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조들의 삶을 전적으로 주관하셨다. 하나님은 섭리 속에 그들을 인도하셨다. 비록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형제들이 실패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주셨던 모든 약속을 성취하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요셉은 민족과 개인을 향한 섭리의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7-8. 참조, 창 37:5-11). (104.3)
 대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사건은 천연계를 지배하시는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증거한다. (105.1)
 5. 보호자
 보호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창조에서 발견된다. 창세기 2:4-25의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손수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시고, 그의 반려자를 준비해 주셨다. 인간이 먹고 살도록 아름다운 일터를 준비하셨고, 먹을거리까지 자상하게 챙겨주셨다. (105.2)
 범죄 후에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보호하셨다. 헛되이 죽은 것 같은 의인 아벨을 위하여 심판자로 오셔서 그의 명예를 보호하셨고, 세상을 정화시키는 대홍수 심판의 때에 노아와 그 가족을 보호하셨다(창 4:10; 7:23; 8:1). (105.3)
 이스라엘의 부조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보호를 크게 경험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애굽 왕 바로와 그랄 왕 아비멜렉의 손 안에서 구원하셨다(창 12:10-20; 20:1-18). 하나님은 시날 왕 아므라벨의 연합군을 아브라함의 손에 붙이시고 롯과 함께 소돔 백성을 구원하셨다(창 14:13-16, 20). 하나님은 사래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까지 아브라함과의 관계 때문에 보호하셨다(창 16:1-16; 21:8-21). 하나님의 천사를 통해 롯은 소돔의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냄을 받고 불심판의 때에 구원을 얻었다(창 19). (105.4)
 하나님의 극적인 보호의 손길이 형을 피해 도망가던 야곱에게 벧엘에서 사닥다리의 계시를 통해서 나타났다. 하나님은 야곱과 끝까지 함께 하셔서 그를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그대로 성취하셨다(창 28:10-22; 35:1-7).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착취를 당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하셔서 재물을 불릴 수 있게 하시고 라반에게 꿈을 통해서 도망자 야곱을 해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셨다(창 31:24, 29, 40-42) .하나님은 에서의 복수의 손길에서 야곱을 구원하셨고 둘 사이에 평화를 회복시키셨다(창 33:1-17). 디나의 사건으로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인을 살육하여 저들의 동맹자들과 적대 관계 가운데 빠졌을 때에도 하나님은 저들에게 두려움이 임하게 하심으로 야곱 가족을 보호하셨다(창 34; 35:5). (106.1)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으나 보디발의 집에서든지, 감옥에서든지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하셨고(창 39:3, 23) 애굽의 총리로 올려주셨다(창 41:37-45). 요셉이 정치가로 활약하게 된 것은 기근으로 인한 식량 위기의 때에 애굽과 주변 국가들, 더 나아가 야곱의 가족들을 구원하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107.1)
 참고 문헌
 1. ‘에누마 엘리쉬’‘말둑’이 바벨론의 최고신이 된 경위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말둑’은 신들을 괴롭히던 여신인 ‘티아맛’(Tiamat, 바다)과 그녀의 배우자인 ‘킹구’(Kingu)를 죽였다. 그는 ‘티아맛’의 몸을 쪼개어 물로 구성된 상부 하늘과 단단한 지구를 만들었으며, ‘킹구’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 주전 1750년 경에 함무라비(Hammurabi)는 남부 이라크의 바벨론을 수도로 정하고 ‘말둑’을 (다른 위대한 신들 중의) ‘위대한 신’으로 삼았고, 주전 1120년경의 인물인 느부갓네살 1세(Nebuchadnezzar I)가 그를 공식적으로 ‘신들의 왕’으로 높였다. W. G. Lambert, ‘Enuma Elish’, ABD 2:526-528.

 2. ‘창조하다’를 의미하는 ‘바라’(בָּרָא)는 창 1-2장에서 7회, 나머지 부분에서 4회가 사용되었다. 창 1:1, 21, 27(3회); 2:3, 4; 5:1, 2(2회); 6:7.

 3. ‘만들다’를 의미하는 ‘아사’(עָשָׂה)는 창 1-2장에서 10회 사용되었다. 창 1:7, 16, 25, 26, 31; 2:2(2회), 3, 4, 18.

 4. ‘와요메르’(ויֹּמֶר)의 기본형은 ‘아마르’(אָמַר)인데 ‘이르시되’라는 창조 명령으로 ‘와요메르’가 사용되었다. 창 1:3, 6, 9, 11, 14, 20, 24, 26, 28, 29.

 5. 창 2:7, 8, 19.

 6. 창 2:22.

