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 제 3부—안식일 신학 제15장—기독교의 현대 안식일 신학
 즈위트는 사도들의 글들을 세심히 참고함으로써 사도 바울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요일 예배 운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물리쳤다. 그러나 그는 요한계시록 1:10에 관해서는 다르게 말했다. 즉 그는 말하기를 “후속되는 모든 교부들의 용례들에서 ‘주의 날’은 일요일을 뜻하고 있으며 따라서 요한계시록 1:10‘주의 날’도 이러한 규칙의 예외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다”라고 하였다.46 즈위트의 위와 같은 주장들을 통하여 우리는 몇 가지로 그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즈위트는 자신이 루터, 칼빈, 쯔빙글리 이후의 개신 교회가 개신교 신앙의 필수적 조건(必煩的條件)으로 수립해 놓은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만으로)의 원칙을 무시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둘째로, 그는 역사적 방법론이라는 중요한 성경해석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즉 그는 성경의 모든 표현들은 그것들이 사용된 그 시대 이전이나 동일 시대의 증거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하며 그 이후 시대에 나타난 역사적 증거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47 요한계시록 1:10에만 유일하게 나오는 “주의 날”이란 표현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그 앞서 이 두 개의 원칙 곧 신학적 주석 방식과 역사적-과학적 방식을 책임있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274.1)
 즈위트는 일요일의 기원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일요일 예배가 최초의 부활절 일요일의 성 만찬 기념 습관으로부터 유래했을 것이라는 주장 곧 그가 “있음직 한 가설”이라고 부르는 주장을 내놓았다. 일요일 예배가 처음에는 부활절 일요일의 성만찬 기념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매 주간마다 반복되는 일요일의 성만찬 기념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그는 사도행전 20:7; 누가복음 24:33-43; 요한복음 20:19-23을 하나로 묶어 호소했다. 그러나 위의 세 성경절에서 사도들이 의도적으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주간의 첫째날에 모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는 없다.48 (274.2)
 즈위트는 안식일을 창조시대의 계명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로 규합하여 자신의 일요일 신학을 뒷바침하려 했기 때문에 원칙상 기독교의 일요일이 6일동안 일하고 그 다음날에 쉬는 창조 주간의 리듬에 일치하는 제도라고 주장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신적 권위나 성경적인 지지 기반 위에 일요일의 예배를 확립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철학적인 합리론을 내세워 안식일의 계명에 대하여 “예”“아니오”를 동시에 나타내는 모순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유대의 전통에서 온 주간적인 순환 질서에 대해서는 “예”라 하고 유대의 제칠일 안식일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말한다.49 (274.3)
 즈위트의 일요일 신학의 기초는 “우리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모두를 포함하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시간의 7일 주간의 순환을 하나님이 주신 제도로 수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전제이다.50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즈위트는 제칠일 안식일에서가 아니라 한 주간이라는 7일의 순환에서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구속사적 통일과, 구약과 신약 사이의 구속사적 통일을 보고있다. (274.4)
 심지어 즈위트는 주장하기를 사도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안식일이 7일마다 순환하는 유대인들의 주간제도 자체는 존중하도록 가르치면서도 특정한 날인 제칠일에 대해서는 배척하도록 가르쳤다고 하였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예배를 위해 한 주간의 첫째 날에 모였던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그들이 매 7일마다 모인 것이었으므로 그들도 안식일의 표징을 지킨 셈이 되었다는 것이다. 즈위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주장을 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구속적 안식이 실현되었다는 믿음을 나타내었으며 한 주간의 첫째 날을 지킴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실현될 미래의 영원한 안식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었다고 하였다. 이 주장이 이른바 즈위트의 “소망의 변증법적 성취”(The dialectic of Fulillment in hope)의 신학이라는 것이다.51 (275.1)
 즈위트는 루터와 칼빈에 대하여 그들이 넷째 계명을 철저히 배격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날이 똑같다고 가르쳤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또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유대주의적 신앙을 철저히 청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똑같이 비난하였다.52 (275.2)
