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준수의 기원과 역사 제4장 그리스도교가 이교화되어 가는 과정 제5절 태양신 숭배의 관습과 그 의식들이 그리스도교에 도입된 과정
 이 공간들은 원래 교황 니콜라스 5세(Nicholas Ⅴ, A.D. 1447-1455)를 위해 건축된 주거용 아파트였다. 교황 니콜라스 5세는 고전문학과 철학 연구에 몰두하며 문예를 장려한 인문주의자였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곳을 자신의 주거용으로 개조하면서 내부를 새롭게 장식할 때 부라만테를 통해 발굴한 25세의 젊은 예술가 라파엘로에게 명하여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의 천장화와 벽화를 그리게 했다. 이 서명의 방은 교황들이 교황청의 공문서 등 모든 서류를 결재하고 서명을 하던 곳이었으며 때로는 교회 재판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다. 이 공간이 “라파엘로의 방들”(Stanze di Raffaello) 중 제2실이다. (399.1)
 라파엘로는 이 서명의 방 벽화들을 3년(A.D. 1508-1511) 만에 완성했는데, 교황 유리우스 2세가 지시한 대로였다. 이 방의 한 벽면은 “성사에 대한 토론”(La Disputa del Sacramento)이라는 프레스코이고, 그 맞은 편은 라파엘로의 대표작인 “아테네 학당”(La Scola d'Atene)이 그려져 있다. (399.2)
 이 벽화의 중심 인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리고 피타고라스를 위시해서 로마 가톨릭교의 교리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끼친 모든 헬라 철학자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제논, 에피쿠로스, 디오게네스, 유클리드, ... 프톨레마이오스 심지어는 조로아스터(Zoroaster)까지 포함되어 있다. (399.3)
 교부신학을 형성하는데 기본 사상을 기여한 이원론(Dualism)의 거두 플라톤은 왼손에 TIMEO라는 책을 끼고 오른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이에 비해 스콜라 신학을 조성하는데 기본 철학을 제공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전자는 철학의 근본을 우주론, 즉 형이상학(metaphysics)에 있음을 내세우는데 반하여 후자는 그것을 형이하학(physical Science)에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399.4)
 

바티칸 궁의 교황 서명실.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작.
 

티매오스를 왼팔에 끼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걸어 나오는 플라톤과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에 영혼 불멸설을 전승시켜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플라톤의 저술 Timeus(Timeo, 헬라어로 티마이오스)는 플라톤의 모든 저작들 중 가장 어리석은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도, 이 작품이 중세 유럽의 종교와 문화에 엄청나게 영향을 끼친 책이다. 필자는 이것을 제4장에서 논하였거니와 로마 가톨릭교의 핵심 교리인 영혼 불멸설에 크게 기여했다. (402.1)
 그리고 그 위에는 옛 그리스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신탁을 맡은 무녀(sibyl, 마녀)가 아르테미스 여신상들을 좌우에 두고 좌정하고 있다. “제3의 새 종교”의 본질을 잘 표출하고 있는 여러 벽화들 중 하나이다. (402.2)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밀비오 다리에서 격파하는 장면(좌측).
(402.3)
 라파엘로의 방들 중에서 제4실은 일반적으로 “콘스탄티누스의 방” (La Stanza di Constantino)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이 방 거의 전체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전설적인 삶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라파엘로의 방들 중 하나로 취급되지마는 이 방의 그림들은 라파엘로가 직접 그린 것이 아니고 그의 두 제자들이 그린 것이다. 그가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비오 다리의 전투”“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계시”는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세례”“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증”은 존 프란세스코 페니(Gian Fransesco Penni)가 그렸다. (402.4)
 

