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요한복음 제IV부 제자들이 새 세대를 불러옴 (13-17) 제 13 장 성령이 예수를 대신함 (14-16)
 다섯 문단의 세부 사항
 보혜사가 나오는 첫 문단은 요한복음 14:16, 17이다. 이 문단을 문맥 속에서 살펴보면, 영(靈)은 순종하고(15, 21절) 기도하는(13, 14절) 신자에게 가까이 온다. 영은 “또 다른 보혜사”인데, 이는 보혜사라는 칭호가 성령에게만 쓰이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16절).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드러나신 분은 바로 최초의 보혜사, 예수이다(18절; 참고 요일 2:1). 헬라어로 “다른”(“another”)이란 단어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유사성을, 다른 하나는 구별을 나타낸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알로스[allos])는 유사성을 의미한다. 성령은 예수와 같은 또다른 보혜사이다. (298.2)
 이 본문에 의하면, 성령을 보내는 데는 이중의 목적이 있다. 첫째, 보혜사는 제자들에게 영속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제공한다. 예수는 떠나가야 하지만, 보혜사는 그들과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요 14:16). 그는 심지어 그들 안에 거할 것이다(17절). (299.1)
 둘째로, 보혜사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떠나 계신 동안 예수의 위치를 차지하는 특별한 역할을 한다. 그는 예수와 같은 “또다른” 보혜사이다(16절). 그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적용하셨던 것과 같은 칭호인 “진리의 영”이다(17, 6절). 보혜사는 예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세상에서 배척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과 예수 안에 남아 그 안에서 살아야 했던 것처럼 그들과 함께 남아서(17절, “그들과 함께 거하심이요”), 그들 안에 거할 것이다(20절; 15:4-10; 17:23, 26).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오신다(14:18). 그들은 성령이 올 때 예수를 다시 보게 된다(19절). 그리하여 보혜사가 그의 영적 임재로 예수의 육신적 임재를 대신한 것이다. (299.2)
 그 다음에 나오는 보혜사 문단은 14:26이다. 여기서 보혜사는 분명하게 “성령”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았다. 그가 오신 목적은 예수의 부재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일을 강조하여 제자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25절). 이 약속은 의심할 여지없이 요한이 그의 복음서가 특히 새 세대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기록한 것이다. 예수에 대한 요한의 기억의 정확성은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한 성령의 임재로 보증된다. (299.3)
 27절이 보혜사 문단의 일부라면 영의 사역의 보다 광범위한 목적을 이끌어낸다. 그는 제자들이 홀로 남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의 정황 속에 처한 그들에게 화평과 위로를 제공하기 위해 오셨다(18절). (299.4)
 그 다음에 나타나는 보혜사 문단은 15:26에 가서야 나타난다. 다시 그는 “진리의 영”으로 불리고 있다. 여기서 예수에 관한 영의 가르침은 법정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 보혜사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향한 세상의 증오의 정황 속에서 예수에 대해 증거할 것이다(15:18-25; 16:1-4). 핍박받는 제자들은 그들의 경험의 타당성에 관해 합법적 증언이 필요함을 느낄 것이다. 14:27의 경우처럼 15:27이 앞에 있는 보혜사 구절의 연장으로 여길 수 있는 여부는 불확실하다. 제자들이 증거해야 된다고 했는데, 이는 영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사역 초기부터 그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영의 증언은 그들 자신의 증언을 격려하고 확증해 줄 것이다. (300.1)
 그 다음 보혜사 문단은 요한복음 16:7-11이다. 7절에서 예수께서는 위로에 대해 분명한 진술을 하고 있다. 세상의 증오를 받는 상황 가운데(1-4절) 그가 떠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나 그가 없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더 낫다는 것이다(5, 6절). 그가 떠나는 것이 보혜사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게 해줌으로 훨씬 더 나은 것이다(7절). 보혜사가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대해 책망함으로 세상의 증오와 핍박을 다룰 것이다(8절, 이 세 용어는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모든 죄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루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Froom, 70). (300.2)
 무엇보다도 보혜사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면서도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죄책감을 들게 할 것이다(9, 2, 3절). 죄는 단순한 나쁜 행위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근본적인 죄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 죄는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모호하며 성령의 직접적인 임재만이 책망을 실제적인 것이 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의 생애에 영이 임재했다는 가장 분명한 표징들 중의 하나는 자신의 결핍을 철저하게 느끼는 것이다. (300.3)
 좋은 소식은 보혜사(Counselor, 상담자)가 또한 위로자(Comforter)도 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죄를 예민하게 깨닫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의 가운데 죄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10절). 그러나 의에 대한 자각이 10절의 마지막 부분,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한 것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예수께서 아버지에게 가실 때, 그는 아버지 옆에서 제자들을 위해 중보하실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그의 의가 제공될 것이다. 영은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제공되는 의를 그들을 위해 지상으로 되돌려줄 것이다. 그들이 예수를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사실은 제자들의 믿음을 위한 확증(assurance)의 일부가 될 것이다. (300.4)