 즈위트는 “주의 날”로서의 일요일을 민간 정부가 법률로 정하여 만든 공민적인 휴일로서의 일요일과 일치시키려는 개혁파 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일요일 휴일을 불신자들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였다. 신앙과 병행하지 않을 때는 진정한 의미의 “주의 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의 날의 안식은 그 무엇보다도 영혼의 안식을 누리는 영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공민적인 일요일 법령은 복음적인 사회의 열매이며 “인류를 위한 진정한 축복”이 된다고 주장했다.53 (275.3)
 이제는 즈위트의 차원을 한 단계 넘고있는 쉐이퍼(L.S Chafer)같은 세대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볼 차례이다. 즈위트는 여전히 안식일과 일요일의 “계속성과 불일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안식일과 일요일의 어떠한 계속성도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안식일과 일요일은 전혀 상관 없는 두 시대를 상징한다고 주장하였다. 안식일과 일요일은 각각 “완전한 율법”“완전한 은혜”라는 서로 상치되는 두 시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54 세대주의 신학은 미시간의 그랜드 래핏(Grand Rapids)에 있는 리차드 더불유. 드한(Richard W. Dehann)과 시카고에 있는 “무디 성경 연구원”(Moody Bible Institute)의 라디오 방송과 저술활동들을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 졌으나 이들의 이러한 활동을 통해 기왕에 사람들에게 알려진 세대주의 신학이 많이 수정되기도 했다. (275.4)
 일부 군소 교파들의 안식일 신학
 나사렛 교회(Church of the Nazareae)의 떠불유. 티. 퍼키저(W. T. Purkiser)는 그의 논문 “안식일 질문”(The Sabbath Question)에서 상당히 주목할만한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안식일을 신약과 구약 양쪽에 소속시키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55 그는 마가복음 2:27, 28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안식일에 관한 신약 성경의 주장중에 가장 기초적인 주장”으로 간주하여 결론을 내리기를 안식일은 “모세와 이사야와 느헤미야에게만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인정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소속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서둘러 선언하기를 안식일을 토요일과 일치시키는 것이나 안식일을 한 주간의 일곱 번째 날(일요일)과 일치시키는 것은 모두 거짓된 전제라고 하였다. 즉 “어느 누구도 넷째 계명에게 ‘제칠일’이라는 낱말 뒤에 전통적인 주간 순환의 낱말이나 토요일 같은 낱말들을 추가시킬 수 있는 권세를 부여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달력들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지만 하나님은 “안식일 원칙을 지명했을 뿐이며” 그 원칙은 언제나 그리고 단순하게, “매 제칠일은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것이라 하였다.56 (275.5)
 그러나 퍼키저는 제칠일 안식일을 토요일과 일치시키는 것에 대하여 유대적인 전통일뿐이라고 부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일요일에 대해서는 “이 날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원한 기념”이라 주장하였으며 마가복음 16:2“그리고 안식일들의 그 첫 번째” 라고(And very early the First of the Sabbaths) 부당하게 번역함으로써 일요일을 새로운 안식일로 높이려 하였다. 그는 마태복음 28:1에 대해서도 똑같은 시도를 하였다. 그는 주장하기를 이 성경절들은 최소한 “안식일들의 한 시리즈가 끝나고 이제 새로운 시리즈가 시작했음”을 암시한다고 하였다.57 이것은 물론 희랍어 본문을 무책임하고 교묘하게 조작한 것이며 권위 있는 여러 성경 번역을 통해 취합된 신약학의 학문적 성과를 무시하는 것이다. (276.1)
 제칠일 침례교회(Seventh Day Baptists)의 안식일 신학은 현대 신학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뉴저지의 플래인필드(Plainfield)에 있는 “미국 안식일 책자협회”(American Sabbath Traet Society)에서 출간된 에이. 에이. 루이스(A. A.Lewis), 에이. 제이. 씨 본드(A. J. C. Bond), 에이취. 이. 사운더즈(H. E. Saunders)의 글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으로써 그 당연한 결과로서 그들을 성경의 안식일로 인도하려고 애쓰는 개신교 안식일 개혁 운동을 대표하고 있다. (276.2)
 사운더즈(H. E. Saunders)의 기본입장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과 구약을 기독론적으로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관점에 기초하여 그의 저서「안식일: 창조와 재창조의 상징」(The Sabbath:Symbol of Creation and Re-Creation)〈1970〉에서 제칠일 안식일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의 근본적인 논지는 안식일이 단지 창조의 기념으로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와 구속과 부활의 기념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58 사운더즈는 루이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인용하였다. “하나님의 날은 우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책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인도한다.”59 그러나 루이스와 사운더즈는 불행하게도 안식일 신학의 그리스도 중심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한 주간의 첫째 날로부터 안식일로 옮기고 있다. (276.3)