콘스탄티누스의 십자가 환상
(403.1)
 400쪽의 그림은 콘스탄티누스가 A.D. 312년에 막센티우스(Maxentius, A.D. 306-312)의 군대를 밀비오 다리에서 격파하는 내용이고 401쪽의 그림은 A.D. 312년에 골에서 콘스탄티누스가 정적 막센티우스와 일전을 앞둔 어느 날 태양이 석양에 머물 때에 환상을 보았는데 그것은 십자가가 나타나 “너 이것으로 승리하라”는 것이다. (403.2)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던 콘스탄티누스는 그날 밤 꿈에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셔서 이 십자가를 군기에 그려서 정적들을 쳐 이기라고 명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더니 결국 이 싸움에서 대승했다는 내용이다. (404.1)
 이 이야기는 교회사의 비조 유세비우스가 저술한 “콘스탄티누스의 전기”(Vita Constantini)에서 증언한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저자 락탄티우스(Lactantius, Frmianus Caecilius, A.D. 250?-317)는 황제가 군기에 그려 넣은 십자가는 그리스도(Χριστο)의 모노그람인 “Χ”“ρ”를 합친 “ρ”의 표식이었다고 전한다. 락탄티우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 크리스푸스의 궁중교사로 오래 시무 하던 중 황제의 증언을 직접 들었다고 했다. (404.2)
 그리고 이 서명의 방 창문들 위에 있는 반원 공간에는 세속법과 교회법의 기능에 관련되는 세 가지 도덕을 비유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맞은 편에 태양신 아폴로가 음악의 여신들(뮤즈)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면서 영지 파르나수스(IL Parnaso)에 앉아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천장에는 구약에 나타난 설화와 4명의 무녀들이 그 사이 사이에 그려져 있다. “성사에 대한 토론”에 그려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성부가 그려져 있고 그 성부 위에 한 무녀가 좌정해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듯이 “아테네 학당” 역시 한 무녀가 앉아있고, 태양신 아폴로가 그려져 있는 “파르나수스” 위에는 또 다른 무녀가 앉아있다. (404.3)
 왜 무녀들이 좌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제3의 새 종교”가 기독교와 이교의 혼합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404.4)
 

유세비우스의 증언과 달리 락탄티우스(Lactantius)는 주장하기를 Constantinus 황제가 환상 에서 보고 군기에 단 것은 보통의 십자가가 아니라 태양 원반 속에다가 Greek 文字로 그리스도 를 나타내는 낱말 Χριστος 의 monogram 인 두 자 Χ과 ρ를 겹친 'X' 였다고 한다. 로마 바티칸 미술관 소장
 로마제국의 역대 황제들 중에서 오로지 콘스탄티누스 황제만이 믿기지 않은 그의 전설 같은 중요 생애가 묘사된 이런 벽화들이 왜, 무엇 때문에 이 바티칸 궁의 또 다른 라파엘로 방에 그려져 있는 것일까?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바로 “기독교”라는 나무에다가 “태양신교”라는 나무를 일요일 신성설이라는 접착제로 접목해서 “제3의 새 종교”라는 꽃봉오리를 맺게 한 그 창설자이기 때문이다. 이 꽃봉오리가 피렌체에서 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만발했다. (405.1)
 그렇기 때문에, 오래 전에 피렌체의 플라톤 학원에서 철학을 강의하면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융합을 시도했던 죠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G. Pico dilla Mirandola, A.D. 1463-1494)가 피력한 대로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고, 신학이 그것을 발견했다면, [제3의 새 종교]는 그것을 소유한다.”는 것이 이루어졌다. (406.1)
 그리하여 기독교가 일요일 성수를 통해 이교의 온갖 미신들과 신화 그리고 철학으로 혼합되어 형성된 바벨론의 칠흑 같은 암흑의 짙은 밤은 깊을 대로 깊어졌다. 기독교 복음과 진리가 이교의 거짓과 뒤섞일 때 교회는 부패한다.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갖가지 만행으로 무지몽매한 백성들을 사망의 골짜기로 이르게 했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자, 그제서야 “오직 성경만이”(sola Scriptura)라는 외침이 터졌다. 마르틴 루터의 이런 절규는 참 진리와 생명수를 갈급 했던 중세기 유럽 영혼들의 비명스런 아우성을 대변한 것이었다. (4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