 7. Thomas McComiskey, E., ‘ברא’, TWOT 127.

 8. Fritsch, 26.

 9. 출 25:6; 27:20; 35:8, 14, 28; 39:37; 레 24:2; 민 4:9, 16.

 10. Wolf, 137.

 11. 창 1:11, 21, 24; 6:20; 7:14. 정결한 생물과 부정한 생물을 구분할 때 특히 조류와 관련하여 ‘민’(מין)이 사용되었다. 레 11:14-16, 19, 22, 29; 신 14:13-15, 18.

 12. Carl Friedrich Keil and Franz Delitzsch, Biblic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Peabody, MA: Hendrickson, 2002), 1:37.

 13. Sarna, 10.

 14. 참고, 사 27:1; 51:9; 겔 29:3; 32:2; 시 44:20; 74:13-14; 욥 7:12. 참조, John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 2nd ed.,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vol. 1 (Edinburgh,: T. & T. Clark, 1951), 28.

 15. G. Michael Hagan, ‘Exodus, Theology Of,’ Baker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Bible, ed. Walter A. Elwell (Grand Rapids, MI: Baker, 1996), 227.

 16. Sarna, 13.

 17. 창 2:2-3에서 히브리어 성경은 ‘아사’(עָשָׂה,`äSâ) ‘행하다’, ‘만들다’를 각 어절의 맨 마지막에 세 번씩이나 위치시켜 하나님의 안식을 강조하고 있다.

 18. Sailhamer, ‘Genesis’, 39.

 19. Thomas McComiskey, E., ‘עשׂה,’ TWOT 701. ‘<아사>는 모든 범위에 관련된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기술한다.’ ‘야훼’는 땅(출 20:11; 31:17; 왕하 19:15; 사 45:12, 18; 렘 10:12 = 51:15), 바다(출 20:11; 욘 1:9; 시 95:5), 마른 땅(욘 1:9), 하늘(출 20:11; 31:17; 왕하 19:15; 시 96:5), ‘궁창’(‘라키아,’ 창 1:6이하), 천체(창 1:16; 욥 9:9), 해와 달(시 104:19), ‘(하늘의) 창’(‘아룹보트,’ 왕하 7:2, 19), 동물(창 1:25; 3:1; 욥 40:15), 인간(창 1:26; 5:1; 6:6; 9:6; 렘 27:5; 개인들, 삼상 12:6), 민족(신 26:19; 시 86:9)을 만드셨다. ‘야훼’‘하임’ ‘생명’을 만드신다(욥 10:12). J. Vollmer, ‘עשׂה’, Theological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TLOT), ed. Ernst Jenni et al.(Peabody, MA: Hendrickson, 1997), 2:949-950.

 20. Sarna, 8.

 21. ‘아마르’(אָמר) ‘말하다’는 히브리 성경에서 5282회가 사용되어 최다 빈도수를 기록하고 있다. H. H. Schmid, ‘אמר’, TLOT 1:160.

 22. 창 1:3, 6, 9, 11, 14, 20, 22, 24, 26, 29.

 23. 10은 성경에서 중요한 숫자이다. 이것은 ‘충분함’ 혹은 ‘충만함(fullness)’을 뜻하는 것으로 창세기의 계보에 의하면 홍수전후의 부조들의 숫자는 각각 열 명씩 이다(창 5; 11:10-30). 아브라함은 열 명의 의인이면 소돔을 구원하기에 족할 것으로 생각했다(창 18:32). 이스라엘은 애굽에 내린 열 재앙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출 7:8-11:10). 하나님은 온전한 법인 십계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고, 이스라엘은 무려 열 번이나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출 20:2-17; 신 5:6-21; 민 14:22). ‘후기 유대인의 생활과 관습에 10은 뛰어난 역할을 했다. 테트라그람마톤은 대속 죄일에 대제사장에 의해서 열 번 불려졌다. 열 명은 회당에서 회중을 구성하며 결혼식의 축복에 열 명이 참석해야만 한다. 사별한 이를 위로할 때 열줄로 섰다.’ B. C. Birch, ‘Number’,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Revised (=ISBE), 3:560.

 24. 하나님은 창조주 이상이시다. 그분은 입법자이시다. 그분은 빛과 어둠을 구분하시고, 육지와 바다를 구분하시고, 그것들에 이름을 지어주신다. 그분은 별들을 명하여 징조와 지정된 때를 이루게 하신다. 살아있는 생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을 받았다. 인간은 땅을 정복해야 하며, 제칠일은 거룩해졌다. 하나님은 자연 질서에 한계를 그으시고 그 속에서 종들의 기능을 특별히 지정하셨다. 이것을 통해서 만일 저들이 신적인 지시에 충실하기만 하면 저들에게 신적으로 임명된 역할을 모든 피조물이 성취하는 당연한 결과가 이르러온다. Gordon J. Wenham,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1 (Waco, TX: Word Books, 2002), 38.