 사운더즈는 침례를 재창조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안식일을 “성령의 계속적인 침례의 상징”으로 높이 세웠다. “안식일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최초의 목적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못지 않게 화해의 기별의 중심에 있다”고 하였다. 안식일은 “시간과 영원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의 현존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이 제정하신” 상징이라는 것이다. 즉 안식일은 창조주와 인간의 사귐의 상징이라는 것이다.60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더 밝은 빛 안에서 하나님을 더 잘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일은 무한한 의미를 더 가지게 된다”고 하였다.61 (277.1)
 진실로 이제 안식일은 그리스도 안에 회복된 사람의 삶을 나타내고 있다. 즉 “안식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서만 구속되고 구원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세상을 대속하시면서 행하신 것은 사람을 영원한 존재로 창조된 그 본래의 자리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시고 사람을 용서해주신 행위가 의도하는 취지였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의 기념일을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대속하고 성화시키고 높이 올리는 능력의 표징으로 만드셨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이러한 사실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오히려 사람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하는 명령을 더욱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62 (277.2)
 제칠일 침례교회의 신학자들은 또한 “사람들에게 왔으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인 계시에 대한 충성심 아래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단결시키기는 위대한 상징을 안식일에서 보고 있다.”63 (277.3)
 제임스 이. 탈메이즈(James E. Talmage)로 대표되는 “말일의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또는 “몰몬”(The Church of Jesus of Latter- day Saints or “Mormon”) 의 안식일 신학은 일요일을 안식일 준수의 날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그들의 창건자이며 선지자인 조셉 스미스(Joseph Smith)가 1831년 8월 7일 일요일에 보았다는 계시에 의하여 일요일을 안식과 예배의 날로 인정하고 있다여 조셉 스미스의 이 계시는「교리와 언약」(The Doctrine and Covenant)에 기록되어 있다. 조셉 스미스는 위의 글에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예배하라고 권고하면서 그날을 “주의 날”이라고 하였다(Section 59:9-13). 스미스가 “주의 날”과 일요일을 직접적으로나 분명하게 같은 날로 말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조셉 스미스의 이 계시가 몰몬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 안식일과 일요일 문제를 해결하는 권위의 글로 이용되고 있다.65 (277.4)
 몰몬 교회의 입장은 디. 오. 멕케이(D. O. Mckay)와 씨. 떠불유. 펜로우즈(C.W.Penrose)같은 이 교회 대총회장을 역임했던 사람들이 출애굽기 20장의 안식일 계명에 기초하여 일요일을 지키라고 촉구한 거듭된 권면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66 흥미롭게도 몰몬교회 저술가의 한 사람인 비. 에이취. 로버츠(B. A. Roberts)는 신약 성경에 “첫째 날”과 관련되어 나타나고 있는 본문들을 자세히 검토한 끝에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 안식일이 변형되었다는 것은 단지 “개연적인”것 일 뿐이라고 말했다.67 (277.5)
 많은 몰몬 교도들은 그 역사의 초기부터 하나님의 성서적인 성일로 되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예배의 진정한 회복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이러한 사람의 하나가 “열 두 사도”의 한 사람인 올슨 프래트(Orson Pratt)이다. 그는 1850년대에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한 주간의 제칠일과 첫째 날 중 어느 날이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어야 하는가? 신약 성경은 이 질문에 분명하게 대답하고 있지 않다. 신약 성경에는 첫째 날 또는 일요일을 지켜야 할 증거보다는 제칠일 또는 토요일을 지켜야 할 증거가 다소 많다. 신약 성경은 이 문제에 있어서 대단히 비 확정적이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불충분한 안내자이다.”68 (278.1)
 여호와의 증인(Jelavah’s Witness:일명 The International Bible Students Association)은 성경의 안식일에 대하여 독특한 해석을 발전시켜 왔다. 이들에 따르면 창세기 2:2에 있는 창조 주간의 첫 제칠일 안식일, 즉 하나님의 안식의 날이 정확히 7000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이 7천년의 기간은 아마겟돈 전쟁까지의 6000년에 걸친 인간 역사와 그리스도에 의하여 미래에 세워질 1000년의 “왕국 안식일”의 시대로 세분되고 있다.「하나님은 참될 지어다」(Let God Be True)라는 출판물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사람은 여섯째 날이 끝날 무렵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는 지구를 준비시키는 42,000년의 끝 부분에 지구에 나타났다. 그래서 시간의 진행과 더불어 7일의 대순환은 49,000년에 이르게 될 것이다.”69 (2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