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구원 (구속론) 제 5 장 영광화(Glorification)
 바울은 이 모든 것으로부터 가장 의미심장한 진술로서 도덕적 교훈을 요약하였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 (137.3)
 부언하면 불멸의 마지막 손질의 날이 돌아 올 때까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근본적으로 죗된 인간의 본성적 충동을 고려하고, 또 그것을 거절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단순한 감정으로서가 아닌 자신들의 품성과 행위의 산 표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로마서 7장을 보라) (137.4)
 완성된 구속의 계획(The plan of Redemption Accomplished)
 성경의 마지막 두장은 창세기의 첫 두장과 부합된다. 비록 낙원이 아담으로 인해 잃어버렸지만,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회복될 것이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각 시대의 그분의 자녀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로 말미 암아 곧 실현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보좌를 세우시고 그들과 영원토록 함께 사시기 위하여 오실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 4). (138.1)
 인류는 낙원을 만들 수 없으며, 정치적 계획이나 그의 선한 행위로도 결코 되지 않는다. 사람은 사망을 없이 하거나 죄와 사탄을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희망은 그가 우주의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고 선언하실 때 구체화 될 것이다. (138.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5 절)라는 말씀으로써 그의 보증을 추가하고 있다. (138.3)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거룩한 성은 새 예루살렘이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에서 마침 내 하늘로 좇아 내려올 것이다. (138.4)
 이곳은 지상 천국이 될 것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고난의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그리스도인 겨울”( Christian winter)에 살고 있다. “그러나 머지 않은 장래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슬픔과 탄식은 영원히 끝날 것이다. 그런 후에 그리스도인의 여름(Christian summer)이 될 것이다. 모든 고난은 지나고 더 이상 아픔과 죽음이 없을 것이다.”(본 교회 성경주석 7권 988, 이. 지. 화잇의 주석) (138.5)
 실락원(失樂園)에서 처럼 복락원(復樂園)에서도 생명나무는 필요할 것이다.(계 22:1, 2, 14) 불멸의 영광 가운데서라도 성도들은 사망의 해독제로서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그들의 생명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음을 시인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고의적인 불순종으로 말미 암아 그들의 생존권을 잃어 버렸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순종으로 인한 공로와 성령의 변화시키시는 능력으로 말미 암아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권세를 우리에게 되돌려 주신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느니라”(롬 5:19) (139.1)
 구속의 경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한때 불신하고 배반했던 피조물들을 사랑과 신뢰 그리고 순종하는 자녀들로 이끌어 내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지 아니 하였으니 곧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사 53:11 R. S. V)이다. (139.2)
 누가 영생을 얻을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139.3)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 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K. J. V). (139.4)
 “그들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 N. I. V). (139.5)
 위의 두 번역 가운데서 표현된 생명 나무에 나아가는 조건은 실제적으로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은 상징적으로 의로운 행동이나 거룩한 품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계 19:8을 보라) 이 도덕적 거룩함은 깨끗게 하시는 어린양의 보혈의 능력에 의해서 달성된다.(계 7:14) 구속받은 자들이 있을 새 땅은 어느 곳이든지 모두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universal holiness). 더 이상 대제사장들이나 어떤 공식 직분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여호와께 성결이” 되지 않을 것이다.(출 28:36-38 참조) (140.1)
 새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물건들은 고대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처럼 하나님께 바쳐지며 또 성결하게 된다. (140.2)
 “그 날에 말방울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슥 14:20, 21). (140.3)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겔 44:9) (140.4)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조건은 놀랍게도 현재 시제로 제시되어 있다.(계 22:14) 이것은 미래에 있을 영광에 대한 묘사가 단순히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요 우리에게 동기(motivation)를 주기 위해 있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순종하고 거룩해져야하며 지금 하나님과 습관적으로 동행해야 되고 바로 지금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미 6:8을 비교하라). 이 실제적인 거룩성은 구원받은 자들과 새 예루살렘 “밖”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자들 사이를 긋는 궁극적인 경계선이 될 것이다.(계 22:1521:8을 비교하라) (140.5)
 사도 요한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실과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고 기록했다.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7)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