 25. 창 1:4, 10, 12, 18, 21, 25, 31.

 26. ‘Three, Third’, Dictionary of Biblical Imagery, ed. Leland Ryken et al.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8), 866-867.

 27. 대상 4:23; 사 29:16; 30:14; 41:25; 45:9; 64:8 (히 7); 렘 18:2, 3, 4, 6; 19:1, 11; 애 4:2; 슥 11:13.

 28. 시 104:26에서 리워야단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언급한 것은 고대 근동지방의 신화를 반박하는 의도가 명백하다.

 29. A. H. Konkel, ‘יצר’, NIDOTTE 2:504.

 30. 사 49:16; 30:14; 45:9; 64:8; 렘 18:6; 롬 9:21.

 31. ‘바나’가 창조와 관련되어 사용된 것은 창 2:22암 9:6 뿐이다. 그러나 아카드어와 우가리트어는 창조를 언급할 때 이 단어를 정규적으로 사용하였다. Wenham, 69.

 32. 창 4:17; 미 3:10.

 33. 제단, 창 8:20; 탑, 창 11:4; 집과 우릿간을 지음, 창 33:17

 34. 이제 그(아담)는 전에는 불완전했던 자신이 그의 아내 안에서 완전해진 것을 보았다 ∙∙∙ 모세는 또한 의도적으로 ‘건축했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여자라는 인물 속에서 인류는 드디어 온전해졌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인류는 이전에는 막 시작한 하나의 건물과 같다.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trans., John King, Calvin’s Old Testament Commentaries, vol. 1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48), 133.

 35. ‘아담은 ex nihilo(무로부터) 부터가 아니라 땅의 흙으로부터 창조되었으며, 하와도 ex nihilo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 그녀는 남자와 동일한 재료—동일한 뼈, 동일한 살, 동일한 DNA로 만들어졌다.’ Hughes, 60.

 36. Keil and Delitzsch, 56.

 37. ‘첼라’(צלָע)는 출 25-38장에서 성막과 기구를 가리키는데 19회가 사용되었다. 출 25:12(2회), 14; 26:20, 26, 27(2회), 35(2회); 27:7; 30:4; 36:25, 31, 32; 37:3(2회), 5, 27; 38:7. 솔로몬성전의 경우에는 골방(왕상 6:5, 8), 백향목과 잣나무의 널판(왕상 6:15 (2회), 16), 문짝(왕상 6:34), 들보(왕상 7:3)를 가리키고 에스겔의 이상 중의 새 성전의 경우에는 골방들을 가리킨다(겔 41:5, 6 (4회), 7, 8, 9 (2회), 11, 26). 아담의 ‘첼라’‘성막의 측면(the side of the tabernacle)’으로 이해하는 견해에 대해서는 Pinchas Stolper, ‘The Man-Woman Dynamic of Ha-Adam: A Jewish Paradigm of Marriage,’ Tradition 27, (1992): 35를 참조하라.

 38. 창 2:22의 동사 ‘만들었다’는 사람이 성전을 건축하듯이 ‘건축했다’는 뜻이다. Warren W. Wiersbe, Wiersbes Expository Outlines on the Old Testament (Wheaton, IL: Victor Books, 1993), 창 2:22.

 39. 삼하 7:27, 29.

 40.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세우고 허는 건축 활동에 비유한 것에 대해서는 시 28:5렘 42:10을 참고할 수 있다.

 41. 아가서의 정경성에 대해서는 미쉬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랍비 아키바(Aqiba, A.D. 100년경)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정경성 문제는 해결되었다. 아키바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인 중 아가서가 손을 부정하게 한다고 논쟁을 일으킨 사람은 전혀 없다. 모든 시대는 아가서가 이스라엘에 주어진 날 만큼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성경은 거룩하나 아가서는 지극히 거룩하다.’ Mishnah Yadayim 3:5. William Sanford; Hubbard LaSor, David Allan; Bush, Frederic WM., Old Testament Survey: The Message, Form, and Background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1; reprint, May 1991), 601; Jacob Neusner, The Mishnah: A New Translation (New Haven/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88), 1127.

 42. 창 1:3, 6, 9, 11, 14, 20, 24, 26, 28, 29.

 43. 창 1:4, 10, 12, 18, 21, 25, 31.

 44. 창 6:5, 12; 11:5; 18:21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보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라아’(רָאָה, rä´â) 동사는 하나님을 주어로 삼고 있으며, ‘라아’는 하나님을 주어로 할 때 신적 심판을 나타내는 신학적 용어이다. 심판자 하나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45. Keil and Delitzsch,1:53. 선악을 분별할 줄 모르는 것은 미성숙 혹은 고령으로 인해 우둔해진 것에 대한 징후이다(신 1:39; 삼하 19:35).

