늘은 기분좋고 내일은 우울해하는 것과 달리, 변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이다. 원문으로 본 어순은 “오늘과 내일이 같고 영원토록 동일하다”이다. 이것은 1장12절“주는 여전하여”와 사실상 같은 표현이다.

히 13: 9-16 (13: 9-16)
(어구(語句) 해설)
히브리서 13: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끌리지 말라
 우리는 여기에서 확고부동할 것에 대한 교훈 을 받고 있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확고부동한 것은 성숙한 그리스도 인의 특성중 하나이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동일하시므로 우리도 그 렇게 해야한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
 너무도 많은 사람이 새로운 다른 교훈에 의 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들에겐 혁신하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 다. 사도는 “유익을 얻지못할” 식물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언 급한다. 강조점은 사소한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원칙과 은혜에 관한 것이다. 이 원칙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진리이다.

히브리서 13: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히브리서 13: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히브리서 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저자는 여기에서 레위법에 있는 규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속죄제 희생의 피가 성소안으로 옮겨졌을 때는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나 모든 회중이 그렇듯이 그 제사장은 희생 고기를 먹을 수 없었으며 진영 밖에서 그것을 불로 사루어야만 했다(레 6:30).

 그러나 모든 속죄제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도자나 평민이 죄를 범했을 때, 그 제사장은 속죄 희생제물을 먹도록 허락되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요구되었다. “죄를 위하여 제사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을 거룩한 곳에서 그것을 먹을 것이며”(레 16:26).

 다음 성경절 속에는 근본적 원칙이 들어있다. “그러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성소에서 속하게 한 속죄제 희생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 지니라”(레 6:30).

 히브리서 저자가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히 13:11)르라고 언급한 것은 이 레위기 법의 적용이다.

 제사장들은 속죄제 희생의 피가 성소안으로 옮겨졌을 때는 그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그 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이 제단에서 먹을 권(權)이 없”다. 저자는 옛 법과 새 법의 처리에 관한 차이점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우리제사장들이 먹을 수 없는 제단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먹을 수 없는 이유는 그 피가 성소 안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예수는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그의 죄는 예수 자신에 의해 하늘 성소에 드려졌다. 왜냐하면 예수 자선이 그의 죄를 성소 안으로 운반하셨기 때문이다(히 9:12). 그러므로 바로 위에 인용된 법에 따라, 고기는 먹을 수 없고 불살라져야 한다. 주께서 아직 고난당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는 떡을 취하시고 말씀하셨다.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고전 11:24).

 이것은 사도가 언급한 레위법에 배치된다. 제단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속죄피가 성소안으로 옮겨졌을 때는 희생제물을 먹을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먹을 권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언약 이”(고전 11:25)라고 말씀하셨다. 새 언약에서 우리는 떼어진 떡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와 동참하는 자가 되는데, 우리가 그 떡을 먹으므로 매우 실제적인 방법으로 교통하는 자(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옛날의 제사장들은 희생 제물을 먹었으므로 죄를 지니게 되었다(레 10:17).

 신약에서는 그 정반대가 진리이나, 그것은 우리가 주의 전에서 베풀어지는 의식들에 의해서, 주님과 동참하는 자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한 제단이 있는데, 그위에 있는 제물은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먹을 권한이 없다. 그것은 축복된 성찬대이다.

히브리서 13: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나아가라
 이것은 성소봉사에서 나온 권면이다. 마치 그리스도가 영문 밖으로 나갔던 것처럼 우리도 그가 당한 능욕을 피하지 말고 그를 따라야 한다.

히브리서 13: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여기에서 영문 밖으로 나가자는 권면은 여기에는 우리의 영구한 도성이 없다는데 기인한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순례자요 외국인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옛날의 부조들같이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기초를 세우신 도성을 찾는다.

히브리서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심
 우리의 제사는 입술로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선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러한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우리의 그리스도교 정신은 말에 있지 아니하고 행함에 있다. 하나님은 실제적인 그리스도교를 기뻐하신다.

히 13:17-19 (13:17-19)
(어구(語句) 해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복종하라
 이 본문은 7절에 나타난 권고의 반복이나 좀 더 명확한 형태이다. 우리는 여기서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권면을 대하게 된다. 만일 순종하는 자들이 없다면 지도자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지도하는 것이 지도자의 특권인 것처럼 순종하는 것이 따르는 자의 특권이다. 지도자들이 종종 울어야 할 때가 있는데, 어떤 면에서 따르는 자들보다 지도자들에게서 발견하기가 더 쉽다.

회계이다
 지도자 정신은 책임감을 포함한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책임을 일을 처리하되 주어진 숫자의 사람으로 가능한 한 많이 처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책임감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신다. 하나님께 있어서는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는 문제보다, 지도자의 책임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이 번영하며, 어떻게 자라나며, 그들이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하는가를 보신다. 하나님은 일의 기교보다 사람 개인에 더 관심을 두신다.

