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4장 그리스도교가 이교화되어 가는 과정 제4절 성경에 최초로 나타난 태양신 부활절 축제 행사
 이 모든 것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일요일 준수와 영혼 불멸설의 교의다. 사실이 이럴진대 그 누가 제사장 비느하스처럼 일어나서 “좌우에 날선 검” 곧 그리스도의 “입의 검”을 들고 이교와 교회가 야합해서 만든 「제3의 새종교」를 분쇄한단 말인가! (368.2)
 c. 비느하스의 의거와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 25:6-13).
(368.3)
 엘렌 G. 화잇은 그의 저작에서 이 사건을 심도 깊게 서술했다: (368.4)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법적인 행위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발람의 모든 사술이 행할 수 없었던 일 곧 이스라엘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는 일을 행하였다. 백성들은 신속히 내리는 형벌로 저희 죄가 얼마나 큰 것을 깨달았다. 무서운 염병이 진중에서 퍼져서 수 만 명이 신속히 죽임을 당하였다. 하나님께서도 이 배도의 두목들을 죽이라고 사사들에게 명령하셨다. 이 명령을 신속히 순종하였다. 범죄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저희 시체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 높이 매달아 두목들이 그처럼 혹독한 처벌을 받는 것을 보는 회중에게 하나님께서 저희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며 저들에 대한 당신의 분노의 무서움을 깊이 깨닫게 하셨다.”
(369.1)
“그 형벌의 공의로움을 깨달은 모든 백성들은 급히 성막으로 나아가 눈물과 깊이 뉘우침으로 저희 죄를 자백하였다. 이와 같이 저희가 성막문에서 하나님 앞에 울고 있을 때에 염병이 아직도 사람들을 죽이고 사사들은 그 무서운 임무를 집행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귀족 중 한 사람인 시므리는 자기의 장막으로 호송하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공주 미디안 창녀를 데리고 담대하게 진영으로 들어왔다. 이보다 더 대담하고 완고한 악행은 전에 결코 없었다. 술에 벌겋게 된 시므리는 「그의 죄를 소돔과 같다고 선포하고」 자신의 수치를 영광으로 여겼다.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슬픔과 굴욕 중에 엎드려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면서 여호와께 당신의 백성을 아끼시고,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책하지 마시기를 간청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의 귀인은 마치 하나님의 형벌을 부인하고, 민족의 사사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회중의 목전에서 보라는 듯이 뻐기면서 범행하였다.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그 둘을 살해하였다. 이리하여 염병이 멎고 하나님의 형벌을 집행한 그 제사장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아 사제 직분이 그와 그의 가문에 영원히 보장되었다.”25)
(369.2)
 민수기 25:6-13의 본문에 나타난 사건의 주요 연출자들은 세 사람이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종족 족장의 아들이었던 시므리와 다음으로는 미디안 백성 중 한 부족 두령의 딸 고스비이고, 마지막으로 제사장의 아들 비느하스였다. (369.3)
 우리가 구약에 나타난 주요 사건 기사 내용을 그 당시의 한 역사적 사건일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지적한 말씀(고전 10:7-11; 롬 14:4)대로, 장차 일어나게 될 한 예언적 사건으로써 주께서 참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해 주시기 위하여 성경에 기록케 하셨다고 이해가 된다면-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여기서 우선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의 시므온 종족 족장 살루의 아들 시므리(Zimri)와 미디안의 한 종족 두령 수르의 딸 고스비(Cozbi)는 각각 두 부류를 대표할 수 있다 하겠다. 첫째는 더 과거에 거슬러, 노아 홍수 때에 물로 심판을 받았던 “하나님의 아들들”“사람의 딸들”(창 6:1-5; 벧후 3:6)을, 두번째로 장래의 것으로, 장차 불로 심판을 받게 될(벧후 3:7) 타락한 그리스도교와 이교를 각각 예표 할 수 있다 하겠다. 따라서 이들 남녀의 “음란한 결합”은 곧 타락한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음란스런 야합”을 상징하는 것이 되겠다. 그런데 실은 이와 같은 상황이 실질적으로 교회 역사상, 버가모 교회 시대인 A.D. 313년부터 모압 왕 발락을 예표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하나님의 타락한 선지자 발람을 예표한 교회 역사의 비조요 가이사랴 교회 감독이었던 유세비우스의 야심적이요 탐욕스럽고 음흉한 계교로 그리스도교의 교의에다가 아폴로 태양신 숭배의 이교적 교의를 접붙였다. 그리하여 A.D. 538년에,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Uustinianus I, 재위 A.D. 527-565)의 칙령으로 “로마 교황권”(the Roman Papacy)이 확립되자, 교회의 “이교화”(Paganization)가 더욱 급속히 진행되어, 부패하게 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황금 시대”가 전개되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 A.D. 1073-1085) 때 그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대를 서양사에서는 “세계의 암흑 시대”라 했다. 세기적인 오랜 암흑의 밤은 점점 사라지고 곧 동틀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370.1)
