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사무엘 상∙하 제 Ⅱ 부 사무엘과 사울: 여호와께서 주시고 여호와께서 가져가심 (삼상 8-15) 제 4 장 여호와께서 사울로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심 (삼상 13-15)
 15:7-9의 최초의 전쟁 보고는 소떼와 양떼에서 “가장 좋은 것을” 멸하지 않으려는 백성들의 탐욕스런 동기를 드러내고 있으며, 그 점은 사울도 후에 사무엘을 만났을 때에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었다(13-15절). 아마도 죄를 인정하기를 꺼려한 것은 사울이 그의 후계자 다윗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었다. (128.1)
 사울이 실패했다는 점에 대한 사무엘의 첫 단서(端緖)는 여호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진멸의 포학성(3절), 사무엘의 손에서 처참하게 죽은 아각(33절)은 이 장에서 하나님과 사무엘에게 돌려진 그 강력한 감정을 너무 쉽게 흐리는 경향이 있다. 「새국제역」에 따르면, 여호와께 사무엘에게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11절)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은 말로 이 장이 끝난다: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35절). 그러나 이 장의 긴장은 「제임스왕역」에 의해 더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그것은 15:1115:35에서 영어 단어 후회하다(repent)를 사용하고, 또 15:29에서도 사용한다. 그 단어를 「새국제역」은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바꾸지”(“change his mind”) 않았다고 번역했다. 이 네 곳의 히브리어는 모두 동일하다. 그리하여 「제임스왕역」은 두 번이나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다고 확증하면서도(29절), 두 번은 하나님이 회개하셨다고 선언하고 있다!(11, 35절). (128.2)
 이 속태우는 말장난과 함께 성경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서 자유로운 피조물을 만드시고 그들로 순종케 하시는 놀라운 역설을 제시하고 있다—실로 그분은 순종하라고 명하시고, 불순종하면 위협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불순종을 고집한다면? 그분은 후회[변개]하신다—비록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시지만(29절). 물론 하나님은 사람이 후회하는 것처럼 후회하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주의 주인은 인간이 그들의 행위를 바꿀 때에(비교 렘 26:3, 13, 19), 혹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중보할 때에(출 32:12-14), “마음을 바꿀” 권리를 갖고 계신다. 사울의 경우에서 우리는 그의 자녀들 중 한 사람이 실패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상한 것을 볼 수 있다. 「새국제역」은 여호와께서 사울을 위하여 “슬퍼하셨다”(“grieved”)고 함으로 우리는 그 감정을 더 절실히 느낄 수 있다(15:11, 35). (128.3)
 사무엘 자신도 사울의 운명 때문에 감정이 많이 상하였다. 15:3516:1에서 「새국제역」은 그가 사울을 인하여 “애통하였다”(“mourned”)고 번역하였다. 이 경우에, 히브리어는 회개나 마음을 바꾸는 뜻이 없고 단지 깊은 슬픔만 강조하고 있다. 이 절들은 사울의 괴로운 시험 후에 나온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의 불순종에 관하여 처음 말씀하셨을 때에 사무엘은 매우 “근심하”였다(15:11). 「새개정표준역」은 히브리어를 더 직설적으로 번역하였다: 사무엘은 “화가 났다”(“angry”)! 너무 화가 나서 그는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129.1)
 성경은 단순히 사무엘의 격정의 밤을 언급하고 그것에 대하여 설명 없이 지나간다. 그는 하나님께, 혹은 사울에게, 혹은 자신에게 화가 났던가? 아니면 하나님과 자기의 계획이 무산된 것을 생각할 때에 세상살이 일반에 대하여 화가 났던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른 아침 사울을 찾아내어 마침내 길갈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대화는 성경 전체 속에서 가장 열렬한 것이었다. (129.2)
 사울은 화난 선지자를 온전히 순종하였다는 장담으로 그를 맞이하였다. 사무엘은 다음의 질문으로 되받아쳤다: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14절). (129.3)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129.4)
 “그만!” 선지자는 소리쳤다. 여호와의 기별을 전하면서 사무엘은 더 예리한 질문으로 말을 맺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19절). (129.5)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였다고 사울은 항의하면서 그가 아각 왕을 끌고 왔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그는 백성이 여호와께 가장 좋은 것으로 제사하려고 했다는 것을 또 다시 반복하였다. (129.6)
 사무엘은 단호하였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라고 말하였다. 당신의 반역은 점술(占術)과 같이 악하다. 당신의 교만은 우상 숭배처럼 나쁘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22, 23절). (130.1)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세 히브리어 단어가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 단어와 가장 가까운 말들은 다음과 같다: 용서하다/떠맡다(forgive/bear), 듣다/순종하다(listen/obey), 돌아가다/회개하다/부드럽게 하다/회복시키다(turn/repent/relent/restore). (130.2)