 46. 하나님의 창조행위 마다 반복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은 선한 세계를 보여준다. ‘토브’(טוֹב, †ôb) ‘좋다’는 도덕적 의미로 ‘선하다’는 뜻도 갖고 있다. 왕상 8:36; 호 8:3; 미 6:8.

 47. 하나님은 선하시다(시 143:10; 막 10:18) 하나님의 뜻은 선하다(롬 12:2)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딤전 4:4)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다(왕상 8:56; 슥 1:13; 히 6:5).

 48. 창 3:1에 뱀이 처음으로 한 말—‘아프 키 아마르 엘로힘’(אַף כִּי־אָמַר אֱלֹהִים, ´ap Kî-´ämar ´élöhîm)—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강의불변화사(强意不變化詞)에 의해 도입되어 참으로하나님이말씀하셨느냐?는 뜻을 갖는다. 이 표현은 뱀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의심의 씨앗을 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 . 만일 하나님이말씀하셨느냐?를 수사적 질문으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이 ∙∙∙ 라고 실제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Reyburn, 81.

 49. 전 7:29의 배경은 창 1장의 창조이다.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인 ‘야훼’대신에 보편적인 신명인 ‘엘로힘’을 썼고, 인간 혹은 인류를 뜻하는 ‘아담’을 사용했다. ‘정직하게’로 번역된 ‘야샤르’(יָשָׁר, yäšär)는 도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의로움(신 32:4), 올바른 도덕적 삶(욥 4:7), 굽거나 비뚤어지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데 사용되고 있다(전 7:13). Graham S. Ogden, Lynell Zogbo, A Handbook on Ecclesiastes, UBS Handbook Series; Helps for Translators (New York, NY: United Bible Societies, 1998), 273. 전 7:29‘꾀’로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힛샤본’(חִשָׁבוֹן, Hiššäbön)은 본절과 대하 26:15에만 등장한다. 이것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사고(思考)의 결과물을 뜻하며 복잡한 생각과 경이적인 발명품이 포함된다. 탐욕스러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인간의 비뚤어진 모습을 본 절은 그리고 있다. John E. Hartley, ‘חשׁב’, NIDOTTE 2:309.

 50. 히브리어 ‘라바츠’(רָבֵץ, räbac) ‘엎드리다’는 창세기에서 짐승이 쉬기 위해서 혹은 먹이감을 해치우기 위해서 엎드린 것을 가리키는데(창 29:2; 49:9, 14), 창 4:7에서는 ‘죄가 너를 원한다’고 함으로 잠복하여 기다리는 짐승에게 죄를 비유하였다. HALOT창 4:7의 의미를 ‘눕다, 숨어 기다리다’로 밝혔다. ‘רבץ,’ HALOT. 죄가 숨어 기다리는 문은 ‘가인의 마음, 정신, 생각을 가리킨다.’ Reyburn, 110.

 51. 창 6:5은 홍수 전 시대의 사람들을 가리킬 때 단수형인 ‘아담’(אָרָם, ´ädäm)을 사용하여 인류의 집단적인 부패 현상을 지적하였다.

 52. 대홍수의 주요 원인으로 제시된 인류와 세상의 부패를 나태내는 히브리어 ‘샤하트’(שָׁחַת, šäHät)는 수동형(닢알)에서는 ‘부패하다’(창 6:11, 12), 사역형(힢일)에서는 ‘부패하다, 멸망시키다’는 뜻을 갖는다(창 6:12, 13). 홍수 전 시대 사람들은 부패를 통해 자멸한 것이다.

 53. 마 24:38-39; 눅 17:27, 29; 벧후 2:5-6.

 54. 눅 17:29; 벧후 2:6; 유 1:7.

 55. Umberto Cassuto, A Commentary on the Book of Genesis: Part 1, from Adam to Noah, a Commentary on Genesis I-Vi8, trans., Israel Abrahams (Jerusalem: Magnes, 1961), 225.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을 의미하는 숫자이기 때문에 칠 배는 ‘완전한 정도로’ 곧 가인을 죽이는 자는 지극히 가혹하게 처벌을 받는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다. Ibid., 226. 참조. 레 26:18, 21, 24, 28; 시 79:12; 잠 6:31.

 56. Charles Hodge and Edward N. Gross, Systematic Theology, Abridged ed. (Phillips urg, N.J.: P&R Pub., 1997), 1:440.

 57. 마틴 로이드 존스, 하나님 앞에 사는 즐거움(서울: 생명의말씀사, 1995), 24. (10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