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우리의 구원 (구속론) 제 5 장 영광화(Glorification)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榮華)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115.1)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죄가 일어난 후에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통하여 구원을 마련해 놓으셨다. 인간의 타락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집으로 돌아오도록 부르시고 계셨다. 부조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제사장들과 왕들을 통해 “땅끝에 있는 모든 백성들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 45:22)는 하나님의 음성이 탄원되고 재촉되어 왔다. (115.2)
 그분께서는 믿고 회개하여 나아온 자들을 그의 자비로서 의롭다고 하시고, 그의 봉사를 위해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그와 함께 변화시키고 언약 관계를 이루는 그분과의 동행으로서 거룩한 생애에 이르도록 부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칭의와 도덕적 성화보다 더 영광스러운 목표를 가지고 계신다. 그의 마지막 때 까지 최고의 포도주를 준비하신다. (115.3)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의 행위는 부활과 변화시에 있을 성도들이 영화가 될 것이다. 칭의가 우리의 성화 가운데서 그 목적을 발견하듯 성화는 우리의 영화가운데서 그 목적을 지니고 있다. 영화는 구속받은 자들로 그분의 찬란한 영광에 참여케 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그것은 가장 충분하고도 최종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구원이 될 것인데, 인간과 모든 피조물의 종말론적 구원이다.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 암아 의롭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 하느니라”(롬 5:2 R. S.V)고 기록했다. 그러한 기대는 무가치 하다고 생각하는 회개한 신자들에게는 엄청나게 높은 존귀와 특권이다. (116.1)
 과거의 남녀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찬란한 섬광을 보아 왔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은 하나님의 두려운 영광으로 빛났으며 죄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하게 되었다.(출 34:29-35) 훨씬 후에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서 그의 세 제자들의 눈 앞에서 영광 가운데 변화되었을 때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마 17:2)어졌다. (116.2)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암아 하나님과 교통하고 평화를 누리며 살고있는 모든 자들에게는 앞으로 다가올 더 영속적인 영광과 더 큰 실체에 대한 증거들에 불과하였다. (116.3)
 그의 언약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의 전 육체가 하늘의 영광으로 변화하는데 있다. 그러한 영광은 자생(自生)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죄와 상관이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실 때”(히 9:28) 하나님께로 부터 온다. (116.4)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써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빌 3:20, 21)하시며,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4)고 했다. (116.5)
 앞으로 올 이 영광에 대한 확신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확실성과 관련되어 있다. 사도들은 이 계시적인 소망 가운데 견고하게 뿌리를 박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약속 곧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는 소망을 친히 그들 속에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117.1)
 베드로에 의하면 이 기대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예수)를 받아 두리라”(행 3:21)고 한 히브리서와 완전히 일치되었다. (117.2)
 베드로는 그때를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뻗혀져 있는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기롱하여 다가올 심판을 부정할 “마지막 때”로 이해했다.(벧후 3:3-7) (117.3)
 그는 엄숙하게 그를 따르는 신자들에게 다음 사실을 확신시켰다. (117.4)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9-14) (117.5)
 여기서 우리는 예언적 말씀의 최종적 성취를 위한 기대가 어떻게 베드로에게 성공적이며 거룩한 생애를 위해 능력있는 동기가 되었는지를 주목하게 된다.(벧후 3:11, 12, 14 ; 벧전 1:13도 보라) (118.1)
 요한도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 3)라고 진술하므로서 베드로와 절대적으로 일치했다. (118.2)
 분명하게 베드로와 요한에게 거는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무의미한 신비주의나 희망적 사고(思考)가 아니었으며 실제적으로 죗된 습관으로부터 그리스도인 생애를 정결케 하고 거룩함의 탁월한 모본과 의의 표준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생애를 취하는 것이 있다.(요일 2:6, 29; 3:3, 7) (118.3)
 바울은 그가 골로새에 있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시된 복음의 영광스러운 부요함이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골 1:27)이라 함으로써 성화와 영화의 관계를 더욱 깊이 다루었다. (118.4)
 바울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골 1:28)로 제시하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 안에서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제시하려고 한다. (119.1)
 그는 혼돈하고 있는 어떤 교인들에게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고통을 하노라”(갈 4:19)고 기록했다.(고후 13:5 참조) (119.2)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 품성과 생애는 미래의 영화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내재하시는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 인의 생애와 마음을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은 바울에게 있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몸의 영화에 대한 보증과 조건이었다. 그는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 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얻게 하심이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3, 14)고 선언했다. (1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