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형성되어가면서, “바벨론”이라는 단어는 세속 정부와 불법적인 동맹을 맺은 개신교와 가톨릭교회 모두에게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바벨론의 “몰락”(계 14:8)과 “거기서 나오라”(계 18:4)는 하늘의 부르심은 개신교회가 세상과의 죄된 연합을 끊으라는 첫째 천사의 호소를 거절한 후 그들의 영적 타락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383). 둘째 천사가 지적한 바벨론의 큰 죄는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였다는 것이다(계 14:8). 이 취하게 만드는 “포도주”“성경의 가장 명백한 말씀에 반대되는 [거짓]교리”라고 해석했다(위의 책, 388). (1003.1)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신자들을 대표하여 J. N. 앤드루스(J. N. Andrews, 51-53; 68,69)는 그리스도교계의 여러 교파들을 바벨론으로 변질시키는 몇 가지 본질적인 오류를다음과같이 지적했다.

   (1) 유아세례의 교리,

   (2) 교회가 국가의 공권력과 불법적이고 범죄적인 결합을 맺음(이로 인해 순결한 교회는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불관용적이고 박해하는 음녀가 된다),

   (3)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평화와 번영의 천년이 이루어진다는 교리,

   (4) 넷째 계명을 일요일-안식일에 대한 요구로 바꿈,

   (5) 이교 신화에서 유래된 영혼의 자연적 불멸 교리,

   (6)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적인 재림으로 해석함 (1003.2)
 처음에 “바벨론”이라는 명칭은 “미국의 교회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는데(각 시대의 대쟁투, 389), 이는 밀러파가 전파한 심판 기별을 그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바벨론의 도덕적 타락이 “[1844년에] 극도에 달한 것은 아니었다”(위의 책). 바벨론은 아직 모든 나라를 취하게 하지 않았다. 교회와 세상의 연합은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1003.3)
 그리하여 바벨론의 도덕적 타락은 계속 진행되며 점차 증대되는 보편적 과정으로 해석되었다. 엘렌 G. 화잇은 “그 변화는 점진적이며, 요한계시록 14:8의 완전한 성취는 아직 장래에 속해 있다.”(위의 책, 390)라고 말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4장의 3중 경고를 거부한 결과이며, 데살로니가후서 2:9-12에 예언되었다. 그러한 저항 때문에 타락한 교회에서 나오라는 마지막 요구가 있어야만 했으며,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18:1-5의 마지막 “큰 외침”이다. 결과적으로 볼때, 재림교회의 개척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직 타락한 교회에 남아 있었음을 인식한 것이다. (1003.4)
 둘째 천사의 기별은 첫째 천사의 진정한 사도적 복음의 선포(계 14:6, 7)를 따르고 동반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거짓 경배는 참된 경배가 나타날 때 가장 완전하게 그 가면이 벗겨진다. (1003.5)
 3. 셋째 천사의 기별
 안식일 준수 재림신자들 사이에서 1848년에 열린 일련의 성경연구회를 통하여 셋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마침내 나타났다. 그들의 성소 신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라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십계명이 들어있는 거룩한 법궤와 함께 하나님의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 11:19에서 도출했다. 요한계시록 14:12을 셋째 천사의 기별의 중심 진리로 봤을 때, 그들은 거기 언급된 “하나님의 계명”이 십계명이라고 생각하였다. 1846년 조셉 베이츠는 제임스 화잇과 엘렌 화잇에게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경배에 네번째 계명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확신시켰다. (1003.6)
 엘렌 G. 화잇은 “하나님께는 안식일을 보지 못하고 지키지 않는 자녀들도 있음”(위의 책)을 인정했지만, 동시에 제7일 안식일을 “하나님의 참 이스라엘과 불신자들 사이의 분리 벽”으로 보았다(초기문집 33). 이러한 개념은 안식일 진리를 인치는 기별(계 7:2), 또는 요한계시록 14:12의 남은 교회와함께 서있는지 테스트하는 진리의 지위로 격상시켰다. “예수의 믿음”(12절)은 “신약에 들어있는 예수의 모든”(Damsteegt 194), 또는 “복음의 교훈과 가르침”(Andrews 135)으로 해석되었다. (1004.1)