 첫 단어는 사울의 알리바이 속에 나타난다.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했다는 사무엘의 선언은 결국 왕을 회개로 몰아넣었다. 그는 하나님과 사무엘에 대한 죄를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는 역시 백성을 비난하면서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하였다.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 알리바이는 다음과 같다: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24절). 여러 해 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백성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왕을 주도록 하였다(8:7, 9, 22). 비록 하나님께서 그 명령을 세 번이나 반복하였지만 사무엘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내 여호와께서 백성의 소리를 “들으시고” 사무엘에게 왕을 인도하셨다(9:16). 이제는 왕이 백성의 말을 “들었고,”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 즉 왕위를 잃는 결과를 낳았다. (130.3)
 몰락한 왕조의 폐허 속에서 기록하는 저자는 왕권의 위험, 그리고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의 위험에 관하여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는가? 한편으로는 비록 하나님 자신이 백성의 목소리를 듣고 그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지만 왕권은 시작부터 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울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에 그것은 그의 보좌를 잃게 했다.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도대체 안전한 것인가? (130.4)
 사울이 알리바이에서 간청으로 옮아갈 때에 다른 미묘한 히브리 단어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용서하다”(“forgive,” 「새국제역」) 혹은 “사하다” (“pardon,” 「제임스왕역」, 「새개정표준역」)로 번역된다. 그런데 그것은 사무엘에게 용서를 구한 것임을 주목하라(12:25). “떠맡다” 혹은 “지고가다” 등의 기본적인 뜻은 사울이 사무엘에게 묘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내 죄를 떠맡으시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은 선지자였고(10:1), 백성들에게 왕으로 선포하였고(24절), 그와 함께 암몬 사람 나하스와의 싸움에 나갔고(11:7), 길갈에서 왕권을 공고히 하는 일에 앞장섰다(14절). 사무엘은 그에게 백지 수표를 주었다: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단, 제한 사항: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10:7, 8). 사무엘이 늦었을 때에, 사울은 죄를 지었다, 그리고 사울에게 그 죄가 그의 나라를 상실케 했다고 말한 사람도 사무엘이었다(13:14). (130.5)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떠맡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돌이켜서] 나로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15:25)라고 사울은 간청하였다. 불확실한 미래를 당면하게 된 그는 사무엘에게 연합을 강하게 요구하는 데 있어서 다른 주요 단어를 사용한다. “돌이키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물론 이 단어의 명백한, 우선적 의미는 공간적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회개하다,” “부드럽게 하다,” 혹은 “회복하다”로 번역할 수 있다. 사무엘에게 “돌이키라”고 요구한 사울의 목적은 단순한 눈가림이었는가? 혹은 그가 사무엘에게 그의 죄를 “떠맡고” 온전한 회복을 위하여 함께 나아가자고 요구한 것인가? (131.1)
 여호와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을 재확인하면서 사무엘은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26절)고 대답하였다. (131.2)
 그러나 사울은 거절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사무엘이 “돌이켜”(!) 갈 때에 사울은 애절히 그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옷은 찢어졌다. 그리고 사무엘은 찢어진 옷을 사용하여 또 하나의 거절의 예증으로 삼았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서”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다(28절). 그리고 사무엘은 발람의 예언에서 한 줄(민 23:19)을 들어다가 결론을 지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29절). (131.3)
 여전히 사울은 끈질기게 버텼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돌이켜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30절). (131.4)
 갑자기, 설명도 없이 사무엘은 수그러들었다: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돌아가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31절). 여호와께서는 그의 마음을 바꾸시지 않지만, 그의 사자 사무엘은 그의 마음을 바꾸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마음을 바꾸실 것이라고 기대했던가? 저자의 시대에 니느웨 왕이 한 연설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분명히 듣고 있었을 것이다. 요나의 강경한 멸망의 위협에 대한 반응인 그 왕의 연설에는 15장의 단어들이 울려퍼지고 있다: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욘 3:9). 또 모세가 있다—모세의 강력한 중재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마음을 바꾸셨다면(출 32:14), 아마도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중재, 그리고 사울의 회개를 기초로 마음을 바꾸실 것이 아닌가? (132.1)
 아마도 우리는 화난 사무엘이 밤새 여호와께 부르짖은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15:11).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이미 사울에 관하여 적어도 한 번 마음을 바꾸신 것을 알고 있다. 또 마음을 바꾸실 것인가? 분명히 그것이 사무엘의 기대하는 바였다. (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