히브리서 13:18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는 종종 이러한 말을 의미도 없이 형식적으로 쉽게 해버린다. 그러나 참으로 귀중한 영혼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시되어서는 아니 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선한 양심
 여기에서 사도는 우리에게 그의 목적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과 선한 양심을 가지는 것임을 말한다. 그는 도움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행하기를 열망한다. 그와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겸손한 정신을 나타내 준다.

히브리서 13: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돌아가기를
 바울은 신도들과 떨어져 있었으므로 그들과 함께 하기를 열망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있으므로 그들은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옛 성도들과 같이 그들은 터가 있는 도성 즉 성도의 본향을 갈망한다.

히 13:20-25 (13:20-25)
(어구(語句) 해설)
히브리서 13: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평강의 하나님
 이것은 사도의 작별 인사이다. 그는 양의 크신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을 소개한다. 이 마지막 진술은 부활은 영원한 언약의 한 부분이었으며, 영원전 회의에서 만들어진 합의의 한 부분임을 보여준다.

히브리서 13: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너희를 온전케 하사
 옛 언약과 제사장 직분에 대한 불평은 그것이 아무것도 온전케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도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선한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온전케 해주실 것을 기도한다. 이 말을 하면서, 그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권한다. “예수 그리스도,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히브리서 13: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히브리서 13:23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히브리서 13:24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히브리서 13:25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사도는 그들이 그의 권면을 용납할 것을 희망하고, 또 한 디모데가 놓였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의 편지를 마친다. 그는 디모데가 빨리 돌아오면 속히 그들을 만나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이 지도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기를 요청하며 이탈리아로부터의 문안을 그들에게 전한다. 그는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이제 그의 사업을 마쳤다. 그는 그리스도가 온전히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으시며, 인간의 투쟁에서 인간과 함께 동정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시며 사람도 되심을 나타내 보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이요 중보자로서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면전에 나타나시는 분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대언자 이상의 분이시다. 그는 인류가 따라갈 길을 인도하는 대장이시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그의 몸인 휘장을 통하여 성소 안에 들어가심으로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여셨으며, 우리는 이제 담대함으로 그와 함께 그 곳에 들어 갈 수 있다.

 독자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처음부터 저자의 목적이었다. 지상에서 백성들은 결코 성소의 그 어떤 부분이라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본 경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그의 처소로 들어갈 수도 없는 어떤 하나님을 경배했다. 히브리서에서 바울은 전연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지상에 있는 대제사장은 1년에 단 하루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그는 어느 누구와도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는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으로 다가갔고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는 것은 다 제거하셨으며 대제사장이 살아서 나왔을 때 크게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기쁨보다는 고된 의무였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이 모든 것이 바뀌어진다. 기쁨으로 그는 그 자신이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어디든지 어린 양이 인도하는 곳을 따라가기를 배운 구속받은 자들을 그와 함께 이끌어 들이신다. 옛 율법의 특권을 능가하는 복음의 특권을 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히브리서에는 서신 전체를 통해 “더 좋은 것”이 반복되는 바와 같이, 더 좋은 이런 것에 대한 약속으로 일관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천사보다 나은”(히 1:4), “나은 것”(6:9), “더 나은 복”(7:7), “더 좋은 소망”(7:19), “더 좋은 언약”(7:22), “더 좋은 약속”, “더 좋은 언약”(8:6), “더 좋은 제물”(9:23), “ 더 낫고 영구한 산업”(10:34), “더 나은 본향”(11:16), “더 좋은 부활”(11:35), “더 좋은 것”(11:40), “아벨의 죄보다 낫게 말하는 뿌린 죄”(12:24) 그리고 이러한 “더 나은 것” 중 가장 주된 것은 하나님의 면전에 두려움과 떨림이 아닌 거룩한 담대함으로 서게되는 특전임이 분명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유산인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 수가 없다.

 저자는 제10장으로 그의 편지를 마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10장 19절20절에서 그의 독자들을 하나님의 면전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그러나 영원한 축복에 들어갈 그들의 가능성을 의심하므로 떨고 있는 영혼들을 생각하고서 격려와 경고를 주기 위한 어떤 말씀들을 덧붙이고 있다. 인간이 영원한 곳에 들어가는 것은 그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11장을 믿음에 대해 희망적이고도 고무적인 장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독자들은 많은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결국은 승리를 얻은 모든 사람들의 목록을 대하게 될 것이다. 누구든 야곱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왕국에 도달하리라는 희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다윗, 바락, 삼손, 라합, 그외 모든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들의 수는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아니면(without us)”(히 11:40) 온전함을 이룰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로의 말씀이며 영광의 말씀이다. 그 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가 없으면 채워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용기를 갖자. 하나님은 남은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은” 영웅들과 연합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 곳에 거할 곳이 많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와, 모든 독자들이 넉넉히 그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기를 기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