 몇 해 동안은 “예수의 증거”(계 12:17)라는 말이 “예수의 믿음”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지만, 1850년대에는 새로운 해석이 나타났다. 이제 “예수의 증거”는 엘렌 G. 화잇의 사역과 저술에 나타난 예언의 은사와 관련이 지어졌다(참조 계 19:10). 이 해석은 요한계시록 12:17의 남은 교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지(標識)가 되었으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사명 선포에 통합되었다. (1004.2)
 “짐승과 그의 우상”(계 14:9-11)에 대한 해석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1851년, J. N. 앤드루스는 요한계시록 14:9-11의 짐승을 13:1-10의 짐승과 동일시했는데, 그것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넷째 짐승의 예언이 발전한 것이었다. 두 상징적 짐승(단 7장계 13장)은 모두 바다에서 올라온다. 앤드루스는 다섯 가지의 유사점을 나열한 후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76). “짐승은 교황권의 형태로 나타난 넷째 나라가 분명하다. 그것은 용, 즉 제국 로마에게서 능력과 보좌를 받았다(계 13:2).” 중세의 국가교회로서 그것은 마흔두 달 동안 성도 위에 군림할 것이었다(단 7:23-26; 계 13:5-8). 이 기간은 1798년에 “죽게 된 상처”(계 13:3)를 입음으로써 끝나지만, 그 짐승은 회복될 것이었다. 앤드루스는 “짐승의 우상은 힘과 권세를 입고 성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별개의 교회 조직체여야 한다. 이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개신교를 언급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105)라고 결론을 내렸다. (1004.3)
 앤드루스와 베이츠 둘 다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개신교에 의해 강요되는 교황권의 제도”라고 하는데 동의했다(PFOF 4:1101). 앤드루스는 그 “표”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들에 반대하여 일요일 준수를 강제 집행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가장 분명한 말로 넷째 계명이 주님의 거룩한 안식의 날을 준수할 것을 명하는데도, 지금 거의 온 세상이 그 짐승에게 놀라면서 이교의 축제인 일요일을 지킨다. 큰 배도가 그 날로 거룩한 안식일을 대체하였다”(108). 하지만 그는,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아직은 짐승의 표가 아니며, 사람들이 우상 안식일을 경배하도록 하는 법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그럴 것이다. 이 날이 시험이 될 때가 오겠지만, 아직은 그때가 오지 않았다.”(MS 118, 1899)라고 말했다. (1004.4)
 세 천사의 기별을 마지막 경고 메시지로 보는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들이 “견고하고 움직일 수 없는 토대”(MS 118, 1899)에 서있다고 믿게 되었다. 성소 신학과 안식일 진리가 결합하여 “지금 있는 진리”를 구성했다. 사도적 복음과 경배를 회복하라고 촉구하는 셋째 천사의 기별은 창세기 1-2장의 창조 기사를 영적으로만 다루어버리는 근대의 자유주의 신학과 진화론의 부상(浮上)을 놓고 볼 때 그 시의적절함이 더욱 두드러진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별의 주요한 특징은 “우리 시대 이단의 핵심인 진화론에 직결되며, 바벨론에서, 배도에서 나오려는 모든 사람에게 살아계신 하나님, 창조주께 충성하는 참된 표징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Nichol 709). (1004.5)
 엘렌 화잇은 안식일과 세 천사의 기별이 불가분한 결합을 맺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 기별들에서 안식일을 분리시키면 그것은 힘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셋째 천사의 기별과 연결되면, 거기에는 불신자들과 무신론자들에게 확신을 주는 능력이 따르게 되고, 그들을 굳게 세워서 주님 안에서 살아가고 자라나고 형통하게 해주는 힘을 그들에게 가져다 준다.”(교회증언 제1권, 337). (1005.1)
 그러므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학에 의하면, 제7일 안식일을 받아들이는 것은 요한계시록 14장의 3중기별의 종말론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경배 개혁의 모든 면에서 예수를 개인의 주님과 구주로 선택하고, 마지막 위기를 지나는 동안 그분께 계속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세 천사는 긴급히 촉구한다(계 14:1-5). (1005.2)