 또한 보혜사는 심판에 대한 깨우침(conviction)을 가져오지만(11절), 이것은 9-10절에 나타난 것(죄와 의에 대한 깨우침)과는 다른 심판이다. 이 깨우침은 사단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쫓겨났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르러오는 사단의 통치로부터의 해방감이다(비교 12:31). 예수의 죽음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사단의 권세와 통치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예수를 대적하여 사단의 편에 서고 그를 추종한 자들은 그가 심판받을 때 같이 심판받을 것이다. 지상의 법정에서 선고받은 신자들은 그들과 핍박자들이 어느 날 땅에서의 판결이 뒤집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옹호되는 하늘 법정에 서게 될 것을 성령의 깨우침으로 알 수 있다. (301.1)
 마지막 보혜사 문단(16:13-15—여기서는 “보혜사”가 아니라 “영”이 사용되었음)은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는 모든 자들을 위한 성령의 사역의 보다 광범위한 특성에 관해 많은 것을 열거하고 있다(13절; 14:17, 26). 예수처럼 그도 그들이 알 필요가 있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가르치러 오는 것이 아니다. 영의 초점은 언제나 예수께 있다(16:13-15; 14:26; 15;26; 16:9). 영은 제자들이 예수의 사역을 새롭게 하도록 해 줄 것이다. 그는 현재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드러낼 뿐 아니라, 예수께서 미래에 하실 일도 드러낼 것이다(16:13; 비교 계 1:1, 10). (301.2)
 아마도 이것이 요한복음에 개략적으로 기록된 성령의 사역에 관한 전모를 살펴보게 하는 최선의 내용일 것이다. 예수에 관한 것 외에 성령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계시는 없다. 영에 사로잡힌 것이 우리의 관심을 예수에게서 떠나게 만든 것이라면 건전하지 못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친히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영을 필요로하지 않으신다. 승천 시에 아버지께서 예수를 높여 그의 오른편에 두실 때 그렇게 하셨다. 성령의 역할은 이곳 지상에서 인간의 생각 속에 예수를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영은 이곳 지상에서 예수의 대표자 또는 대사이다. 우리가 성령에게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예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301.3)
 ■ 말씀에 들어감
 다음의 내용을 읽기 전에 요한복음에 묘사된 성령의 역할에 대해 짧은 글을 써 보라. 그대가 그 동안 발견한 모든 자료를 사용하도록 하라. 가능하면 어느 곳이든지 그대의 글 속에서 성령에 대해 말하려는 것들을 지지하는 본문들의 목록도 만들어 보라. (302.1)
 ■ 말씀을 탐구함
 요한복음에 약술된 성령의 사역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이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한 쪽은 예수를 믿는 자들과 연관되어 있고, 다른 쪽은 불신의 세상과 연관되어 있다. 제자들에게 성령은 예수를 대신하여 마치 그가 친히 함께하는 것처럼 예수께서 하실 일을 그들을 위해 해 주러 오셨다. 그래서 성령의 성품과 활동은 이 복음서에서 예수의 성품과 활동과 매우 유사하다. 성령은 “또다른 보혜사(14:16),” 즉 예수와 같은 보혜사로 제자들에게 오셨다. 예수는 제자들의 조력자(Helper), 위로자(Comforter), 변호자(Advocate), 그리고 친구(Friend)였다. 예수는 그들의 첫 번째 보혜사이고, 성령은 두 번째 보혜사이다. (302.2)
 성령과 예수의 사역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이 복음서에서 둘 사이에 많은 대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복음서에서 예수는 진리가 충만할 뿐만 아니라(1:14), 그 자신이 진리이며(14:6), 바로 그 원천(1:17)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동시에 보혜사도 “진리의 영”으로 불리고 있다(14:17).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를 통하여 이르러오는 진리를 거절할 뿐만 아니라(1:10; 18:38), 성령을 영접하는 것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14:17). 반면에 제자들은 예수뿐만 아니라(7-9절; 17:3) 성령도(17절) 알아야 했다. 이 밖에도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봉사와 성령의 봉사 사이에 평행이 많이 있다. 14:26에서 성령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예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그래서 영은 예수의 가르치는 사역을 계속한다(6:59; 7:14, 17; 8:20 등).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것처럼(14:16, 26; 15:26), 예수도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았다(3:17, 34; 5:23, 24, 30, 36-38 등). 영은 예수에 대해 증거하는데(15:26), 요한복음 14-16장에서 예수께서는 영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302.3)
 영은 그가 들은 것만을 말한다(16:13). 예수도 그의 봉사 내내 똑같았다(5:30; 8:28; 14:24). 성령은 예수의 것으로 제자들에게 알려 주었고(16:15), 예수는 아버지의 것으로 제자들에게 알려주었다(8:28). (303.1)
 그들이 예수 안에 거하고, 그가 그들 안에 살아야 했던 것처럼(14:20; 15:4-10; 17:23, 26), 영도 그들과 함께 거하며(14:17), 그들 안에 계신다. 예수와 영 모두 이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과 연관을 맺고 있다(1:14; 6:63). 이 복음서의 설화 부분과 다락방에서 보혜사에 대한 가르침에는 많은 대구를 이루고 있다. 15:26, 27에서 영은 그가 침례자 요한에게 1:32에 하셨던 똑같은 증거를 15:26, 27에서 세상을 향해 행한다. 니고데모에게 한 예수의 말씀은 14:17에 의해 마음에 와닿게 된다. 세상이 볼 수 없던 영(3:8)이 니고데모에게 약속하셨던 새 탄생을 가져오는 제자들 속에서 발견될 것이다(3-8절). 하나님의 생기가 첫 탄생 시에 육신에 들어간 것처럼, 하나님의 “생기”(“영”)가 재탄생 시에 육신 속에 들어간다. 영과 진리의 연관은 4:22-2414:17; 15:26; 그리고 16:13에 나타난다. 7:39의 말씀은 예수의 떠나감이 성령의 도래의 전제로 나타나는 16:7에서 반향되고 있다. (3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