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하나님 곁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그 능력 많고 지적이며 사랑스럽고 친절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집안 식구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하나님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말로 하나님의 얼굴을 묘사하도록 해보라. (528.1)
여러분은, 하나님의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노래하는 것을 직접 듣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528.2)
드디어 하나님이 우리를 모두 당신에게 불러 모으실 때, 그분은 “마치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사 62:5)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스바냐서 3장 17, 18절에서 약속하시기를, 그가 우리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즐거이(노래)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셨다. (528.3)
요한계시록 4, 5장에서는 천사들과 장로들과 생물들이 인간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 일찌기 이 땅에 살았던 그 어떤 사람의 노래보다도 더 훌륭한 노래를 듣게 된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존전에 불러 모으실 때도 틀림없이 천사들과 장로들과 생물들이 전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게 노래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때 그분이 부르는 노래는 천사들과 장로들과 생물들의 노래보다 덜 영광스러 우리라고 생각되는가? 그의 피조물들이 모든 합창단을 다 동원하여 부른다 해도 하나님 자신의 노래에 도무지 비교될 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노래는 과연 어떨 것인가! (528.4)
그리고 하나님의 눈길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마치 신랑이 신부를 향해 하듯 그렇게 노래하실 것이다. 필자가 믿기로는 하나님께서는 노래를 부르실 때 그 무한하신 사랑과 다정한 감정으로 우리 각 사람의 시선에 눈길을 주실 것이다. 마치 “내가 이처럼 기쁜 것은 너희들이 여기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듯한 눈길일 것이다. (528.5)
우리가, 하나님께서 생물들과 이십 사 장로들과 함께 그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또 그 영광스러운 노래를 듣는 특권을 누릴 때, 성경에서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의 무릎 위로 기어올라갔듯이 하나님의 무릎 위로 올라가는 광경도 보게 될 것인가? 젊은 사람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걸어가서 질문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이 같은 생각을 많이 한다. (528.6)
필자는 예수님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그분에 대해 읽었고 누군가가 그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병자를 치료하시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으며 하늘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다가 구름을 타고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구주 그리스도와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528.7)
구주를 생각만해도
내 맘이 기쁘니
그 얼굴 친히 뵐 때야
내 기쁨 어떠랴3
(528.8)
새예루살렘은 단순히 아름답기만한 도성이 아니다. 그 곳은 생명이 다함이 없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원히 그들의 거처로 삼는 곳이다. (5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