 끝으로, 이들 두 남녀의 부정한 결합을 “여호와 하나님의 질투심”의 의분으로 “손에 창을 들고 ...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 두 사람을 죽”인(민 25:8)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Phinehas)는 그리스도의 “입의 검”(계 2:6)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Ἀντιπάς ὁ μάρτυς, the martyr Anti Papa[Pope], 순교자, 적 교황, 계 2:13)의 의분으로써 교회와 이교의 야합으로 빚어진 “영적 음행”을 내려쳤던 순교자 네스토리우스(Nestorius, A.D. ?-451)를 비롯하여 봘도(Peter Wald, [불어는 Pierre Valdo], A.D. 1140-1217)와 그들 따르는 무리들(Waldens), “종교 개혁의 새벽 별”인 위클리프(John Wycliffe, A.D. 1329-1384), 프라하 대학장 후쓰(Johaness Huss, A.D. 1370?-1415), 제롬(Jerome of Prague, A.D. 1370-1416), 그리고 “종교 개혁의 영웅” 루터(Martin Luther, A.D. 1483-1546) ... 등을 예표한다 하겠다. (370.2)
 

엘리야가 바알의 제사장 하나를 발로 밟고 오른손으로 칼을 쥐고 내려치려고 하는 모습. 가멜산 엘리야 기념 성당
 이들은 모두 순교자의 정신으로 “기독교의 가면을 쓴 이교”, 「제3의 새 종교」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실상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폭로함으로써 그 가면을 외부의 현저한 것부터 하나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겉옷 속 깊숙이 감추어진 것은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환언하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완성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 뒤에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광명하고 찬란한 햇빛이 깊은 흑암의 밤중에서부터 비취는 것이 아니고, 새벽녘 동틀 때부터 서서히 밝아오는 것처럼 “생명의 빛”“진리의 빛”도 그러해야 했다. 그래서 루터는 안식일과 일요일의 본질을 명확히 파헤쳐 보지 못한 채 개혁의 사명을 다음의 세대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러나 라이프찌히(Leipzig)에서 개최된 엑크(Eck)와의 공개 토론 때 이 안식일 문제 때문에 그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부록: “루터와 엑크의 논쟁” 참고]. (372.1)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사단,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논쟁의 쟁점은 “안식일과 일요일”이다. 즉 그리스도의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권위의 표로써 창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 역사에 날인 해 온 “제칠일 안식일”(THE SEVENTH DAY SABBATH)과 이에 맞서 처음부터 곧 하늘에서부터(계 12:7-9)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도전하여 전쟁을 일으켰던 사단은 이에 대한 도전장(挑戰狀)으로써 “태양의 날”“일요일”을 만들어서 대들었다. (372.2)
 선지자 이사야는 사단의 야심과 그의 파괴적인 활약을 묘사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373.1)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26)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사 14:12-17).
(373.2)
 사단이 이 지상에서 안식일을 지워 없애기 위해 파괴하고 황무케 하고 황폐케 했던 그 안식일을 선지자는 또한 회복하는 대역사가 전개될 것을 예언했다: (373.3)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 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2-14).
(373.4)
 선지자 이사야는 또 그리스도의 “안식일 해방론의 메시야적 사역”을 예언하면서(사 61:1-3) 그 뒤를 이어 현대판 비느하스의 의거가 전개될 것을 이렇게 예언했다: (373.5)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 61:4, 6)
(374.1)
 이 말씀을 다시 민수기에 언약하신 말씀과 대조해보자: (374.2)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 25:11-13).
(3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