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내밀라 제 1 장 믿음을 활용하여 치유 받은 기적들 기적 5 ► 너희 믿음대로 되라
 아!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인 순간인가! 가슴이 터질 듯 감동적인 희열이 막 쏟아져 나왔다 (53.4)
 “주여! 감사하나이다” (53.5)
 바로 그 두 눈에서 구슬 같은 감격의 눈물이 솟구쳐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든 게 그들의 믿음대로 됐다. 그 믿음이란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능히 고쳐 주실 것이라 믿었던 바로 그 믿음이었다. 고통과 멸시를 받던 시절이 그들에게서 말끔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53.6)
 이와 같이 이 두 시각 장애자가 놀라운 신유를 체험하여 눈을 뜨게 된 것은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맥을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53.7)
 첫째, 두 소경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야임을 믿었다. 대부분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분을 메시야로 믿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 버림받은 소경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다. (53.8)
 둘째, 예수님은 능히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예수님께서 두 소경을 고쳐 주시기 전에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라고 물으셨다. 주님께서 왜 그렇게 물으셨을까? 물론 두 소경에게 믿음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긍휼을 받으려는 자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긍정적으로 믿어야 한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두 소경에게 낫고자 하는 간절한 갈망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환자가 삶의 의욕이 없고 생을 포기하는 마음을 가지면 병은 결코 낫지 않고 결국 죽고 만다. 누구든지 병든 몸을 고칠 의욕을 가져야 한다. 지혜자는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라고 했다. 성경의 두 소경은 꼭 눈을 뜨는 신유(神適)를 체험해야겠다는 각오와 간절한 갈망으로 주님께 간청한 것이다. (53.9)
 셋째,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간청하였다. 비록 장애적인 요소가 많았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예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끈덕지게 매달렸다. 두 소경은 길에서부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계속 소리치며 베드로의 집에까지 쫓아 들어갔다. 비록 예수님께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셔도 계속 간청했다. 그분의 침묵은 그들의 간절한 소망과 믿음을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믿음의 활용 없이 기적 행하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믿음을 행사하므로 인간의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간구하다가 하나님께서 대답을 늦게 하신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계속 구해야 한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눅 18:1)하는 것이다. 믿음을 활용하여 끊임없이 간구해야 한다. (54.1)
 두 소경은 합심하여 한 목소리로 예수님께 간청했다. 간청하는데 연합하여 동역자가 된 것이다. 지혜자는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켭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 4:11, 12)고 했다. (54.2)
 오늘의 기적을 살펴볼 때,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안과 의사이심을 우리는 도무지 부인할 수 없다. 빛이신 그분은 치유의 광선을 발하사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것이다. 소경이 되게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요 그 눈을 여실 수 있는 분도 그분이시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출 4:11)라고 했으며,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시 146:8)라고 했다. (54.3)
 오늘날 우리는 영적 소경이 아닌가! 육신적으로도 눈뜬 장님이 아닌가! 소경들도 점자로 성경 읽고 예언의 신 읽어 은혜 받는다. 그들이 간증할 때 많은 신자들은 자신의 영적 눈멂을 깨닫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오늘 만일 주님께서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우리 모두도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